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튼을 걷어내자 따뜻한 햇빛이 방안에 들어온다. 창밖이 온통 분홍빛이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따뜻해지기 시작하면서 벚꽃이 만개했다. 이불을 잔뜩 끌어안고 잠에 취한 그에게 다가간다. 등을 툭툭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코우키' 이름을 불러보지만 웅얼거림만 들리고 감겨있는 눈은 여전하다.




"할수없네. 교감선생님께 후리하타 선생님은 저랑 뜨거운 밤을 보낸 탓에 못 왔습니다라고 전해둘께"




몸을 일으키려는데 팔이 붙잡힌다. '일어날테니까 제발 자제해줘' 아카시가 웃는다. 씻어, 아침 준비할께. 후리하타가 일어나 눈을 비비며 욕실로 들어간다. 쇄골이나 어깨죽지, 허벅지 근처의 붉은 흔적이 자극적이다. 아카시는 입맛을 다시듯 입술을 핥고 부엌으로 향한다. 아침식사 준비를 거의 마칠즈음 다 씻은 후리하타가 다가와 식탁을 훑는다.




"새로운 반찬이네"


"어제 나카타니 선생님이 주셨어"


"아, 그 집 음식은 맛있지"




옷 갈아입고 와. 후리하타가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간다. 식사 준비를 끝내고 자리에 앉자 옷을 갈아입고 나온 후리하타가 아카시의 맞은편에 앉는다. 새로운 반찬을 한입 먹더니 감탄사를 내뱉는다. 역시 나카타니 선생님의 사모님은 대단해. 식사를 끝내고 양치질까지 마친 후에 집을 나선다. 조금 걷다가 벚꽃나무 가로수가 펼쳐진 강둑으로 난 길로 올라간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길을 걸으니 괜히 기분이 들뜬다. 아카시는 고개를 틀어 강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수면에서 부서져 반짝거린다.




"봄이구나"


"응. 이 시기만 되면 새삼 이 동네가 좋다니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임용고시까지 합격한 두사람은 학교를 알아보다가 운좋게 국어교사를 두명이나 뽑는 학교를 발견했다. 도쿄 외곽의 시골에 있는 허름한 공립학교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신입 교사임에도 두사람을 채용했다. 그 덕분에 둘은 같이 살고, 같이 출퇴근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


"좋은아침-"




자전거를 탄 학생무리가 지나가며 두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 후리하타가 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청춘이네. 아카시는 멀어져가는 자전거를 봤다가 후리하타를 바라본다. 우리도 청춘 아닌가? 후리하타가 웃는다. 그래, 청춘이지.








오늘의 점심은 샌드위치였다. 후리하타는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고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쟤네 농구한다. 우유를 마시던 아카시가 몸을 돌려 난간 사이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진짜 못하네. 농구부가 아니니까. 저런 애들이 농구부였으면 당장 나가라고 했을거야. 거짓말은. 후리하타는 샌드위치 한입을 베어물었다.




"선생님!"




아래쪽에서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숙이니 여학생 무리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후리하타가 손을 들어 인사하자 여자아이들 특유의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린다. 세이, 너도 팬 서비스 좀 해줘. 아카시가 귀찮은듯 혀를 차더니 몸을 일으켜 손을 흔든다. 이제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확실히 나모다는 세이가 잘생겼지. 후리하타는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후리하타와 아카시는 둘 다 인기가 많았다. 이런 외곽 학교에서 보기 드문 젊은 남자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하고 세대차이 나는 노년의 선생님들보다 말이 잘 통하는덕에 두사람은 여학생들에게는 물론이고 남학생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니까 방금 여학생들이 아카시를 보며 소리지른 건 아카시가 후리하타보다 더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잘생긴 그리고 귀엽게 생긴 젊은 남자선생님 둘이니만큼 몇몇 여학생들이 -후리하타는 그렇게 알고 있지만 실은 대다수의 여학생들이었다.- 두사람을 커플링이라는 이름으로 묶은 것이다. 그 말은 즉, 옥상에 혼자 있는 줄 알았던 후리하타의 옆에 아카시가 있었던 것은 여학생들의 환상이라는 생명체가 먹이를 먹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는 얘기다.


