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로코의 농구 TS 합작(http://knbts.weebly.com)에서 아카시TSx후리하타TS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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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에는 물빛이 일렁거렸다. 


 후리하타는 창문을 여는 소리에 힘들게 눈을 떴다. 빛의 세기로 봐서는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분명 이 방은 후리하타 혼자서 쓰고 있을 터였는데 창문이 열리자 후리하타는 의아함을 느끼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제가 깨웠나요?”


 들리는 목소리에 후리하타가 2층 침대 밖으로 고개를 빼내자 진저헤어의 긴 생머리인 한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나름 소리 죽여서 열었는데 미안해요. 후리하타는 고개를 저었다. 깔끔한 영어를 쓰는 게 서양 사람인 듯 했다. 여자는 창문 밖을 한번 보더니 짐들 사이에서 비싼 카메라를 꺼냈다. 후리하타는 조금 고민하다가 이왕 외국에 와서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거 한번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더듬더듬, 최대한 발음을 정확하게 하여 여자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자 여자는 뷰파인더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Japan. 후리하타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모국어인데도 불구하고 더듬더듬 말했다.


 “이, 일본이요? 일본인이신가요?”


 그제야 여자가 뷰파인더에서 시선을 거두더니 후리하타를 바라보았다. 한국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본인이셨네요. 후리하타는 멋쩍게 웃었다. 일본인입니다. 여자는 카메라를 침대에 두더니 외투를 챙겨들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아침 먹을래요? 후리하타는 고민하더니 금방 내려가겠다고 답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을 나섰다. 여자가 나간 후에 후리하타는 씻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향했다.


 씻고 1층의 카페테리아로 향하자 여자는 토스트를 테이블에 둔 채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후리하타는 대충 시리얼을 담아 여자 앞으로 가서 앉았다. 여자는 인기척이 들리자 고개를 들더니 후리하타를 보며 웃었다. 베네치아엔 언제 오셨나요. 후리하타는 시리얼을 한입 먹고 눈동자를 굴렸다. 이제 삼 일째에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언제 가시나요? 다음 주 금요일 비행기에요. 여자가 잠깐 생각하는 듯 인상을 쓰더니 웃었다. 저랑 같네요. 후리하타는 시리얼을 먹다말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엣, 정말요? 여자는 모바일 비행기 티켓을 후리하타에게 보여주었다. 후리하타는 눈을 크게 떴다. 입에서는 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다닐래요?”

 “전 괜찮지만…”

 “저도 좋아요. 아카시 세이쥬로에요.”


 후리하타는 아카시라는 이름을 읊조렸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이름이시네요. 마지막 사내 랑 아닌가요? 아카시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들을 기대한 집안의 소원 인거죠. 후리하타는 입을 다물었다. 아카시는 토스트를 한 입 먹더니 옆에 뒀던 여행책자를 후리하타에게 건넸다. 어디 다녀오셨나요? 아, 저 어제는 그냥 배타고 돌아다니기만 해서요. 오늘부터 제대로 된 여행 시작입니다. 아카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자에 표시해 둔 한 부분을 폈다. 오늘 여기 가볼까 생각중인데. 전 좋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해맑게 웃는 후리하타를 보며 아카시 또한 마주 웃었다.


 “후리하타군은.”

 “응?”


 아카시의 부름에 난간을 짚고 저 멀리 수평선을 보던 후리하타가 고개를 돌렸다. 바람에 흩날리는 웨이브 진 갈색머리카락이 거슬리는 듯 후리하타는 자꾸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아카시를 보기 위해 노력했다. 아카시가 그 모습을 보고 웃더니 손목에서 머리끈을 꺼내 후리하타에게 주었다. 후리하타가 고맙다며 웃더니 머리끈을 입에 물고 머리를 한 곳으로 끌어모았다. 머리를 묶으려 해도 거울이 없는지라 자꾸 실수를 하자 아카시가 후리하타의 머리를 잡았다. 내가 묶어줄게. 후리하타는 눈을 깜빡이더니 머리끈을 넘기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평소에는 머리를 잘 안 묶어서 서투르네. 아카시가 눈꼬리를 접어 웃더니 후리하타의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다.


 “그것보다 아까 하려던 이야기가 뭐야?”

 “…까먹었어.”


 후리하타가 김빠지는 듯 웃더니 고개를 돌렸다. 아카시는 그런 후리하타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후리하타의 옆에 섰다. 사진 찍으러 왔다했나? 아카시는 후리하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후리하타가 다시 바다를 보더니 기분 좋은 듯 미소 지었다. 나도 찍어줄 수 있어? 아카시는 조금 고민하더니 카메라를 들었다.


 “앗. 뭔가 어색하다.”

 “카메라 볼 필요 없어. 아까처럼 바다 보면 돼.”

 “으응.”


