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가 이렇게 복잡해?"


"고생 끝에 행복 시작이란 거 모르냐. 잔말말고 따라와"



참는자에게 복이 온다겠지. 로우는 혀를 차며 걸음을 옮겼다. 번화가로 오길래 정말 이 시내에서 유명한 집인가 했더니 인적이 없는 곳까지 걸어 내려온다. 거의 길의 끝까지 내려오더니 그라피티가 화려한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제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양아치들이나 조폭들이 가는 그런 곳이 아닐까. 키드도 생긴건 한 양아치하는데다가 머리를 염색하러 가는 이상한 미용실이 있는 뒷골목이니. 골목을 빠져나오니 공터가 나온다. 뭐야. 길을 잘 못 들었나싶어 키드를 바라보는데 공터 반대편 수풀 사이로 들어간다. 야! 뭐하는거야! 따라들어가니 숨겨진 시멘트 계단이 보인다. 이건 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아니고. 계단을 내려가니 그제서야 특이한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가 나온다.



"저기 드레스로사라는 가게 보여?"


"어디?"



키드가 로우의 머리를 잡아 어느 한가게를 바라보게 만든다. 보이냐? 보인다. 키드가 만족스러운듯 웃고 자기는 미용실에 가겠다며 걸음을 옮긴다. 멍하게 키드의 뒷모습을 보는데 뭔가 생각난듯 뒤를 돌아 로우를 부른다.




"무서워서 질질 짜지마라"


"닥쳐"







*

로우는 문 앞에 서서 망설이고 있었다. 질질 짜는 건 아니었지만 무섭긴 무서웠다. 남의 몸에 칼이나 바늘을 찔러봤어도, 자신의 몸은 전혀 그런 적이 없으니. 자신의 몸에 박힐 바늘을 생각하자 소름이 끼쳤다. 이대로 휴학하고 편입 준비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해봤지만 자신의 학교외의 의대는 마음에 차지 않았다. 어떻게할까싶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문자 알림음이 들린다. 폰을 꺼내어들자 키드다.

[아직도 가게 안 들어갔지? ㅂㅅ ㅋㅋㅋㅋ]

이 깡통새끼가. 결국 키드의 도발에 넘어가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 카운터에 있는 예쁜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로우를 반긴다. 어서오세요 예약하셨나요? 여자의 질문에 로우는 긴장한다. 



"아니, 안했는데...요"


"음, 잠시만요"



여자는 카운터에 있는 차트를 팔랑거리며 뒤적거렸다. 무언가를 찾는듯 하더니 이내 환하게 웃는다. 다행히 오늘은 예약이 없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여자가 홀의 소파에 손짓한다. 로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소파에 가 앉았다. 막상 호기롭게 들어오기는 했는데 긴장이 가시질 않는다. 폰을 꺼내 키드에게 마저 답장을 한다.

[들어왔다ㅗ]

여자가 소파에 앉아있는 로우에게 다가온다. 무슨 문신하실지는 정하셨어요? 여자의 과도한 친절에 로우의 긴장감은 더 커진다.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또 물어온다. 사진 가져오신거 있으시면 한번 봐도 될까요? 로우가 당황하며 손을 내젓는다. 아니 레터링.. 여자가 방긋 웃더니 책자 하나를 꺼내든다. 마음에 드는 글씨체 하나 정해두세요. 고개를 끄덕이고 책자를 받았다. 로우는 다시 카운터로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여자가 문신해주는걸까. 인상은 좋아보여 안심이지만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않아 남감하다. 여자가 자신의 손을 만지고 바늘을 살갗에. 거기까지 생각하자 소름이 돋아 생각을 멈췄다. 다시 그런 생각을 할까봐 여자가 준 카탈로그북을 펼쳤다. 닥터가 깔끔하고 잘보이는걸로 하랬는데. 다시 몇일전 그 일에 머리가 아프다. 망할 영감, 망할 교수, 망할 닥터, 망할 히루루크. 한참 닥터의 욕을 하던 로우가 맞은편의 인기척에 고개를 들자 짙은 썬팅의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카운터에 있는 여자를 보고 있었다.



"모네. 오늘은 일찍 끝내자. 정리는 내가 할테니까 먼저 가"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여자는 가방을 챙기더니 가게 밖을 나간다. 저 여자가 문신을 해주는게 아니였구나. 여자가 나간쪽만 바라보고 있다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정면으로 향한다. 선글라스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로우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에 한 피어싱에 일단 움츠러든다. 양아치다.



"꼬마 무슨 문신 할거야"


"...레터링"



별로 나이차도 안 나 보이건만 대뜸 저에게 반말에 꼬마라고 하는 말투가 당황스럽다. 기껏해야 다섯여섯살 차이 나 보이는데. 남자는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어디? 라고 묻는다. 머뭇거리며 손가락을 펼쳐 남자에게 보여준다. 여기. 로우의 손을 흘긋보더니 흥미를 잃은듯 남자는 테이블 아래 공간에서 스케치북을 꺼낸다. 무슨 글자. 낙서를 하는듯 그림을 그리면서 건성으로 묻는 남자의 모습이 기분나쁘다.



