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너랑 있는 난 어때?"
흐르듯이 던져진 말에 정적이 흐른다. 아카시는 자신이 내뱉어 놓고도 민망한지 뒷덜미를 쓸었다. 후리하타는 그저 고개만 푹 숙인채 바닥만 보고있었다. 애꿎은 신발코만 바닥을 툭툭친다. 아카시는 역시 어색하려나 싶어 몸을돌려 교토행 열차 승차장을 찾았다. 갈게. 아카시가 몸을 돌리는데 후리하타가 조심스럽게 그의 옷깃을 잡는다. 잔뜩 수줍어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를 바라본다.
"친구가 되긴 싫어"
단풍이 물들듯 그와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물든다.
마주보는 손바닥과 손바닥. 그 사이에 열기가 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쳐쥘뿐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다. 후리하타는 고개를 들어 별들이 촘촘하게 박힌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가 도쿄로 가기 전 마지막 날 밤이었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내려온 교토는 도시를 보기엔 충분했지만 연인과의 한 때로써는 한없이 짧았다. 후리하타는 아쉬움에 손에 힘을 꾹 준다. 아카시는 고개를 돌려 후리하타를 바라보았다. 푹 숙인 고개. 단정한 정수리. 아카시는 문득 그 곳에 입을 맞추고 싶어졌다. 손을 움찔하자 후리하타가 고개를 든다. 마주치는 두눈. 상기된 뺨. 이제 막 연인이 된 두사람에게 이런 밤은, 이런 열기는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아카시는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후리하타가 눈을 깜빡이더니 시선을 슬쩍 비껴옮긴다. 아카시 자신도 시선을 옮길까 하던 찰나에 다시 시선이 마주친다. 아직은 어린 욕망. 아카시는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맞대고만 있는 어린 욕망. 두사람은 숨을 멈추었다. 다시 숨이 트였을 때 떨리는 목소리가 말했다.
"잠, 못잘 것 같다"
"응"
잠 못 이룰 가을밤이었다.
당분간 도쿄에 있을거야. 후리하타는 그 텍스트를 처음 본 사람마냥 꼼꼼하게 읽었다. 도쿄. 가슴이 두근거려 핸드폰을 입가에 가져다대었다. 내일, 아카시가 도쿄로 올라오는 날이었다. 후리하타는 침대에 널브러져있던 몸을 일으켜 옷장을 바라보았다. 마땅한 옷이 없었다. 애인이라고는 사귀어 본 일이 없던 남고생이었기에 옷은 죄다 편안함을 최우선시 하는 것들이었다. 맨날 후드를 입는게 미안해 제대로 갖추어 입어볼까해도 그럴만한 것이 없었다. 날도 추워지는 마당에 정말 후드뿐이어다. 그러다 문득 옷장 한켠을 차지한 다른 종류의 옷이 눈에 띄었다. 후드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옷을 집어든다.
아카시는 도쿄에 따로 있는 오피스텔의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딱히 후리하타 때문에 도쿄에 올라온 것은 아니었으나 하루정도만 있어도 될 것을 일주일이나 늘린 것은 분명 후리하타 때문이었다. 아카시는 몸을 일으켜 거울을 한번 보았다. 혹시나 피부가 상하진 않았을까. 새삼스러운 자신의 모습에 아카시가 허탈하게 웃었다. 연애라는 건, 좋아한다는 건 기분좋은 낯설음이었다.
약속장소, 약속시간 10분전. 아카시는 앉아있을까 서있을까 고민하다 이내 근처의 기둥에 어깨를 살짝 기대었다. 너무 빨리 나온걸까, 온다면 어떻게 맞아야할까. 수만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아카시를 괴롭힌다.
"일찍왔네?"
갑작스럽게 들리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하얗게 물들여버린다. 수만가지의 생각은 하나의 거대한 흰점으로 바뀌어 혼란을 잠재운다.
"...너도"
아카시가 몸을 곧추 세운다. 한번 티나지않게 눈 앞의 후리하타를 훑어본다.
"후드"
"..응?"
"아니네"
아카시가 약간 굳은 손을 한번 쥐었다 핀 후에 후리하타의 베이지색 가디건을 만진다. 그리고 와인색의 목도리에 시선을 둔다.
"이것도 잘 어울리네"
아카시의 미소에 후리하타가 고개를 숙인다. 분명 얼굴이 붉을거야. 후리하타가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낮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내 후리하타의 약간 식은 손을 아카시의 따뜻한 손이 감싸쥔다. 조심스럽게 타인의 손길로 얼굴을 가렸던 것이 사라진다. 붉은 뺨의 후리하타가 아카시를 슬쩍 올려다본다.
"보고싶었어"
잔뜩 수줍어하는 얼굴과는 다르게 또렷한 목소리. 아카시가 후리하타의 어깨에 고개를 묻는다. 목도리의 울이 아카시의 뺨을 간지럽힌다.
"나도"
"나도 보고싶었어"
후리하타가 약간은 머뭇거리더니 아카시의 어깨를 감싸안는다. 이윽고 순백의 웃음소리가 아카시의 심장을 간지럽힌다. 귀 빨개졌어. 아카시가 손을 들어 자신의 뜨거운 귀를 어루만졌다. 응, 너때문에. 아카시의 입꼬리가 호선을 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