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8[각주:1]






*


"킬빌이라는 영화에서보면 말이야, 여기를 찌르면 엄청 아프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기절하면 안되는데. 여자의 머리카락이 틀어잡힌다. 기절하기 전에 편안하게 죽여줄께. 걱정하지마 나 의사거든.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여자의 몸이 축 늘어진다. 죽은 여자의 몸에 사정없이 칼을 찔러 넣는다. 즐거워보이는 그의 표정이 기괴하기보다는 오히려 황홀했다.




"나참 이게 무슨일인지"




도피가 피가 흥건한 창고의 중앙으로 걸음을 옮긴다. 한참 여자에게 가있던 시선이 도피를 향한다.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얼굴이 활짝 웃는다. 도플라밍고. 손에 쥐고있던 여자의 머리칼을 쥔채로 자신의 앞에 선 도피를 향해 몸을 돌린다. 지금 그 모습 많이 야해, 로우. 웃음소리가 들린다. 있지, 도피. 이년이랑 붙어먹으니까 좋았어? 로우가 이미 죽어버린 여자의 머리를 놓는다. 나보다 더 좋았나? 몸 파는 년의 허리짓이 더 흥분되던가? 응? 칼을 든 손이 빠르게 도피의 목덜미를 노린다. 몸을 뒤로 빼 칼을 피하고 곧바로 로우의 팔목을 쥐었다. 도피의 악력에 의해 칼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도피는 나머지 한 손으로 로우의 검은 머리칼을 움켜잡았다. 창고 안은 로우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솔직히 흥미를 좀 잃고 있었는데 말이야. 방금 다시 반해버렸어"




지금 너 엄청 섹시해, 알아? 꼴려. 도피가 로우에게 입을 맞춘다. 혀를 빼내어 피가 묻은 아랫입술을 훑는다. 자연스럽게 잡히지 않은 로우의 한쪽 팔이 도피의 목을 감싼다. 혀를 얽고 입술을 핥는다. 잠깐 입술이 떨어졌을 때 도피가 웃는다. 




"여기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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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로우는 병원을 관뒀다. 대신 도피네 조직의 의사가 되었다. 도피도 타투샵을 정리했기에 굳이 그 곳에 살 필요가 없어져 재작년말에 두사람은 조직의 본거지인 별장으로 들어왔다. 1년사이 조직이 사업의 범위를 확장해 도피는 바빴다. 한달에 일주일도 못 보는 경우가 많았고 그마저도 없을 때가 있었다. 무료해진 로우는 최근 1년 동안 취미삼아 조직원들에게 싸우는 기술을 익혔다. 처음에는 체력이 없어 금방 지치고는 했는데 이제는 웬만한 조직원만큼 해내는 로우를 보며 베르고는 감탄을 했었다. 로우는 조직원들끼리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토너먼트식으로 진행되는 경기에서도 꽤 상위권을 차지했었다. 




-형은 똑똑한데, 동생이 막무가내야.


"그래도 동생이 사업수완은 좋다며"


-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


"너도 마음에 드냐?"




몰라, 오늘은 그 놈 때문에 피곤했어. 로우가 소리내어 웃었다. 이제 회사의 대표이사가 된 키드는 가끔 로우에게 전화해 푸념을 늘어놓고는 했다. 키드의 불평불만의 반 이상은 공동사업주의 아들인 루피라는 녀석이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키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로우는 얼굴도 모르는 루피라는 녀석에게 관심이 갔다. 얘기만 들어도 꽤 매력적인 녀석이었다. 넌 이제 뭐할거냐. 키드의 목소리에 로우가 눈 앞의 푸른빛의 공간을 바라본다. 수영할건데. 너 전화 때문에 수영장에 발만 담구고 있다.




-그러냐. 잘 지내라.


"오냐"


-사고치지말고


"끊어"




키드가 웃더니 전화를 끊는다. 폰을 대충 선베드에다가 던져두고 차가운 물 안에 들어간다. 넓은 수영장에 오직 로우 하나뿐이다. 몇번 풀장 안을 오가다가 가장 구석으로 가 풀장의 턱에 팔을 걸치고 바다를 본다. 이 풀장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다. 기지개를 켜듯 팔을 쭉 뻗는다. 손등과 팔에 늘어난 문신이 보인다. 몇년동안 도피의 스케치북에 있다가 몇달전에 그려진 문신들이었다. 숨을 짧게 내쉬고 물 속으로 들어간다. 


