[도플로우] 뱀

2013. 5. 17. 00:25 from OP(동결)/짧은글






*


"로우 화난건가?"

 

또다. 언제나 내가 싫어하는 짓만 해놓고 뻔뻔하게 웃으며 묻는다. 도대체 눈치가 없는건지 도덕관념이 비틀린건지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누가봐도 화가 날 상황에서 꼭 묻는다. 화난건가? 또 내가 돌봐주던 동물을 죽였다. 처음엔 워낙 험악한 해적들이 있는 곳이니 이리저리 치여죽었나보다 싶었는데 언젠가 도피가 만신창이가 된 새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돌봐주던 새였고, 그는 당당하게 자기가 그랬다 밝혔다. 그 때는 역겨움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계속되는 도피의 살육에 이제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제 다친 동물을 돌봐주는건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화가 난 건 난거니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따질 요량으로 입을 열었으나 도피가 먼저 선수를 친다.

 

"미안해. 이제 다시 안 그럴께, 너무 질투나서."

 

올려다본 도피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예의 그 괴상망측한 선글라스가 눈을 가린다.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하는 말이다. 아무래도 동물들을 돌보는 건 관둬야겠다. 읽고있던 책이나 마저 읽을 생각으로 의자를 책상에 바짝 붙여 앉았다. 그러나 도피의 손에 의해 나는 책상에서 벗어나 침대로 내동댕이 쳐진다. 그 커다란 몸이 내 허리를 덥썩 안아온다. 그러니까 더 사랑해달라고. 도피의 뜨거운 손이 옷 안으로 들어온다. 언제나 언제나 이런식이다. 미친듯한 소유욕, 질투. 하지만 역시나 도피를 좋아하는 저의 마음 때문에 거부할 수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관계를 계속해야 하는걸까.

 

"힘 풀어 로우"

 




*

 

결국 동물들을 봐주는 건 관뒀다. 상처입어 죽어가나, 도피의 손에 처참하게 죽으나 똑같은 것 같기에.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도피가 나에게 오지 않는다. 기쁘면서도 외롭다. 나에게 질린걸까. 읽고있던 책의 활자는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만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다가 책상에 있는 책을 던져버렸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미칠듯한 고독과 질투. 도피가 다른 년 아니면 다른 놈에게 맛을 들인걸까. 불안함에 손이 떨린다. 결국 도피의 방으로 향한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도피의 방문을 열었을 때 나는 후회했다. 코 끝이 아리는 향과 함께 도피는 침대 위에서 전라의 여자와 뒹굴고 있었다. 방문 앞에 멍하니 있으며 난 생각했다. 그래 나는 장난감이다. 그걸 망각하고 있었다. 주제넘게 질투라는 걸 느끼고 절망한다. 침대에서 도피가 떨어져나온다. 대충 바지를 걸치더니 내 앞으로 다가온다.

 

"기분좋은 표정인데? 질투하나?"

 

역겨울정도로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다. 여전한 선글라스. 그의 눈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날 껴안는다. 그리고 어깨에 이를 박는다. 아픔과 함께 느껴지는 혀가 뱀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도피의 작은 손짓에 여자는 처참하게 죽는다. 너무 화내지마, 쟨 아무것도 아니니까. 도피의 손에 이끌려 주변이 피투성이인 침대로 향한다. 몸이 눕혀진다. 내 몸위로 뱀이 훑고 지나간다. 뜨겁고 축축한 뱀. 그 뱀의 움직임에 맞춰 난 달뜬 숨을 내뱉을뿐. 왜, 나는 도망치지 못하는걸까 왜.

