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장이 크게 뛰었다. 주변에는 피가 낭자했고 손에도 옷에도 피가 얼룩덜룩 묻어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의 목소리는 꽤 큰듯했지만 귓가에 다가왔을때는 웅웅거림으로 바뀌었다. 피 묻은 손으로 더듬더듬 지혈제를 찾아 상처부위에 뿌리고 꾹 눌렀다. 당장 수술실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간은 저녁이었고 수술을 집도할만한 의사는 이제서야 병원으로 오고있었다. 로우는 자신의 숨이 곧 끊어질마냥 헐떡거렸다. 멈추지않는 피로 손이 붉게 변한다. 자신의 가운을 잡은 손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면서 로우는 무언가 꺼져감을 느꼈다. 안되는데 안되는데. 로우는 입술을 물었다. 피투성이의 손으로 가운을 쥐고있던 환자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요. 그렇게 읊조리면서 로우는 상처부위를 꾹 눌렀다. 하지만 피가 멈추기도 전에, 의사가 병원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그 손은 힘을 잃었다. 

밤바람이 머리카락을 헤집어놓는다. 로우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열손가락에 쓰인 죽음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손을 꽉 쥐었다가 폈다. 한참을 바깥바람을 쐬며 손을 보고 있으니 선배 한명이 다가온다. 로우의 어깨를 툭치더니 괜찮냐고 묻는다. 손에서 시선을 떼 고개를 든다. 로우의 표정을 보더니 선배가 뒷머리를 긁는다. 사람 죽은건 이번이 처음이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만 감돌다가 선배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곧 익숙해질거야. 그렇게 다시 ER로 들어가는 선배의 등을 바라보았다. 로우도 들어가려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잡는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라"



등 뒤에서 들리는 닥터 쿠레하의 목소리에 로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집에 도착하니 도피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거의 새벽에 집에 들어오거나 병원에서 자던 로우가 일찍 들어오자 도피가 신기하게 쳐다본다. 오늘은 일찍 왔네. 도피의 말을 분명히 들었을텐데도 로우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로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도피가 로우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옷도 갈아입지 않은 로우가 침대에 이불을 둘둘 말고 웅크리고 있었다. 다가가 침대에 걸터앉자 로우가 잠깐 시선을 보내는듯 하더니 이내 눈을 감는다.



"무슨일이야"



도피가 부드럽게 로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만히 그 손길을 느끼다가 이내 입을 연다.



"사람이 죽었어"


"..."


"손을 잡고 있었는데 죽었어"



그 사람은 내 손가락에 있는 문신을 봤을까. 그걸 보고 두려움을 느꼈을까. 죽음의 그림자가 보였을까. 그 사람이 죽었을 때말이야 가슴 속에서 이상한 게 솟구쳤어. 이상했어. 그 감각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그게 손 끝까지 퍼져서 저릿저릿해. 도피는 쉴새없이 말을 뱉어내는 로우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어줄뿐이었다. 로우는 사람을 살리는 손이었다. 그에 비해 자기는 사람을 죽이는 손이었다. 도피는 로우를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한번도 사람의 죽음에 동요한 적은 없었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다 도피는 자신이 처음 살인을 저질렀을 때가 떠올랐다. 이제 말을 멈춘 로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얘기 하나 들어볼래?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장 처음 사람을 죽였던게 14살이였어. 조직에서는 들어온지 1년정도 됐으면 이정도 일은 할 줄 알아야한다며 나에게 떠맡겼어. 어렵지는 않았어. 그냥 술에 취해있을 때 칼로 푹. 그거면 끝이였거든. 다른 사람이 술을 잔뜩 먹이고 소파 뒤에 숨어있다가 남자가 정신을 못 차릴 때 배에 한번, 왼쪽 가슴에 또 한번. 마지막으로 목에 한번. 목을 찌를때는 피가 튀어서 손이 피로 물들었어. 그렇게 사람을 죽였는데 처음에는 너무 무서운거야. 온갖 감정이 다 들었지. 드려움, 공포, 슬픔, 분노. 근데 그런 감정은 순식간이였어. 시간이 좀 지나니까 이상한 감정이 샘솟더군. 굳이 표현을 하자면 희열, 쾌감 이정도의 감정이었어. 그 이후로는 사람 죽이는데에 별 감정이 들지않았지"

로우가 짧게 웃는다. 당신답군. 도피가 다시 로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정이 됐어? 응, 덕분에. 로우가 웅크렸던 몸을 핀다. 당신 때문에 나도 이상한 이야기로 위로를 받아. 도피가 웃더니 몸을 일으킨다. 나한테 푹 빠졌나보네. 이제 로우는 큰소리로 웃었다.






*

도피는 무료함에 미칠것 같았다. 로우는 바빠 일주일동안 1시간 이상을 본 적이 없고, 조직일은 이제 안정이 되어 한가로웠고, 타투샵은 여느때와 같이 손님이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로우와 안 한지 벌써 두달째였다. 일찍 들어오는 날에는 피곤하다며 관계를 거부했고 다른날은 병원에서 자는 일이 허다했다. 역시나 오늘도 로우는 당직이었고. 그는 지금 심각한 욕구불만이었다.



"도련님 이만 가게문 닫을까요?"