병원을 막 그만뒀을 때 키드가 다짜고짜 집으로 찾아왔었다. 그 때 도피와 키드의 살벌했던 분위기는 지금 생각해도 오싹했다. 키드는 감이 좋았다. 그때도 감은 적중했다. 병원을 관둔 게 사고를 쳐서 그런 것이라고 예상하고 온 것이다. 그 때 도피는 처음으로 로우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로우가 화가 나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것까지. 자해에 그쳤던 행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바람핀 연인으로 인해 살인미수로까지 번졌던 이야기까지 들은 도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기회로 끝까지 갔군.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로우는 키드에게 제대로 맞았다. 주먹으로. 


숨이 막혀 물 속에서 머리를 빼낸다. 푸하. 물에 잔뜩 젖은 머리를 털었다. 세수하듯 얼굴의 물기를 털어내고 눈을 뜨자 수영장 끝에 도피가 서 있다. 아직 로우를 못 찾은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 피부를 스치는 물살을 느낀다. 도피가 있는 곳으로 가자 도피가 몸을 숙인다. 머리를 쓸어넘기고 도피를 올려다보았다.




"왔어?"




도피가 팔을 뻗어 귀를 만지작거린다. 짤랑이는 소리가 들린다. 귀뚫었네.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피의 손을 잡아끌어 손바닥에 뽀뽀하자 웃음소리가 들린다. 기분 나빠진건 아는군. 로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에게 부탁하려했는데 어떤년이랑 붙어먹는지 도통 오지 않아서 말이야. 기다리다 지쳐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어. 도피가 한숨 쉰다. 미안 예상보다 일이 길어졌어. 그 년 따먹는게 좀 힘들었나보지? 이제 도피가 로우의 손을 들어 올려 다섯손가락에 정성스럽게 입을 맞춘다. 기분이 나아진 로우가 미소짓는다. 정말 일이 생겨서 늦어진 것을 알지만 도피를 놀리는 것은 꽤 재미있었다. 오늘은 이쯤까지만 해야지. 팔에 힘을 주어 물 속에서 벗어난다. 허튼짓하면 사업이건 뭐건간에 그년 죽여버릴거야. 그렇게 말하고 로우는 선베드 위의 바디타월을 둘렀다. 도피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난 너의 노예인데 허튼짓을 할리가. 로우가 짧게 웃고 몸을 돌려 핸드폰을 집는다. 




"아, 로우"




도피의 부름에 핸드폰을 보던 시선을 든다. 선물사왔어. 도피가 줄곧 들고있던 작은 상자를 내민다. 상자의 뚜껑을 열자 가죽으로 된 목줄이 들어있다. 목줄을 꺼내어들었다. 부드럽게 감기는 재질이 고급이다. 로우가 목줄을 도피에게 내밀었다.




"밤에 채워줘"




로우는 도피의 입술에 스치듯 키스를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도피는 척추부터 타고흐르는 흥분에 미소지었다. 반할수밖에 없다니까.







*


"하악... 아... 읏..! 으, 응, 응, 큿..."




엎드린채로 침대에 고개를 박는데 목이 불편하다. 목줄이 채워져 고개를 숙일때마다 팽팽하게 당겨져온다. 뒤에서 느껴지는 쾌감에 정신이 없다가도 숨이 막혀 다시 정신을 차린다. 한참 움직이던 도피가 허리짓을 멈추고 몸을 숙여 로우의 날개뼈에 입술을 묻는다.




"나 없는 동안 뭐했어"




로우가 허리를 빼내어 침대에 눕는다. 도피와 눈이 마추친다. 사랑스럽다는 눈빛이 로우의 얼굴 곳곳을 훑는다. 눈빛이랑 허리짓이 따로노는군. 로우가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입을 연다. 별거 안했어. 베르고한테 이것저것 배우고, 키드랑 통화하고. 도피가 로우의 어깨를 꽉 깨문다. 아파! 로우가 도피를 노려보았다. 그녀석 이야기 하지마. 도피가 으르렁거린다. 로우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로우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도피는 붉게 자국이 남은 곳을 핥았다. 




"이번에 좀 시간을 투자한 덕분에 당분간 계속 여기 있을거야"


"잘 됐네. 그래서말인데 이렇게 얘기만 하다 잘거야?"




그 말에 도피가 웃더니 로우의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애타나보지? 로우가 목줄을 만지작거렸다. 이런것도 찼는데 당연한거 아닌가. 다리를 들어 도피의 허리를 얽맨다. 도피가 짧게 로우의 입술에 키스하고 다시 뜨거운 안으로 들어간다. 흣. 움찔거리는 로우가 귀여워 로우의 팔을 들어올려 안쪽의 여린살을 핥는다. 신음이 터진다. 도피가 목줄을 꽉 쥔다.




