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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하타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킨다. 그리고 다시 눈 앞의 노트북 화면에 집중한다.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노트북을 보다가 오른쪽에 놓여있는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긴다. 검은배경에 흰색의 알파벳들이 눈이 아프도록 많았고 그 중에서 몇군데에 있는 숫자는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고 있었다. 후리하타가 바뀌는 수치를 확인하더니 몸을 일으킨다.




"세이쥬로, 어제 빌려간 내 노트북 어딨어"


"너 기숙사에 두고 왔는데"




뭐? 안돼! 머리를 싸매며 쓰러지는 후리하타를 보며 아카시가 한숨을 쉰다. 내꺼 빌려줄께. 안돼, 그 노트북으로는 시뮬레이터 구동 시킬 수 없어. 그깟 노트북이 얼마나 차이난다고. 후리하타가 벌떡 일어나더니 아카시가 있는 2층 다락으로 올라간다. 그에 아카시가 보던 책을 덮고 난간에 턱을 괴고 후리하타를 기다린다.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올게 있나?"


"올려다보면서 말하기 싫어"




아카시의 앞에 앉은 후리하타가 심드렁한 아카시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카시는 여유롭게 그 시선을 받아낸다. 여기서 절대로 먼저 입을 열어서는 안된다. 그 순간 먹잇감을 잡아채는 뱀처럼 후리하타가 달려어 꼬투리를 잡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카시가 아무런 말이 없자 후리하타가 입술을 씹더니 결국 먼저 말을 꺼낸다.




"내가 누누히 말했잖아. 너꺼 노트북은 cpu가 인텔 코어 i5고 내껀 인텔 제온 샌디브릿지-"


"아아 거기까지 말해. 알겠어 내껀 30만원도 안하고 너껀 200만원 넘는거라고?"


"그렇게 가격으로 계산할게 아니라니까"




잔뜩 불만어린 표정의 후리하타가 짜증이 났던지 아카시가 손을 뻗어 그의 멱살을 잡아챈다. 후리하타가 당황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잡아당겨 입을 맞춘다. 처음에는 거부하듯 입술을 열지않던 후리하타가 무슨 속셈인지 갑자기 입술을 열더니 아카시의 목에 팔을 두른다. 아카시는 후리하타를 좀 더 잡아당겨 더 깊은 곳까지 혀를 얽는다. 한참 키스에 몰입하던 중 아카시의 몸이 뒤로 넘어간다.




"이럴셈이였군"


"맨날 너가 위에만 하는 것도 억울하잖아"




후리하타가 우월감에 찬 표정을 지으며 아카시를 내려다본다. 후리하타의 밑에 깔린 아카시가 재미있다는듯 웃더니 후리하타의 팔과 목덜미를 잡고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상태로 무게중심을 바꿔 후리하타를 자신의 밑으로 눕혀버린다. 역전된 상황에 후리하타가 잔뜩 인상을 쓴다. '체구로나 힘으로나 넌 나한테 못 당해. 그러니까 컴퓨터만 보지말고 운동도 하지 그랬어' 아카시의 약올림에 후리하타가 이를 간다. 아카시는 분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후리하타를 보며 느릿하게 그의 옷 안으로 손을 넣어 허리께를 훑는다.




"실패했으니까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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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도스..토... 뭐?"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죄와벌. 몰라?"




정말 모른다면 넌 정말 심각한데. 내가 아무리 똑똑하다지만 이건 내가 아니라도 다들 아는 상식이야. 아카시가 맞은편에 앉아있는 후리하타를 빤히 바라본다. 후리하타는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표정이 안 좋아지더니 기어이 터진듯 쥐고있던 책을 테이블에 던진다.




"내가 이딴 글쟁이를 왜 알고 있어야 하는데! 명왕성을 모르는 니가 더 이상해!!!"


"너야말로 별 쓸모도 없는 존재에 연연하는데?"




도스뭐시기가 더 쓸모없거든. 명왕성이 더 쓸모없어. 적대감에 가득 찬 시선이 오가다가 서로 고개를 돌림으로써 끊어진다. '후... 얘니까 이만큼이지.. 다른사람은... 내가 참자 참아야지 그래 참아라' 아카시가 열을 식히기 위해 테이블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컵째로 들이킨다. 반면 후리하타는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애꿎은 책만 꽉 쥐며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내가 얠 갖다버릴수도 없고... 얘보다 더 좋은 놈 나타나면 당장 헤어진다' 두사람이 한참 서로 말없이 다른 곳만 바라보며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데 아카시가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든다.




"코우키"


"뭐"


"영화 보러갈래? 전에 보고싶다던 영화 아직 안 내린 곳 있네"




아카시가 핸드폰 화면을 후리하타에게 보여준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후리하타가 그렇게 보고싶어하던 영화가 아직 상영되고 있었다. '내가 보여줄께. 갈거지?' 후리하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누그러진다. '...응' 좋아하는 것에 한없이 약한 그를 보며 아카시가 조용히 웃는다. 이래서 내가 얠 못 놓지. 영화를 예약하고 아카시가 자리에서 일어나 후리하타의 팔을 잡아당긴다. 얼른 가자. 후리하타가 머뭇거리며 일어나더니 앞서 가는 아카시의 옷깃을 아주 약하게 잡는다. 그 소심한 손길에도 아카시는 걸음을 멈추어 후리하타를 바라본다.




"왜?"


"저기... 화내서 미안해, 세이"




바닥만 바라보던 시선이 살짝 올라와 아카시에게 향한다. 귀여워. 아카시가 후리하타의 손을 잡아당겨 깍지낀다. 나도 미안. 그제서야 후리하타가 고개를 들어 아카시를 향해 웃는다. 아카시도 그에 마주보며 미소 짓는다. 코우키, 내가 많이 좋아하는거 알지? 응, 당연하지. 세이쥬로도 알지? 모르겠는데. 음, 나도 세이쥬로 많이 좋아해!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