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버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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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는 지도를 펼쳤다. 수십개의 동그라미가 쳐져있었고 그 중 반정도에 x자 표시가 되어있었다. 몇주만에 10개가 넘는 섬을 돌아다니느라 피로감이 몰려왔다. 잠수함이라는 힌트만으로는 가봐야 할 섬이 너무 많았다. 자신의 부하들을 풀어 샅샅이 뒤지고 있지만 그마저도 쉽지않다. 한사람 당 돌아다녀야 하는 섬이 20개정도였다. 도피의 다음 목적지는 시골마을만이 있는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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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그야말로 한적했다. 도피는 자신의 행색이 여기서는 무척 튄다고 생각했다. 마을의 시가지로 생각되는 곳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향한 눈빛이 적나라했다. 뒷머리를 긁으며 도피는 한 사람을 붙잡았다. 붙잡힌 사람은 잔뜩 긴장한 것 같아 보였다.


"이 마을에 해양생물학자가 있나?"

"자...잘 모르겠는데"


도피는 남자를 놔주고 다시 길을 걸었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이야기뿐이었다. 여기에 잠수함을 봤다는 정보는 거짓말이었나. 도피가 마을 어귀의 평상에 주저앉았다. 하루빨리 로우가 보고싶었다. 이제 몇달후면 로우도 20살이다. 못 본 사이 좀 컸을까. 잊혀지지 않는 로우의 모습에 기분이 가라앉는다. 다음 섬에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고개를 들었을 때 자신의 앞에 있는 꼬마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 그 사람들은 왜 찾아?"

"그 사람들?"

"응. 착한 사람들이야 잡아가지마"


꼬마아이의 말에 도피가 웃었다. 마을사람들의 반응도 이해가 간다. 저의 인상은 충분히 좋지 않았으니 해가 될까 가르쳐주지 않았겠지.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사람들이 아저씨가 사랑하는 사람을 돌봐주고 있거든. 도피의 말에 꼬마가 눈을 크게 뜬다.


"그럼 그 아기는 아저씨 아기야?"

"아기?"

"응. 임신한 아저씨가 있었어"


도피는 몸을 일으켰다. 꼬마 그 아저씨들 어디있어. 꼬마가 손을 들어 섬 끝방향을 가르킨다. 저기 해변가에 있는 집에서 지내고 있어. 고마워 꼬마. 도피는 꼬마가 가르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설마 로우가. 길을 따라 달리자 금방 꼬마가 말한 집이 나온다. 집이 가까워지자 비명소리가 들린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훌쩍 큰 베포를 볼 수 있었다. 베포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상황에 눈을 크게 떴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여기서 이럴때가 아니었다. 베포가 도피를 잡아끌었다. 베포에게 이끌려 들어간 방에서 도피는 거의 1년만의 로우를 볼 수 있었다.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펭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펭귄이 감싸던 손에 온기가 사라지더니 그보다 더 뜨거운 온기가 손을 감싼다. 로우 죽으면 안돼. 생소하지만 한번도 잊은 적 없던 그리운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다시 눈물이 울컥 쏟아진다.


"도피..."


그래 나 여기있어. 돌아오는 대답에 로우가 웃는다. 땀에 젖은 이마를 쓸어올리는 손길이 느껴진다. 신이 존재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감사했다. 로우는 눈을 감았다.











































*


"바바!"

"아빠야 아빠"


도피는 다리에 매달리는 아이를 들어올렸다. 로우를 닮은 흑발의 머리를 쓰다듬자 예쁘게 웃는다. 또래들보다 체구가 작은게 저의 탓이라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아팠다. 품에 안겨있는 아이가 고개를 들어 도피의 뺨에 뽀뽀를 한다. 넌 날 닮아서 뽀뽀를 좋아하는구나. 그 말을 못 알아들은건지 마냥 싱글벙글이다. 엄마 닮아야 머리가 좋을텐데. 도피는 다시 아이를 내려놓는다. 그러자 꼬물꼬물 움직여 문쪽으로 다가간다. 거기있으면 위험해. 도피가 몸을 일으켜 아이에게로 다가간다. 아이를 들어올려 다시 품에 안는다. 계속해서 문 밖으로 손을 뻗는 아이에 결국 문을 열어 복도로 나간다. 창 밖에 비치는 바다를 보며 버둥거린다.


"바다갈까?"


바다라는 말에 아이가 긍정적인 어조의 옹알이를 내뱉는다. 으쌰. 아이를 고쳐안고 도피가 항구를 향해 발을 뗀다. 도련님 어디가세요. 모네의 부름에 도피가 고개를돌린다. 모네가 다가오자 아이는 모네의 털이 신기한지 손을 꼼지락거린다. 모네가 날개를 손에 가져다대자 아이의 작은 손이 털을 만진다. 귀엽네요. 그렇지? 모네가 도피를 보며 웃는다. 그런데 어디로 가시려구요. 바다에, 얘가 가고싶어하네. 모네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녀오세요. 도피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성 밖으로 나와 바다로 이어진 후문을 나오자 바다냄새가 코 끝을 간질인다. 해변에 다다르자 만연한 바다냄새에 아이가 옹알거린다.


"마마- 마마"

"엄마?"


