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인간 사이에 섞여있는 존재였으나 또한 인간과는 떨어진 존재였다. 노블레스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들을 '뱀파이어'라고 불렀다. 인간보다 우월했고, 그렇기에 인간을 섭취하는,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존재였다. 절대적인 존재. 그들은 인간들 사이에 있었지만 섞일 수 없었다.
인간들에게 그들은 경외의 존재였다. 공경하면서 두려워함. 딱 그 단어가 어울렸다. 그들에게 선택 받으면 기뻐하면서도 무서워했다. 마치 우연찮게 왕족의 눈에 들게되어 선택받은 미천한 존재인양. 그들은 존재만큼 짝이랄것이 없었다. 인간은 모두 그들을 떠받들었으며 그들과 무엇이라도 섞이길 바랐다, 그것이 몸일지라도. 그들에게 유일한 존재따위는 먼 과거의 이야기였다. 모든것이 오로지 그들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은밀히 뒷골목의 금지된 가게에서 장난감을 고르듯 인간들 사이를 배회하며 잇자국을 남겼다. 뚜렷한 송곳니 자국. 그것은 인간들 사이에서는 훈장과도 같았다. 뱀파이어와 인간. 지배자와 피지배자들. 그런 관계였고 그런 세계였다.
사무실 안이 시끄러워졌다. 후리하타는 피곤에 눈가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긴 생머리의 여자 하나의 목에 우후죽순 모여들어 무언가를 보고있었다.
"파르마콘"
예? 갑작스럽게 들리는 목소리에 후리하타가 고개를 돌린다. 버티컬에 팔을 기대어 무리들을 바라보던 히무로가 고개를 돌린다. 그깟 뱀파이어 잇자국이 뭐가 대수라고, 그치? 후리하타는 그 묘한 미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그렇다고 그들이 우릴 봐주나. 그 말에 히무로가 소리내어 웃는다. 피곤해보이는데 세수라도 하고 와. 몸을 돌려 가버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후리하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묘하게 기분 나빠보이는데. 일단은 피곤했던지라 몸을 일으킨다.
'어디서 만난거야?'
'느낌 어때?'
화장실 들어가기 전 아직도 떠나지 않은 무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후리하타는 한숨을 쉬었다. 슬쩍 보았던 여자의 목덜미의 작은 상처가 떠오른다. 섬뜩한 느낌에 후리하타는 목덜미를 쓸었다. 은은한 주황빛 조명이 비치는 세면대 앞에 서서 커프스를 푼다. 천천히 셔츠단을 오른쪽, 왼쪽 둘 다 관절께까지 올리자 손목부터 시작되는 무수한 상처들이 눈에 박힌다. 언제나 핏이 딱 맞는 포멀 수트. 그것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후리하타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셔츠 단추를 두개정도 풀자 역시나 울긋불긋한 자국들이 드러난다. 교묘하게 옷깃에 가리는 자리. 답답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정갈한 수트는, 그것은 보여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깟 파르마콘 개나 주라지"
화장실에서 간단히 손을 씻은 후리하타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창밖을 내다보자 짙은 어둠 사이로 네온사인이 반짝인다. 아무리 밝아도 사라지지 않는 어둠. 결국 어둠에 스러지느냐, 꺼질지도 모르는 빛을 계속해서 뿜어내느냐. 후리하타는 살
짝 구겨진 옷깃을 손가락 끝으로 폈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듯 옆자리의 동료가 고개를 버티컬 바깥으로 빼낸다.
"히무로씨가 불러"
귀찮게. 후리하타는 속으로 생각을 씹어 삼키고 고개들 끄덕였다. 모니터 옆 빽빽하게 붙여진 포스트잇에서 끝낸 일을 떼어내 쓰레기통에 버린다. 힘없이 추락하는 종이자락. 후리하타는 쓰레기통에 듬뿍 쌓인 종이조각들을 측은히 바라보았다가 시선을 돌린다. 대부분의 포스트잇은 사라져있었고 다섯장 정도만 드문드문 붙어있었다.
'연고'
가장 오래된 포스트잇이었다. 언제부터 연고를 바르지 못했는지 따져보다가 관둔다. 뱀파이어에게 유일한 존재가 있었던 것 만큼이나 아득하게 먼 이야기로 느껴졌다. 내가 연고를 바를 수 있는 날이 올까. 우울한 생각에 고개를 젓고 몸을 일으킨다. 히무로는 그의 자리 대신에 흡연실에 있었다. 후리하타는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덮치는 담배냄새에 인상을 썼다. 히무로가 작은 소리로 웃더니 그의 옆자리를 툭툭 두드린다.
"담배 안 좋아해?"
"아뇨, 좋아하는데 끊었어요"
히무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 때문에? 애인? 후리하타는 애인이라는 말에 눈을 내리깐다. 애인이라 부를 처지가 되던가, 동거인정도로 치부해둬야하나. 사실상 동거도 아닌데. 후리하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충동적으로요. 히무로가 웃는다. 아무리봐도 후리하타군은 이상한 사람이야. 그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더니 순식간에 후리하타의 넥타이를 쥐고 끌어당긴다. 목덜미에 닿는 차가운 숨결에 후리하타의 온몸이 굳는다.
"...히무로씨, 뱀파이어셨나요?"
순간 후리하타의 몸이 자유를 찾는다. 언제 그랬냐는듯이 물러나있는 히무로를 보며 후리하타가 옷을 다시 다듬는다. 이를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정체를 알아차리네. 후리하타는 감흥 없다는듯 손목을 들어 시계를 바라본다. 곧 퇴근할 시간. 몸을 일으켰다. 또 다듬는 매무새. 흡사 강박증과도 같았다.
"인간은 언제나 숨이 뜨거우니까요. 하지만 차가운 숨이였다해도 무서웠습니다"
히무로가 웃는다. 후리하타의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본인은 몰라도 히무로는 공포에 물든 그의 눈동자를 찾아냈었다. 일반적인 인간들보다 더 깊은 공포. 자신이 예민한 곳을 건들였다는 걸 깨달았다. 미안, 나 피해다닐 생각인가? 후리하타가 고개를 저었다. 히무로씨는 다정하니까요. 히무로도 몸을 일으킨다. 후리하타의 어깨를 툭 치더니 먼저 걸음을 옮긴다.
"곤란한 일 있으면 말해, 그렇게 언제나 무서움에 떨지말고"
언제나. 당신은 인간이 아니기에 이 상황을 모르지만, 그래도 친절을 베푸네요. 후리하타는 대답 대신 허리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