 후리하타는 멀리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보다가 그 아래의 물빛이 잔뜩 일렁이는 바다를 보았다. 물빛. 후리하타는 그와 상반되는 붉은빛 아카시의 머리카락을 떠올렸다. 며칠간 본 아카시는 머리색이 불을 연상시킴에도 묘하게 물의 부드러움과 잘 어울렸다. 그 점이 흥미로워 후리하타가 입꼬리를 올려 웃는데 카메라의 셔터소리가 들렸다. 후리하타가 움찔거리며 옆을 돌아보자 그 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몰래카메라 같네. 비슷하지. 사진 봐도 돼? 인상하면 보내줄게. 후리하타는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발길을 돌렸다. 가자. 아카시가 후리하타의 뒷모습을 보더니 소리 내서 웃었다. 삐지지 마. 삐진 거 아니야!


 후리하타는 침대 위에서 창밖의 야경을 보는 아카시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해. 후리하타의 말에 아카시가 놀라더니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일이면 일본으로 돌아가겠다 싶어서. 후리하타는 눈을 깜빡이더니 몸을 웅크렸다. 으응, 아쉽네. 아카시가 웃더니 창문을 닫고 후리하타의 침대맡으로 다가왔다. 일주일동안 재미있었어. 후리하타는 이별을 고하는 연인같이 말하는 아카시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들어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바짝 다가와 있던 아카시와 시선이 얽혔다. 아카시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후리하타군.”


 침묵이 흘렀다. 후리하타는 대답을 하려 입술을 열었으나 이내 다시 다물었다. 대답하기엔 너무 늦었다. 아카시가 손을 들어 후리하타의 뺨을 한번 쓸더니 눈가를 엄지로 훑었다. 후리하타가 눈을 움찔거리더니 아카시를 바라보았다. 아카시가 찰나에 무언가를 참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면서 손을 뗀다. 뭐 붙어있었어. 후리하타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뺨을 쓸었다. 고마워. 아카시가 몸을 돌리더니 밖으로 나간다. 후리하타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 후에 몸을 잔뜩 웅크려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뭐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얽힌 시선과 스쳐 지나간 아카시의 표정. 후리하타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아카시는 조금 늦게 다시 방으로 돌아왔지만 후리하타는 아카시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도 잠을 자지 못했다.

 

 도대체 그건 뭐였을까. 후리하타는 비행기에서도 그 생각을 놓지 못했다. 다행히 아카시와는 좌석이 달라 같이 앉지 않았지만 후리하타는 고개를 빼면 약간 보이는 아카시의 진저색 머리카락을 보며 고민했다. 베네치아공항에서 나리타공항까지, 그 먼 거리를 비행하는 동안 후리하타는 많은 가능성에 대해 떠올렸지만 그 모든 것은 상상인 만큼 금방 흩어져버렸다. 결국 착륙할 때쯤 거의 포기한 상태가 되었다. 후리하타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 혹시라도 아카시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사람이 많아 아카시를 찾기 쉽지 않아 여기까지가 인연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멍하게 서서 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이 포장지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집어 들더니 수취인의 이름을 불렀다.


 “후리하타 코우키님.”


 반사적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직원이 다가오더니 티켓을 보여 달라고 말을 하자 후리하타는 당황하며 여권에 꽂혀있는 티켓를 빼 직원에게 건넸다. 직원이 받아들더니 물건을 후리하타에게 주웠다. 물건을 받아 이리저리 훑어보았지만 후리하타는 반입금지 물품 같은 것을 넣은 기억이 없었다. 후리하타는 조금 멍해지는 기분에 잠깐 먼 곳을 바라보았다가 포장지에 쌓인 정체모를 쪽지를 뜯어보았다. 그 곳엔 베네치아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 두 장과 곱게 접힌 쪽지 하나가 있었다. 아카시였구나. 후리하타는 조금 신나는 기분으로 쪽지를 펼쳐보았다. 쪽지엔 정갈한 글씨가 적혀있었는데 그 글씨를 읽어 내려갈수록 후리하타의 표정은 점점 묘하게 바뀌었다. 이윽고 쪽지를 전부 읽었을 땐, 후리하타는 짐을 찾을 생각도 잊은 채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급하게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와 후리하타는 쪽지에 적힌 게이트를 향해 달렸다. 후리하타는 자신이 있는 곳과 매우 먼 곳에 있는 게이트를 보며 혀를 찼다. 가면 안 돼, 가면 안 돼. 후리하타가 찾던 게이트의 숫자가 보이고 어렴풋하게 인파 속에서 진저색이 보이자 후리하타는 소리쳤다. 

 “아카시!!!!”


 공항을 울리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멈춰 서서 후리하타를 바라보았고 그 사이에 아카시 또한 놀란 표정으로 후리하타를 보고 있었다. 후리하타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아카시에게 달려들었다. 아카시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팔을 벌리자 후리하타가 아카시의 품에 달려들었다.


 “왔네.”


 부드러운 목소리에 후리하타가 고개를 들었다. 바보야! 아카시가 웃더니 후리하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와줘서 기뻐, 코우키. 후리하타가 아카시를, 아카시가 후리하타를 더욱 더 꽉 껴안았다.


 거기엔 푸른빛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