아이가 태어난 곳이 바닷가였으니 바다냄새를 맡으면 엄마를 떠올리나보다. 그 바닷가에서 태어나서 로우의 품에는 몇번 안기지 못했을텐데도 귀신같이 그 곳에서의 로우에 관련된 것은 알아본다. 역시 로우를 닮아서 똑똑한건가. 아니면 로우의 품에서 바다냄새가 났나. 우리 아가는 아빠가 싫어? 왜 엄마만 찾아? 아이와 눈을 맞추고 도피가 말하자 아이가 도피의 선글라스를 잡아 벗긴다. 알았어 조용히할께. 도피가 웃으며 아이를 토닥였다. 먼 바닷가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바바. 아이가 선글라스를 가지고 노는듯하더니 바다로 던져버린다. 저거 비싼건데. 도피는 아이의 머리에 뽀뽀를 했다. 그깟 선글라스보다 우리 아가가 훨씬 예쁘지. 아이는 기분좋은듯 웃더니 도피의 뽀뽀에 보답하듯 뺨에 입을 맞춘다. 예뻐 예뻐. 


"팔불출 나셨네"


도피가 고개를 들자 아까전까지만해도 없던 잠수함이 보인다. 그리고 잠수함 갑판에 서있는 로우까지. 로우를 보자 품안의 아이가 버둥거린다. 마마. 정말 머리가 좋은건지 육감이 뛰어난건지 로우가 돌아올 줄 알고 바다로 나가자고 한걸까. 도피가 잠수함에서 내려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는 로우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버둥거렸다. 넌 아빠보다 엄마가 좋은가보구나. 어느새 도피의 앞까지 온 로우가 코웃음을 친다. 그리고 아이를 받아간다.


"살 더 쪘네. 무거워졌어"

"성장기니까"


로우가 아이의 머리카락에 뽀뽀를 하고는 뒤를 돈다. 베포 먼저 갈께. 아이아이. 잠수함을 뒤로 하고 로우가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 가족은 버려두고 떠난 바다는 재미있던가. 도피의 질문에 로우가 웃는다. 그건 당신이 더 심하잖아. 20살에 나갈거라던 바다는 사정상 21살로 미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로우는 21살이 되고 아이가 어느정도 크자 하트해적단을 꾸려서 바다로 나가겠다 선언했다.





*


"왜 하필이면 해적이지?"

"내 마음 아닌가?"

"바다로 나가는 건 상관없지만 해적은 안돼"

"칠무해에게 그런 이야기 듣고싶지는 않은데"


로우의 말에 도피가 눈을 크게 뜬다. 그걸 어떻게. 자신에게 밀려오는 국정일중에 칠무해의 일이 절대로 빠져있을거란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건지. 로우가 한숨을 쉬었다. 베포랑, 사치랑, 펭귄이랑 넷이서 떠날거야. 도피는 더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언제올건데. 세달 지나기전에는 올께. 그렇게 로우를 보내고 무료하게 아이와 함께 드레스로사에 있던 중 베르고가 가져다 준 신문에 도피는 쓰러질뻔했다.


"항해한지 이제 두달째인데, 어느정도해야 3천베리까지 올라가는거지?"

"우리도 골머리야. 해군들 사지를 바꿔치기 해놓고 바다 속으로 도망가버리니. 해적들 사이에서도 조심해야 할 사람이라더군. 성격이 포악하다고 소문이 나있어"


도피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품에 안긴 아이는 뭣도 모른채 꼬물락 거리고 있었다. 로우도 만만치 않은 또라이였어. 넌 엄마나 아빠 둘 다 닮지마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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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현상금이 6천베리까지 올라갔던데. 얼마나 헤집어 놓은거야"

"왕비라고 놀리는 녀석들이 있길래. 상대해줬을뿐이야"


로우는 소파에 몸을 길게 뻗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인지라 몸이 나른하다. 건강은 어때. 나쁘지않아. 로우는 드레스로사에 돌아와서도 간혹 고문에 출산의 후유증 때문에 심하게 앓을 때가 있었다. 혹시나 항해중에 그런 일은 없었나 넌지시 물었더니 다행이도 없었던 듯 하다. 아이는 벌써 잠에 들어서 유모가 데려간 참이었다. 도피는 로우 옆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일이나 마저 해야지. 종이 하나를 들어올려 읽어내렸다. 세달 내내 국정일을 했더니 이제는 익숙하다. 턱을 괴고 서류들을 읽어내려가는데 허벅지 쪽에 손길이 닿는다.


"일하는 중이잖아 로우"

"오랜만인데 글자들만 볼 셈인가?"


도피는 활자에서 로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자신을 향해 웃고있는 로우의 표정이 관능적이다. 한숨을 쉬며 로우를 안아들었다. 약점을 잡힌 것 같이 기분이 찝찝하다. 하지만 이내 아무렴 어떠냐며 침대에 로우를 내려둔다. 목덜미를 물자 색스러운 신음이 들린다. 목덜미에서 끼치는 냄새에 도피가 허탈하게 웃는다. 히트사이클이군. 로우가 기분좋은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약은 기분 나빠서. 도피는 짧게 웃고는 로우를 눕힌다. 


"둘째나 만들어볼까"


호선을 긋고 있는 입술에 깊게 입을 맞춘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