"착하지, 내 고양이. 울어봐"




허리를 끝까지 빼내고 한번에 쳐올린다. 로우는 울음소리 대신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 때마다 도피는 울음소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스팟을 건들이며 거칠게 움직였다. 로우의 손톱이 도피의 등에 박힌다. 얼른 로우, 울음소리 내보라니까. 그건 울음소리가 아니잖아. 고양이는 그렇게 울지않아. 야옹하고 울어봐. 




"앗... 아아... 아, 아, 흣, 흐, 흐응... 읏...! 도피... 아... 아아.... 도피...!"


"하아.. 간다"




차오르는 희열에 로우가 도피의 어깨를 문다. 허리짓이 빨라질수록 거친 짐승의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매웠다. 절정에 다다른 순간 둘은 동시에 쓰러졌다. 아까와는 다른 지친 숨소리가 들렸고 로우의 몸은 잘게 떨렸다. 도피가 몸을 일으켜 바로 눕는다. 어느정도 진정이 된 로우가 몸을 일으킨다. 다리사이에 흐르는 액체의 느낌에 인상을 썼다가 도피의 몸위에 올라탄다. 젊어서 기운이 남아도나보지? 도피가 손을 들어 로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로우가 가만히 손길을 느끼다가 몸을 숙여 도피의 귓바퀴를 문다. 아아 그러지마 다시 흥분되잖아. 로우는 아랑곳않고 혀를 빼내어 진득하게 핥는다. 도피가 목줄을 당겨 로우와 눈을 마주친다. 한번 더 하고싶어? 로우가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야옹"




도피가 로우의 몸을 뒤집어 올라탄다. 

섰어, 이 요망한 고양아. 







*


열어둔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읽고있던 책의 종이가 팔랑거렸다. 한참 책의 내용에 집중하고 있는데 검은 그림자가 책을 뒤덮는다. 고개를 드니 불만스러운 표정의 도피가 로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무심하게 말하며 책을 덮었다. 한참 재미있던 부분이었는데. 빨리 도피를 쫓아낼 생각이 로우의 머릿속에 가득 찬다. 




"내가 책 가려읽지 말라고 했을텐데"


"많이 읽어"


"그래 의학서적이랑 소설만 많이 읽겠지"




로우가 인상을 잔뜩 쓴다. 저번에 그 이상한 화가 때문에 이러는거지? 도피가 실소를 터트린다. 피카소를 모르는 니가 이상한거야. 예술이나 사회과학 분야도 챙겨보라고 고학력 멍청이. 읽어, 읽는다고! 로우가 자존심이 상한듯 소리치더니 도피에게 손을 뻗는다. 그럼 책 추천해서 줘. 도피가 그런 로우를 예상한듯 책 세권을 로우에게 건네어준다. 표지를 보던 로우가 도피를 바라보았다. 미학? 도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세권 다 보고 내가 물어보는거 빠짐없이 대답하면 한권당 소원 하나. 어때? 로우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소파에 거의 늘어지듯이 누워 책을 읽다가 머리가 아파 책을 덮는다. 예술계열은 전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런 책을 권유한 도피가 괘씸해 맞은편 소파에 있는 도피를 바라보았다. 같이 책을 읽기 시작하던 도피는 어느새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다. 




"어이가 없군"




책을 내려두고 소파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방 한켠의 의자에 걸려있던 얇은 담요를 가져와서 도피에게 덮어주었다. 가슴위에 엎어져있는 책도 치웠다. 곤히 자고있는 도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흠. 로우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도피는 몸 위에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에 눈을 떴다. 책을 읽다 잠에 들었나보군. 고개를 들어 무게의 정체를 보았다. 자신의 품에 꼭 안겨 자고있는 로우의 모습에 작게 웃었다. 귀여운짓도 다하네. 떨어져있는 얇은 담요를 주워 다시 덮고 로우를 껴안았다. 따뜻한 온기에 로우가 뺨을 부빈다. 도피는 로우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다시 눈을 감았다


저녁바람이 두사람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듯 훑고 지나간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창밖의 파도소리와 함께 바람사이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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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났습니다.

어제 하루 빼고 RnJ부터 별일 없이 산다까지 매일 꾸준히 올렸네요.


제가 수험생이기도 하고 이제 좀 쉬려고 합니다.

차기작은 당연히 낼테지만 RnJ나 별일 없이 산다 이 두작품 만큼의 연재속도는 나지 않을듯해요.


모자란 소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D




  1. 완결이라 따로 비밀글로 돌리지 않습니다만 사정이 생긴다면 돌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