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우가 다니고 있는 대학은 흔히 대학가라고 불리는 곳에 위치해있었다. 로우의 대학과 더불어 갖가지 대학이 이 거리에 자리 잡고있었다. 로우와 키드가 다른 대학이지만 항상 같이 다닐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대학이 모여있는만큼 여대 또한 꽤 있었고 덕분에 이 거리에는 대학생 커플이 넘쳐흘렀다. 한적한 카페 -로우와 키드의 단골카페였다- 의 야외테라스에 앉아 지나가던 커플들을 권태롭게 쳐다보던 로우는 자신의 앞에서 두번째 아이스초코를 빨며 과제를 하고있는 키드를 바라보았다.



"키드여"


"말걸지마 과제중이잖아"


"외롭다"



키드가 재빠르게 두손으로 가슴을 감싼다. 난 남자에 관심없다! 로우는 가운데 손가락을 키드에게 들어보였다. 키드는 로우의 반응에 재미있다는 듯 웃더니 다시 전공서적에 코를 박는다. 미팅이라도 가. 로우는 한숨을 쉬었다. 너한테 그런 말 한 내가 잘못이지. 나무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끼익거리는 소리가 난다. 성적인 취향이 마이너한지라 연애하기가 쉽지않다. 마지막으로 했던 연애가 고등학교 3학년때였으니 벌써 5년째 솔로였다. 과수석에 매달려 주변을 보지도 않고 달려왔는데 여러가지 상황이 로우의 전진을 더디게 만들었다. 첫번째가 이 문신. 로우는 이제 아문 문신을 쓰다듬었다. 두번째는...



"너 그거 리터칭하러 안 가냐"


"어"


"왜?"



로우는 입을 다문채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키드가 갑자기 기분나쁜 소리로 웃는다. 길 모르거나 무섭거나. 둘 중 하나 맞지? 어마어마한 억측에 지적할 마음도 들지않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집어 한모금 마신다. 아닌가. 다시 과제를 위해 바쁘게 노트북을 두드린다. 두번째는 그 조커라는 사람. 간만에 스킨쉽을 해서 그런지 자신의 손을 잡던 느낌이 떠나지않는다. 주책이군.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커피를 마신다.



"아! 생각났어!! 너 아파서 안 가는거지??"



로우는 그대로 커피를 뱉어냈다. 그 반응을 보더니 키드가 큰소리로 웃는다. 정곡을 찔려 할 말이 없어 로우는 커피 안의 얼음을 씹어먹을 뿐이었다. 거기 형 잘생겼을 거 같지 않냐. 주제를 바꿔버리는 키드의 질문에 로우가 냉큼 대답한다. 응. 근데 안경 벗은 모습 안 보여주던데. 로우는 문신하던 그때를 떠올렸다. 손으로 시야가 가려지기 전 살짝 본 모습으로는 눈에 그리 큰 상처도 없어보였는데. 빨대로 빈 컵에 담겨있는 얼음을 휘저었다.



"그 형 꼬셔"


"뭐?"


"외롭다며"



유스타스여. 과제를 하느라 머리가 어떻게 됐나보구나. 닥치고 과제나 하게. 






*

"위로주라도 같이 마셔요 선배!"


"고마워. 근데 괜찮아, 너희끼리 가서 마셔"



문신한지 얼마되지도 않았고 여러명과 술을 마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여자가 들러붙는 것도 질색인지라 문신 위로주라도 마시자는 것을 겨우 거절했다. 계속 앵기는 후배 하나를 떼어내느라 진이 빠진다. 언젠가 후배인 쵸파가 자신이 여자후배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던게 생각났다. 성가시게. 로우는 노을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적한 캠퍼스를 걷다가 손을 들어 문신을 바라보았다. DEATH. 정말 여러모로 죽음이다. 내일이 주말이기도 했고 갑자기 울적해져 술이 땡겼다. 키드는 과제 삼매경이니 같이 술 마실만한 사람도 없다. 한숨을 쉬고 술 생각을 털어냈다. 캠퍼스 후문으로 나와 자취집에 가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어깨동무를 한다. 깜짝놀라 몸을 재빨리 빼냈다.



"오랜만"



전혀 생각도 못했던 인물이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든다. 멍해 있는 로우를 잡아 끌어 다시 어깨동무를 한다.



"왜 리터칭 하러 안 와"


"저, 그게"


"됐고 같이 술이나 마시러 가자"



남자의 말에 로우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로우의 표정을 보더니 소리내어 웃는다. 내가 살테니까 걱정 마.

차 -남자가 가져온- 를 타고 온 곳은 꽤 비싸보이는 바였다. 남자의 옷은 깔끔한 캐주얼 수트 차림이어서 상관이 없었지만 헐렁한 후드에 청바지를 입은 로우의 모습은 이 바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잔뜩 주눅들어있는 로우를 배려해서인지 남자는 룸으로 자리를 잡았다. 꼬마 칵테일 좋아해? 그의 물음에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일 좋아하는 건 소주지만. 칵테일과 남자가 주문한 위스키 한병이 나오고 로우가 칵테일을 몇모금 마시자 가만히 있던 남자가 입을 연다.



"너 기다리다가 직접 찾으러 왔잖아"


"왜요?"


