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피는 진동하는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번호라 무음버튼을 누르고 테이블에 던져버렸다. 다시 소파에 몸을 기대어 머리를 굴린다. 어떻게하면 로우를 다시 데려올 수 있을까. 하지만 다시 울리는 핸드폰에 생각이 끊긴다. 짜증스럽게 폰을 들어 통화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저번에 봤던 로우 친구인데요



핸드폰을 고쳐쥔다. 그래서. 수화기 반대편에서는 말이 없다. 할 말 없으면 끊어. 그러자 반대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잠시 좀 봤으면 하는데요.






*


"그녀석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쪽이랑 관련된 거 같아서요"


"용건이 뭐야"


"로우가 자해를 했어요"



도피가 이마를 짚었다. 예상을 자꾸 엇나가는 행동에 심장이 조마조마하다. 자세히 말해봐. 키드가 머리를 긁더니 입을 연다. 추측일뿐인데요. 주말동안 연락도 안되고 과수석인 녀석이 과제도 안 내고 그래서 집에 가봤는데 화장실이 피투성이였어요. 일부러 날이 상한 칼로 상처자국 남게 자해한 것도 그렇고, 유독 가슴의 문신부분만 상처가 심한것도 그렇고. 로우랑 무슨 일 있었습니까. 키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피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하자 키드가 그의 팔을 억세게 잡는다.



"납득가는 설명없이는 로우에게 가지도, 도망가지도 못합니다"



결국 다시 자리에 앉는다. 앞에 놓인 얼음믈을 한번에 들이마셨다. 



"오해로 싸웠어. 어렸을 때부터 거둬서 키워준 꼬마가 가게에 놀러왔는데 어리광이 심해. 스무살이 넘어서도 어렸을 때의 어리광을 부리는 녀석인데 간만에 만나서 어리광을 받아주고 있었는데 로우가 그 모습을 본거야"


"어리광이요?"


"꼬마들이 부모 무릎에 올라가서 관심 달라고 칭얼거리지않나"



키드가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차린다. 왜 해명하지 않았어요. 도피가 한숨을 쉰다. 나도 그 때 로우랑 문자하던 남자를 오해해서 화가 났었거든. 생각보다 꼬여있는 상황에 키드가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아니 그 여자랑 그쪽이랑 아무 관계가 아니라는걸 어떻게 설명해요. 다 큰 여자가 무릎에 올라간 것 자체가 엄청난 쇼크인데요. 그녀석 남자친구 있어, 그리고 모네랑 같이 자랐고. 모네가 증언해줄 수 있어. 키드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듯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로우 보러갈겁니까"


"물론"






*

키드는 도피를 병원까지 안내해주고 자리를 비켜주겠다며 사라졌다. 도피는 키드가 알려준 병실을 찾아 복도를 걷고 있었다. 트라팔가 로우. 병실문을 열자 큰 공간에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대학생이라 돈도 없을텐데 비싼 1인실을 잡은거보니 웬만한 우정이 아닌듯했다. 침대로 다가가자 수척해진 로우가 누워있다. 조심스럽게 병원복 목부분을 들추어내지 붕대로 전체를 감싼 가슴이 보인다. 그렇게 미웠나. 한켠에 놓인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내 계획이 너무 과했나보군"



로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디부터 밝히고 어디까지 숨겨야 하는가. 이렇게 된 상황에서도 숨길것을 가려내는 자신의 모습이 우습다. 나는 정말 좋은사람이 아니군. 도피가 씁쓸하게 웃는다. 로우의 한손을 잡아 올려 문신이 새겨진 부분에 키스를 한다. 

로우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잠에서 깼다. 하지만 눈두덩이가 무거워 눈을 감은채로 그 손길을 그저 느끼고 있었다. 어렴풋하게 맡아지는 향기가 도피의 향과 비슷하다. 눈을 뜨려는데 도피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서부터 말해야할까"



로우는 눈을 뜰 생각은 접어두고 도피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 하트 문신은 너가 제일 처음 문신하러 왔을 때 널 보자마자 떠올라서 그린거야. 문신을 그릴때 한번도 하트에 내가 좋아하는 스마일 마크를 넣어본 적이 없었는데 너를 처음 보자마자 생각난 문신이 그 두개를 섞은 문신이었어. 전문적인 용어로 첫눈에 반했다라고 하지? 너가 리터칭 하러 오면 해보지않겠냐고 권하려고 했었어. 근데 너는 오지 않더군. 오기가 들어서 거의 납치하다싶이 널 데려와 문신을 박았지.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 사죄하는 마음으로 너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고, 여러모로 챙겼어. 근데 어느순간부터 욕심이 생기는거야.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 고백을 하려해도 네가 마음을 숨기고 있는것같아 보여서 도발하려고 질투작전을 짰었지. 결과적으로 계획은 실패했어. 계획을 위해 가게로 부른 그 아이는 내가 모네와 같이 어렸을 때 데려와서 키운 녀석이야. 거의 딸과 같다고 생각하면 돼. 커서도 어리광이 심한애라 그때도 어리광 부렸던거야. 그걸 너가 보게될줄은 몰랐어. 그리고 너가 이만큼 화났는지도 몰랐어. 난 네가 이렇게 화낼만큼 날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거든. 뭐. 이것도 다 변명이지. 미안하다"