두사람이 그런식으로 회자된다는 것을 안 것은 후리하타가 작년 여름 방학식에 우연히 복도에 떨어진 노트를 주웠을 때였다. 짐을 정리한다고 떨어뜨렸나보다 하고 주운 노트에는 수업의 필기가 아니라 한 소설이 쓰여져 있었다. 퍽 야한 남자끼리의 로맨스 소설이었는데 주인공이 후리하타와 아카시였다. 후리하타는 처음 그 소설을 보고 두사람의 사이가 들켰다고 생각해 학교를 바꿀 고민까지 했었다. 후에 그 공책을 발견한 아카시가 '여자아이들의 판타지일뿐이야'라며 후리하타를 진정시켰지만. 아카시는 소설이 흥미로웠는지 가져가서 정독하더니 그 날 밤에 소설과 똑같은 방법으로 후리하타를 괴롭혔다.


그리고 시작된 2학기에서는 아카시가 흔히 말하는 '떡밥'을 던져주기 시작했고 여학생들은 그에 혹해 소설에서 그림, 만화까지 다양한 창작물을 만들어냈다. 간혹 여학생들의 작품을 몰래 읽으면서 아카시는 만족스러운듯이 웃었다. 후리하타는 덕분에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아카시에게 시달려야했다. 언젠가는 떡밥을 목적으로 한 아카시의 과한 행위로 후리하타는 학생들 앞에서 이유도 말하지 못한채 울음을 터트릴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로 작품들이 더 야해진건 아카시만의 비밀이었다. 


아카시는 자신들을 봤다가 얼굴을 붉히며 얘기를 나눈 여학생들을 보며 웃었다. 저 무리는 굉장히 진한 소설을 쓰는 애들이니 좋은걸 기대할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카시와는 다르게 후리하타는 여학생들을 바라보며 아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있으니까 고등학교 때 생각나네"


"맞아 자주 옥상에서 경치보고 그랬지"




후리하타는 아카시를 바라보다가 마지막 남은 샌드위치 한입을 입에 넣었다. 남은 우유까지 털어마시고 아카시를 툭 친다. 내려가자. 아카시가 고개를 돌려 후리하타를 본다.




"키스하고싶어"


"너나 나나 방금까지 샌드위치 먹었는데"


"상관없어"




아카시가 손을 뻗어 후리하타의 뒷통수를 감싼다. 봄바람처럼 가볍게 두사람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진다. 역시 음식먹고나서 바로는 별로일 것 같다. 응, 긴장했었어. 아카시가 작게 웃고는 옥상문을 향해 발을 옮긴다.








아카시와 후리하타는 이 학교에 들어와서 농구부를 만들었다. 별로 의욕을 가지고 만든 동아리는 아니었다. 교

장의 지시 때문에 엉겁결에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고 농구에 관심있어하는 학생들이 꽤 있어 두사람은 어느순간부터인가 농구부에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아카시는 감독을 맡았고, 후리하타는 트레이닝 코치 겸 매니저일을 맡았다.




"이정도면 인터하이 우승 노려볼만 하겠어"


"저희가요?!"


"자신을 얕보지마라. 너희는 너희 생각보다 훨씬 대단해"




후리하타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카시를 바라보았다. 무표정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후리하타는 아카시가 꽤 즐거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학생들이 몸을 일으켜 아카시와 후리하타, 두사람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우렁찬 소리에 후리하타가 웃는다. 수고했어.


모든 일과를 마친 후에 어두워진 아침의 그 길을 걷는다. 아카시가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벚꽃잎들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는다.




"잡았어?"


"응"




후리하타가 아카시의 손바닥에 놓인 벚꽃잎을 바라보았다가 웃는다. 사랑이 이뤄지겠네. 이미 이뤄졌어. 그럼 필요없잖아. 후리하타가 벚꽃잎을 날려보낸다. 바람따라 멀리 날아가버리는 벚꽃잎을 쫓다가 이내 아카시를 바라본다. 아카시가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하더니 입을 연다.




"행복해, 코우키?"


"물론. 넌?"


"나도 행복해"




서로 마주보며 웃는다. 후리하타가 아카시의 손을 깍지 껴 잡는다. 달빛아래로 벚꽃잎이 흩날리고 그 사이로 두사람이 걸어간다.








#


백야퍼즐은 이것으로 완결입니다.

17편은 에필로그이자 혹시나 나올수도 있는 시즌2의 프롤로그입니다.

이제 수능 칠 때까지는 장편 쓸 계획 없고 짧은 썰 위주로 올릴까합니다.


이때까지 모자란 소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