"그것보다 안색이 더 안 좋아졌네"



남자가 위스키를 한모금 마신다. 쭉 뻗은 다리를 꼬고는 소파에 등을 기댄다. 로우는 자신의 얼굴을 더듬더듬 만졌다. 안색이 안 좋아졌다니. 문신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인게 틀림없다. 남자는 얼굴을 더듬는 손에 박힌 문신을 보았다. 아직 한번만 했던지라 글자가 푸른빛이 돈다. 딱 두번만 더하면 선명한 검정색이 되겠군.



"문신 때문에 목표를 잃었으니까요"


"그거 슬프네. 나라면 죽었을거야"



살벌한 남자의 말에도 로우는 별 감흥이 없다. 자신이 그런걸로 죽을정도로 사는 이유가 한정적이지는 않았기에. 어느새 칵테일을 다 마신 로우의 앞에 남자가 얼음이 담긴 잔을 놓고 위스키를 따른다. 로우는 술잔을 들어 위스키를 마셨다. 평소에 마시던 싸구려 위스키와는 전혀 다른 맛에 금방 금방 술잔이 빈다. 꽤 마시는군. 남자의 말에 조금 술이 오른 로우가 작게 웃는다. 별로요. 그러고는 다시 술을 털어마신다. 남자는 그런 로우를 보다가 품 안에서 종이를 꺼내어 로우에게 펼쳐준다.



"이게 뭐에요?"


"내가 얼마전에 도안한 문신"


"잘 그렸네요"


"감상은 그걸로 끝?"


"음, 화려하고 문양 자체는 여성스러운 문양인데 이미지가 강렬해요. 남자가 해도 이상하지 않겠네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연다.



"정성도 많이 담겨있는 것 같고. 근데 좀 크게 문신해야 느낌이 살거 같은데. 가슴팍정도"

"마음에 들어?"

"네, 뭐"



남자가 만족스러운듯 웃으며 다시 자켓 안주머니에 종이를 집어넣는다. 근데 왜 굳이 리터칭하라고 절 찾아와요. 장인정신인가? 술에 취한 로우가 당돌하다. 그것보다는 마음에 드는 사람의 문신은 끝까지 봐줘야한다는 정신? 다른 이유도 있고. 남자의 말에 로우가 큰소리로 웃는다. 잔에 남은 술을 다 털어마시더니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까지 다가가 눈을 맞춘다. 당신 변태야?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좀"



우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눈두덩이 안쪽까지 침범하는듯한 햇빛에 정신이 든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눈이 부시다. 천천히 눈을 뜨자 햇빛이 눈을 찌른다.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자신의 자취집이 아니라는 것. 몸을 뒤척이자 몸이 욱씬거린다. 어느정도 잠에서 깨자 로우는 자신이 바지만 입은 상태라는것을 깨달았다. 어제의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조커. 로우가 그 남자를 찾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불이 쓸리며 가슴께에서 느껴지는 따가움에 일어나기를 멈추고 이불을 들춰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일어났나?"


로우가 목소리가 들린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남자가 방 문턱에 기대어 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치솟는 분노에 당장이라도 그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다. 문신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꼬이는 기분이었다. 남자는 로우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짓을 한겁니까?"


"겁탈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 가슴에 문신한김에 손가락도 했고"



남자가 시원스럽게 웃는다. 다른 때였다면 호감형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미소가 지금은 악마의 미소 같아 보였다. 로우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다. 남자는 나이트 테이블에 올려져있는 약병을 로우의 손에 쥐어준다. 로우가 말없이 남자를 쏘아보았다.



"리터칭 하러 오지도 않을 것 같고, 하는 내내 아파하길래 한번에 진하게 색이 입는 염료를 썼거든. 근데 그게 독소가 있어서 이 약을 먹어줘야해. 한 세달정도. 거기 2주분 넣어뒀으니까 떨어지면 받으러 와"

"..."


"참고로 독소가 다 빠질때까지 하루라도 안 먹으면 독이 몸에 퍼져 죽을거야"



로우는 손을 들어 진하게 표시되어 있는 문신을 바라보았다.
DEATH. 닥터 히루루크로 인한 의사 로우의 죽음. 
DEATH. 미친 문신쟁이로 인한 인간 로우의 죽음.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는거에요?"


"마음에 들어서"


"네?"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고 로우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춘다. 처음으로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남자가 자그맣게 속삭인다. 본명은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나랑 만나볼 생각없나? 로우의 눈동자는 쉴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여는 모습에 도피가 몸을 좀 더 숙인다.



"죄송해요"



로우가 도피를 밀치더니 나이트테이블에 놓여있던 옷과 자신의 가방 그리고 약병을 챙겨서는 밖으로 뛰쳐나가버린다. 바닥으로 넘어진 도피가 로우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본다. 이내 현관문이 닫히고 로우가 사라져서야 정신을 차리고 큰소리로 웃는다. 도피는 몸을 일으키고 옷을 털어냈다. 로우가 잘못 가져가 남아버린 후드를 한번 쳐다보고는 기지개를 켰다. 후드도 있고, 약도 있고. 기회는 많았다. 첫인상에 하트를 떠올리게한 청년에 대한 흥미는 가실 줄을 몰랐다. 



"어떻게 꼬셔야 넘어오려나"



도피는 즐겁게 웃었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