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도님 (@byspxm) 께 드리는생일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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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세는 눈을 깜빡였다. 세상에 자기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자랐다. 그렇게 살아온 약 십여년이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객관적으로는 자신이 아름다웠다. 식이요법과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온 몸과는 비교도 안되는 온통 근육뿐인 몸이었지만 키세는 눈을 떼지 못했다. 카랑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키세의 시선 끝에 있는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키세는 저도 모르게 펜스에 붙어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잡힌 근육에 맺히다가 떨어지는 물방울. 키세는 침을 삼켰다. 남자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키세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굳이 앉아서 그와의 시선을 좁히려 하지 않았다.


"용건 있어?"


생각보다 다부진 목소리에 키세는 옅게 숨을 뱉었다. 대답이 없자 남자가 인상을 쓰더니 발 끝으로 펜스를 툭 쳤다. 쇠끼리 마찰되어 또 카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제서야 키세는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뭠까?"




그 때를 생각하면 키세는 아직도 얼굴이 붉어졌다. 수많은 작업멘트 중 가장 촌스럽고 전혀 먹히지 않을 멘트였다. 이름이 뭐냐니. 키세가 이마를 짚자 옆에 있던 카사마츠가 힐긋 시선을 돌린다. 뭐하냐. 아무것도 아님다. 키세는 조금 뾰루퉁해져서는 다시 그 때를 떠올렸다. 키세는 말을 뱉고 난 다음에서야 후회를 했고 카사마츠는 조금 고민하더니 펜스를 세게 발로 찼다. 건방지게. 너부터 얘기해. 딱봐도 1학년이잖아. 키세는 당황했다. 순정만화 같은 순간이었다. 날 이렇게 대한 건 선배가 처음임다! 물론 그 얘기 했다가 맞은 적이 있었다. 키세는 처음으로 버벅거리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카사마츠가 키세의 이름을 입 안에서 굴리더니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건방진 기생오라비 모델?'

으아아. 키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리자 카사마츠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진다. 미쳤냐. 그러더니 여느때처럼 키세를 발로 찬다. 너무함다! 키세의 외침에도 카사마츠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척척 나아갔다. 키세는 아픈 허벅지를 쓰다듬다가 뛰어서 카사마츠의 옆에 섰다. 반한 사람이 죄지. 키세가 들키지 않게 혀를 차며 카사마츠를 향해 웃었다.


"선배 오늘은 야외에서 연습함까?"

"어."

"저 봐도 됨까?"

"어."


매정한 사람. 키세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영장으로 들어가는 카사마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오는 한숨. 지금 키세 료타는 답지않게 맥을 못 추었다. 평소와 같으면 모델일을 하면서 키워온 말솜씨로 자신에게 넘어오게 하고도 남았을텐데 카사마츠에게는 그 무엇도 통하지 않았다. 몇 번 써먹어 봤다가 허벅지에 멍이 들 정도로 발로 차였다. 키세는 자리를 옮겨 실외 수영장의 펜스에 기대었다. 어떻게 하면 카사마츠가 자신을 바라볼까. 키세는 곱게 정리된 머리를 헝클었다.


"뭐하냐."


그 때처럼 무릎 살짝 안되게 오는 수영복을 입은 카사마츠가 키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을 적시고 나온 탓에 햇빛을 받은 물방울들이 바닥으로 투둑 떨어졌고 키세는 데자뷰를 보는듯 기분이 멍해졌다. 그 때와 똑같은 기분. 키세는 또 저도 모르게 말을 뱉어냈다.


"좋아함다, 선배."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