고개를 끄덕였다. 모네가 가게를 정리하고 가방을 챙긴다. 아, 도련님 그거 아세요? 도피가 고개를 돌려 모네를 바라본다. 홍등가에 도련님이 유독 챙기던 가게, 마담이 바뀌었다네요. 아아 그래. 모네가 도피의 시큰둥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가게를 나간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가게 안은 적막이 감돈다. 결국 마담이 그렇게 넘겨줄거라고 하던 아이에게 줬나. 도피가 몸을 일으켰다. 2층에서 외투를 챙겨입고 가게 밖을 나섰다. 저녁시간이라 거리는 붐볐고 홍등가는 더 붉은 빛을 띄었다. 아슬아슬한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이 가게 앞에 앉아있다. 도피가 그 중 한 가게에 들어갔다. 도피를 보자마자 가게 여자들이 마담을 부른다. 이제는 다 늙어버린 마담이 가게 안쪽에서 나온다.

"마담 은퇴했다며"

마담은 짧게 웃더니 고개짓으로 여자를 가리킨다. 저렇게 젊은 여자가 마담해도 돼? 나도 저 나이때부터 했어. 도피가 웃는다. 장사는 잘 돼? 마담이 고개를 젓는다. 원래 이쪽 사람들은 잘 되던 안 되던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야 동정으로라도 손님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으니까. 그걸 아는 도피가 가게 여자들을 훑어본다. 안그래도 요즘 욕구불만이었는데 매출 좀 올려줄까? 






*

로우는 물을 마시다말고 도피를 바라보았다. 도피는 티비에서 해주는 별 재미도 없는 드라마를 보고있었다. 보통 자기가 이 시간에 들어오면 꼭 달라붙어서 어떻게든 침대로 끌고가려던 도피였다. 얼마전에는 짜증도내고 억지로 침대로 끌고가기도 했었다. 드디어 득도라는 걸 한건가. 로우가 물이 담긴 컵을 내려놓고 도피에게 다가갔다. 일부러 도피의 다리에 올라가 앉았다. 도피의 시선이 티비에서 로우로 옮겨진다. 손 또한 리모컨에서 허리로 자연스럽게 옮겨졌고.



"득도했나?"



로우의 질문에 도피가 큰 소리로 웃는다. 무슨말이야. 커다란 손이 로우의 뺨을 쓰다듬는다. 로우가 고개를 숙여 도피의 입술에 키스한다. 입술사이로 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술 마셨어? 로우가 웃는다. 아니, 간만에 땡겨서. 도피가 다시 로우에게 깊게 입을 맞춘다. 



"침대로 갈까?"


"아니"



로우가 관능적으로 웃더니 도피의 셔츠단추를 풀며 목덜미에 입술을 묻는다. 오늘은 내가 봉사해줄께. 






*

후덥지근한 밤공기가 목을 조르는 것 같다. 로우는 피묻은 옷의 목깃을 잡고 펄럭거렸다. 방금 교통사고로 온 환자가 결국 사망했다. 여름이 되면서 한달새에 환자들이 늘었다. 열대야가 되면서 밤에 돌아다니다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당하는듯 했다. 그 중 교통사고가 제일 많았고. 덕분에 로우는 인간의 죽음을 벌써 두손으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겪었다. 시체 안치실로 향하기 전 유가족을 기다리기위해 한켠에 놓아둔 간이침대를 바라보았다.



"이제 익숙한가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선배가 웃는다. 로우가 그런 선배를 바라본다. 그런가요? 로우가 뒷머리를 긁는다. 오늘은 이만하고 들어가. 로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피 묻은 옷을 바라보았다. 흠. 짧게 숨을 내쉬고 라커룸으로 향한다.

택시에서 내렸을 때는 새벽 1시였다. 그냥 병원에서 잘 걸 그랬나. 로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병원에서 자는 게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토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을 때, 그 때 드는 묘한 느낌에 병원에서 자야했었다고 생각했다. 온통 어두운 집안에서 유일하게 빛이 새어나오는 방문을 열었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응... 으.... 앗! 아, 아, 아"



침대 위에 몸을 섞고있는 나체의 여자와 나체의 남자. 여자는 몰라도 남자는 로우가 알고있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문 앞에 서있는 로우를 보고 몸을 일으켰다. 조커 손님 왔는데? 그제서야 도피가 고개를 들어 로우를 바라본다. 아, 왔어? 그의 태연한 물음에 로우는 웃었다.



"요즘 좀 조용하다 했더니 이유가 이거 때문이였구나"



뭐, 어쩔수없지, 내가 바쁘니. 하던거 마저 해. 로우가 몸을 돌려 방을 나간다. 도피는 닫히는 문을 보며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울거나, 질투하거나, 화내거나 아무튼 어떤 감정이라도 드러낼줄알았는데. 하지만 이내 생각을 지우고 다시 여자와의 행위에 집중했다.






*

아침에 눈을 떠 거실로 나가니 로우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시리얼을 먹으며 신문을 보고 있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도피를 보더니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여자는? 새벽에 보냈어. 도피가 로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로우는 간밤에 났던 교통사고에 대한 기사를 보고있었다. 로우가 손을 들어 기사에 적힌 피해자의 가명을 짚었다.

"이 사람 죽었어"
"그래? 아쉽네"

로우가 웃는다. 당신이 사람 죽은 거에 아쉽다고 하니까 웃겨. 어느새 비워진 그릇을 싱크대에 넣는다. 오늘 당직이니까 병원에서 잘거야. 도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