"DEATH. 대문자로"



남자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다말고 로우의 말에 풋하고 웃는다. 남자의 비웃음에 기분이 나빠 얼굴을 구긴다. 무례하고 무례한데 뭔가 또 무섭고 위화감이 들어서 뭐라고 따질수도 없다. 올라오려는 화를 꾹 참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다시 그림을 그린다.



"허세용인가?"


"아니요"


"그럼 무슨 의미가 있는건가?"


"아니요"



로우의 어중간한 대답에 남자의 손이 멈춘다. 턱을 괴고는 로우를 똑바로 바라본다.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로우의 긴장감이 다시 커진다.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어 남자의 눈인듯한 부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남자는 짧게 숨을 뱉어내더니 입을 연다.



"사연이 있나보지?"


"네"



로우는 재수없게 웃던 닥터를 생각해냈다. 미친놈, 또라이, 개새끼 온갖 욕을 다 쏟아 붓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애초에 그 내기를 받아들인 저의 잘못이었다. 내기 하나로 꼬인 인생을 되짚어보는데 남자가 불쑥 로우의 손을 잡는다. 로우는 놀라 남자를 바라보았다. 태연하게 로우의 손가락 마디를 쓰다듬는다.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남자가 손을 꽉 잡고 놓지를 않는다. 남자는 로우의 손가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무슨 내기?"


"그게, 교수랑 내기를 했는데"


"내기?"


"네. 닥터 쿠레하라는 사람의 논문 내용 맞추는 내기요"


"의대생?"



남자의 질문에 로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잡은 손이 계속 신경쓰인다. 별로 갈대같이 잘 움직이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꽤 생겼을 것 같은 남자와 계속 손을 잡고 있는다면 조금은 묘해질 것 같았다. 동성애자라고 차별 당하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있었고. 조심스럽게 손에 힘을 주자 금방 손이 빠진다. 남자가 흥미롭게 웃더니 소파에 등을 기댄다.



"까짓거 문신 안하면 되잖아. 문구만 봐도 의사인생 종치겠는데"


"안하면 전과목 낙제에요.."



무서운 교수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자는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자신도 지금 처지가 우스운데 저 남자는 오죽할까.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하던 키드가 생각이 났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원하는 글씨체 있어? 로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깔끔하게 잘 보이면 돼요. 남자는 펜 하나를 가져와서는 로우의 손을 들어 새끼손가락부터 글자를 쓴다. D.E.A.T.H. 두 손에 쓰인 글자를 보여준다. 정갈한 글씨가 손가락에 쓰여있다.



"어때, 라고 해봤자 별 감흥없지?"


"네"


"따라와"



남자가 작업실로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자 생각보다 깔끔한 -수술실을 상상하고 있었기에- 공간이 보인다. 앉아. 남자가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남자가 뭔가를 준비하는듯 하더니 흔히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문신 새기는 기구를 가져온다. 바늘이 자신의 살갗을 파고든다고 생각하니 몸이 굳는다. 그걸 느꼈는지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비웃는군. 로우는 한숨을 쉬고 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맞은 편에 앉더니 그 짙은 선글라스를 벗는다. 혹시나 남자의 얼굴이 잘 생겼을까 아닌척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있었는데 남자가 손을 들어 로우의 눈을 가린다.



"내 얼굴은 일급비밀이라서. 미안한데 안대 좀 차고 있어야겠어"



서랍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안대가 씌인다. 그럼 시작할테니 아프다고 울지마. 그 말에 로우는 자신의 빨간머리 친구가 생각났다.






*

"끝났다. 많이 아팠나?"



로우가 고개를 젓는다. 사실 눈물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아냈다. 이내 안대가 벗겨진다. 로우는 욱씬거리는 손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에 적나라한 문구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죽음. 내 의사인생의 죽음. 남자가 일회용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넣는다. 어느정도 정리가 됐는지 아직까지 문신을 바라보고 있는 로우를 보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에 남자가 웃는다.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자 로우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든다. 새끼고양이 같아, 귀엽네.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돈은..?"


"응? 아아 리터칭 다 하고 받을거야. 다음에 올 때는 예약하고 오라고"



남자가 명함을 꺼내 로우에게 내민다. 조커. 특이한 이름에 명함을 자세히 본다. 그거 본명 아니야. 로우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는 첫인상과는 다르게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로우가 귀여웠다. 로우가 일어나 작업실 밖으로 나간다. 배웅을 위해 남자가 홀까지 따라나온다. 로우는 예의상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를 하고 가게 문을 연다. 등 뒤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또 와.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