 




*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도 도피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그의 침대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였다. 다른 날은 모르겠지만 내가 우연찮게 그 모습을 본 날이면 어김없이 내 앞에서 그 사람들은 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난 그 사람들의 대용. 결국 나는 내 방에서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도피는 그게 마음에 드는듯 했다. 그리고 그 날은 도피가 바깥의 일 때문에 저택을 비운 날이었다. 몇일을 준비한 계획을 실행하기에 알맞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저택을 빠져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항구까지 아무런 방해없이 도착한 것이 의아했지만 자유라는 기분에 들떠있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둔 배가 있는 곳으로 갔을 때 그 곳에는 베르고가 있었다. 그 후에는 이 지하감옥에 갇혔다. 베르고에게 두들겨 맞아 온몸이 욱씬거리거고 팔 여기저기에 피멍이 들어있었다. 아마 몸 여기저기에 적지않게 피멍이 들어있겠지. 한참을 의자에 묶여있었을까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멈춤과 함께 눈에 들어온건 도피였다. 그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역시나 보이지않았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고개가 꺾였다. 도피에게 뺨을 맞았다. 실소가 터진다. 대체 내가 당신에게 맞을 이유가 뭔가.

 

"오냐오냐해줬더니 이제 기어오르는구나"

 

의자에서 풀려났지만 나는 그의 부하들에게 질질 끌려 지하감옥의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착한 곳은 온갖 고문기구가 기괴하게 걸려있는 곳이었다. 나는 방 한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혀졌고 역시나 손과 발이 묶였다. 고문이라도 할건가싶어 도피를 바라보았다. 도피는 여전히 웃고있었다. 걱정마 널 너무 아껴서 고문은 하지않아, 하지만 벌은 받아야겠지? 도피는 그의 해적마크가 그려져있는 붉은 부지깽이 집어들었다. 눈을 꽉 감았다. 명치에 미칠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아아아악!!!"

"내꺼라는 표시는 해둬야지. 넌 내꺼니까, 그렇지 로우?"

 

생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를 맡으며 나는 생각했다. 도플라밍고 도플라밍고 도플라밍고. 널 증오한다.

 




*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가슴에 흉한 화상과 함께 팔에 돈키호테 도플라밍고라는 문신이 새겨져있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 망가져"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온 그는 문신이 새겨진 팔을 쓰다듬었다. 예뻐. 하나도 기쁘지않다. 그의 혀가 목덜미를 훑는다. 귓바퀴를 물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아서 쌓였어. 그의 말에 내가 먼저 팔을 들어 그의 목을 휘감아 입을 맞춘다. 나의 적극적인 행동에 그가 기분좋게 웃는다. 혀를 섞으며 나는 그의, 그는 나의 옷을 벗긴다. 전라의 상태에서 침대에 눕는다. 흥분에 들뜬 도피의 숨소리가 들린다. 다리를 그의 허리에 휘감자 뜨거운 손이 허벅지를 더듬어온다. 나는 작위적인 신음을 흘리며 그를 유혹한다. 넣어줘, 얼른. 그가 내 아래에서 자리를 잡는다. 그가 내 안으로 들어오면서 읊조린다.

 

"너는 내꺼야"

 

그래. 착각하고 착각해라. 이제부터 처절하게 당신을 짓밟아주겠다. 더이상 참지않아. 내가 당신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지금을 마음껏 즐겨라. 도플라밍고, 당신을 지옥의 밑바닥까지 떨어뜨릴테니까.

 

*

 

나는 그의 마음에 들어 나에게 필요한 능력의 악마의 열매도 얻을 수 있었고 내 나름대로의 해적단도 만들 수 있었다. 해적단을 만들자마자 난 그를 피해 도망갔다. 그의 문양이 박힌 가슴에는 화려한 문신을하고 그의 이름을 감추기 위해 팔 곳곳에 크고 작은 문신을 새겼다. 그에게 복수할 날만을 기다리며 지독하게 살아왔다. 해적의 심장 100개를 해군에게 가져가 그와 같은 칠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더이상 날 만만하게 보지 못 할 지위가 되었을 때, 기회가 생겼다. 각오해두는게 좋을거다.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지"

 

비집고 나오는 웃음이 멈추어지지 않는다. 그의 표정이 궁금하다.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내 인생을 망쳐놓고 그 모든걸 즐거워하던 당신을, 내가 무너뜨릴거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