도피가 로우의 손을 더 꽉 쥔다. 나를 생각하면서 이렇겎지 분노해줘서 고마워라는 말은 목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숨길건 숨겨야하니까. 로우의 손가락 문신을 천천히 다시 뜯어본다. 이 손의 H 부분은 중간에 실수를 해서 다른 글자보다 획이 좀 더 굵었다. 엄지로 손등을 살살 쓸면서 처음 로우를 봤을 때를 떠올렸다. 그 때가 초봄이었는데 벌써 여름이었다. 한참 생각에 빠져있는데 웃음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숙이자 로우가 눈을 감은 상태에서 웃고있었다.



"당신 처음부터 그랬지만 진짜 또라이야"



로우의 눈이 천천히 떠진다.



"찝찝한 느낌 때문에 계속 마음 숨겼던건데, 그게 이거였어"


"내가 화나게했다고 그렇게 자해하는 너도 만만치않아"


"너무 화가나서. 한번 마음가니까 욕심도 생기고"


"나돈데. 천생연분이네"



로우가 크게 웃는다. 도피가 몸을 숙여 로우의 뺨에 뽀뽀를 한다. 도피. 응. 순서가 좀 이상해. 말의 의도를 알아차린 도피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퇴원할때까지는 말 안할거야, 그 때까지 뽀뽀도 안할께. 그런게 어디있어. 억울하면 빨리 나아서 퇴원해. 이건 여운을 느끼라는 서비스. 도피가 깊게 입을 맞춘다.






*

"요즘 핫이슈더군"


"뭐가?"


"너"



로우가 소파에 누워있다 몸을 돌려 엎드린 상태에서 닥터를 본다. 이제 곧 기말고사였다. 즉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캠퍼스의 대부분은 반팔을 입고 다녔고 로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사건의 발단은 로우가 -도피에게 선물받은- 검은 브이넥 티셔츠를 입고 왔을 때였다. 손가락뿐만이 아니라 가슴에도 한 문신, 그것도 엄청 큰. 그리고 살짝살짝 드러나는 가슴께로 보이는 상처자국들. 적당히 근육도 잡혀있어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짐승남, 나쁜남자라는 별명이 오갔다. 결국 그 별명이 교수들의 귀에도 들어가 로우는 의과대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인텔리짐승남. 그게 로우의 수식어였다. 닥터는 엎드린탓에 훤히 드러나는 로우의 가슴팍을 바라보곤 혀를 찼다.



"여자애들도 불쌍하지. 이루어질 확률이 제로인데"


"뭔말하는거야"


"인텔리짐승남"



아, 그거. 로우가 다시 몸을 돌리더니 짧게 웃는다. 그러게 나 애인도 있는데. 닥터가 눈을 크게 뜬다. 결국 연애하는거냐. 로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을 집는다. 문자를 보내고 다시 테이블에 던진다. 안그래도 그거 이상한 별명때문에 귀찮은 일이 자꾸 생겨. 로우의 말에 닥터가 웃는다. 



"건방진녀석이 많이 차분해졌군"


"차분하졌다고?"



닥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펜을 든다. 일할거니까 수업 끝났으면 집에나 가라, 이녀석아. 닥터의 축객령에 로우가 몸을 일으켰다. 에어컨이 빵빵했던 사무실을 나오니 금방 더위가 훅 끼친다. 로우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까 문자의 답장이 와있었다.



[데리러갈까]


[그래야할것같아. 이 주변 다니면 여자애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봐]



건물계단에 대충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기말고사가 곧인데도 놀자 분위기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정말 여유없이 살았구나. 로우가 다시 폰을 본다.



[기다려]


[의과대학 건물로 와]



핸드폰으로 한참 동물들을 팡팡 터트리는 게임을 하던중 의대 건물 앞에 검은 차 하나가 선다. 운전석이 열리더니 핑크색 구두가 보인다. 도피네. 로우가 웃는다. 도피가 차에서 내리더니 계단에 앉아있는 로우를 본다. 전체적으로 검은 티와 바지 덕분에 핑크색 구두가 눈에 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번씩 도피를 쳐다본다. 로우가 가만히 앉아있자 도피가 계단을 올라와 로우의 옆에 앉는다.



"브이넥 입지 말랬지"


"빨래하고 남은 옷이 이거뿐이였어"


"옷사줄께 쇼핑하러가자"



로우가 크게 웃더니 몸을 일으킨다. 쇼핑은 시험끝나고, 기말고사 공부해야돼. 도피도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턴다. 그럼 집으로 데려다줄까. 오늘 가슴문신 리터칭해준다며. 도피가 짧게 웃는다. 그래.



"근데 가슴문신 리터칭 해주다가 흥분하면 어쩌지"


"처음하는 사람처럼 굴지마"


"난 언제나 처음한다는 마음으로 타투하는데"



들을가치도 없다는듯이 로우가 조수석에 타버린다. 너무하네. 도피도 차에 올라탄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