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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자 온도가 뚝 떨어진다. 후리하타는 불이 꺼진 이층집을 바라보았다. 전화를 해보려해도 핸드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고 초인종을 누르기엔 시간이 늦어 집안 사람들을 다 깨울 것 같아 그럴수 없었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후리하타는 쿠로코 2호도 없는 정원을 바라봤다가 담벼락에 등을 기대어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무작정 집을 나와 정처없이 걸었더니 여기까지 왔다. 후리하타는 다리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몇시인지는 몰랐지만 다들 자는 시간이라는 건 분명했다. 세이도 자고 있을까.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자고 있을 아카시를 생각하다 가슴이 아팠다. 가슴을 움켜쥐고 눈을 감았다. 이제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입술 사이로 나오는 뜨거운 숨에 흰 김이 생긴다. 눈이 무거웠다. 여기서 눈을 감으면 잠이 빠질게 분명했다. 세이의 얼굴, 보고싶었는데.




"뭐하는거야"




갑작스러운 힘에 몸이 들어올려진다. 다리가 굳어 휘청거리자 단단한 팔이 몸을 지탱해준다. 고개를 들자 인상을 잔뜩 쓴 아카시가 보인다. 얼마만에 눈을 마주본건지 모르겠다. 더이상 나오지 않을줄 알았던 눈물이 떨어진다. 세이 보고싶었어. 목이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아카시가 한숨을 쉬더니 후리하타를 끌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방으로 후리하타를 데려와 앉히더니 침대의 이불부터 담요까지 전부 꺼내와 덮어준다.




"얇은 옷 하나만 입고 이 시간에 여긴 왜 온거야"




입을 열어 혀를 움직이지만 아무런 소리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왜 목소리가 안 나오는거야. 아카시의 손이 후리하타의 이마를 짚는다. 뜨거운 이마에 다시 인상을 쓴다. 아프다고 하루 강의 다 빠져놓고 티 한장만 걸치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니. 아카시는 마음이 심란했다. 이제 겨우 목소리가 나오는지 잔뜩 갈라진 음성으로 후리하타가 말을 한다.




"계속... 그 여자애랑 있던거야?"


"내가 여자애랑 있었는지 어떻게 알아? 그것보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좋아해"




아카시의 눈이 커진다. 너, 지금, 뭐라고. 아카시가 혼란스러운듯 몸을 일으킨다. 나랑 다시 예전같이 친구로 지내고 싶어서 대충 말하는거면 지금 당장 돌아가. 후리하타가 고개를 젓는다. 그 반동으로 눈물이 바닥으로 투둑 떨어진다. 아카시는 이마를 감싼채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리하타는 손을 꽉 쥐었다. 지금이 지나면 더이상 말할 기회가 없어. 내일 다시 모르는 관계로 돌아가더라도, 나에 대한 것들 모두 정리했더라도 말해야 해.




"나는 세이뿐이야, 너가 없으면 안돼. 너가 너무 좋아서.. 심장이.... 터질.. 것...같아..."


"그러니까 그건 친구로서 좋아하.."


"사랑하고 있어"




나에겐 세이가 전부야. 늦게 알아차려서 미안해. 나 너무 무서워서 계속 피하고 있었어. 이노우에에게 차이고 상처 받아서 그걸 너에게 풀었어. 못된 말해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날 떠나지마. 그 여자애한테 가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 나 너 없으면 죽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죽어버릴거야. 사랑해, 세이. 사랑해. 사랑하고있어.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려 앞을 가린다. 안되는데, 세이의 얼굴이 더 보고싶은데. 후리하타가 손을 들어 눈가를 닦는다. 그러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이 지나면 다시는 입 밖으로 내지 못할수도 있었다. 눈물을 닦고 앞을 보지만 아카시가 보이지 않는다. 아카시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는데 강한 힘이 몸을 끌어안는다.




"됐어, 됐으니까 그만 말해. 너.. 지금... 목이... 다 쉬었..어"




어깨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후리하타는 팔을 들어 아카시의 등을 껴안는다.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몸을 녹인다. 없이 그의 등을 쓰다듬는다. 고생시켜서 미안해.




추워. 후리하타가 아카시의 품으로 더 파고든다. 아카시는 후리하타를 더 꽉 끌어안고 이불을 여미지만 후리하타의 몸은 계속 덜덜 떨렸다. 밖에 너무 오래있었다. 이마엔 열이 심한데 몸은 차갑다. 아카시가 후리하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더니 몸을 일으킨다.




"코우키, 계속 추워?"


"으응"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조금 아플지도 몰라"




두사람의 시선이 얽힌다. 아카시는 옅게 웃었다. 후리하타의 눈은 그 말을 한 의도를 다 알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해도 돼, 나도 하고싶어' 아카시는 고개를 숙여 후리하타에게 깊게 키스했다. 서로의 혀를 얽으며 아카시는 자연스럽게 후리하타의 티셔츠 사이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의 허리선을 따라 쓸어내리자 몸이 움찔거린다. 입술을 떼고 그의 쇄골에 이를 세웠다. 붉은 자국이 생기자 아카시가 만족스럽게 웃더니 후리하타의 옷을 벗긴다. 그리고 이내 자신도 옷을 벗는다.




"민망해"


"나도"




서로 마주보며 웃는다. 가볍게 입을 맞추고 아카시는 후리하타의 가슴께를 쓰다듬는다. 후리하타는 흥분되는듯 허리를 비튼다. 세이, 빨리. 후리하타의 앓는 소리에 아카시가 혀를 빼내어 입술을 핥는다. '빨리해도 돼?' 후리하타가 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 처음이니까 살살해줘..."


"응, 나도 남자는 처음이니까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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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겁다. 거기다가 욱씬거렸다. 힘겹게 눈을 떴을 땐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침대의 옆자리를 만져보아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 간밤의 그 모든게 꿈이었을까봐 후리하타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켜 이불 밖으로 나왔다. 한걸음 내딛으려는 순간 몸이 말을 듣지않아 주저앉는다. 바닥에 부딪힌 무릎이 아파서인지 꿈일 것 같아 무서워서인지 눈물이 나왔다.




"잠깐 눈 뗐더니 난리네"




고개를 들자 쟁반을 든 아카시가 보인다. 꿈이 아니구나. 아카시가 책상에 쟁반을 내려놓더니 접이식 상을 꺼내온다. 죽 먹고 난 다음에 약 먹어. 아카시가 쟁반을 상에 놓고 후리하타의 맞은 편에 앉는다. 원래의 세이다. 후리하타가 감동 받은듯한 표정을 짓자 턱을 괴고 후리하타를 보던 아카시가 웃는다. 얼른 먹어. 응. 숟가락을 들어 죽을 떠 먹는다. 싱거운 맛이 혀 전체에 퍼진다. 몇번 오물거리다가 목구멍 뒤로 넘기고 또 한 숟가락 떠 먹는다.




"죽 다 먹고 약도 먹으면"


"응"


"나랑 사귀자"




후리하타가 활짝 웃는다.




"응"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