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버스 주의






성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가지각색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성으로 왔다는 것. 오늘은 드레스로사의 왕비를 정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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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왕의 결혼적령기는 지난지 오래다. 왕은 결혼보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아내가 생기면 신경 쓰이는 것이 많아 그것이 불가능해지니까. 하지만 이제 그도 30대가 되었고 대신들도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는 의견이 끊이질 않아 결국 왕은 어거지로 왕비를 맞을 것이라 선언했다. 귀족집안이나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은 그와 결혼해봤자 행복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왕의 정신상태가 지극히 정상은 아니라는 것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권력이나 왕의 총애 등의 문제로 집안의 오메가들을 왕비후보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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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팔가 로우는 평민이었다. 더 자세히 말하면 하류층이었다. 근근히 먹고 살던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일찍이 지식만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특한 머리로 그는 어린 나이에 수준급의 의술을 배웠고 16살이 되는 해에 실력을 인정받아 어느 부자집의 주치의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2년정도 주치의를 하고있던 중 드레스로사의 왕비를 정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소식을 바로 들은 당일날 이 집의 유일한 오메가인 셋째딸은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밤낮없이 식사도 거르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러나 신분 상승이 필요했던 이 집의 가주는 그런 그녀를 왕비의 후보로 지목해버렸다. 결국 셋째딸은 탈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덕분에 로우는 탈진한 그녀를 돌보기위해 이렇게 주인어른과 함께 성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셋째딸은 입궐하는 날에는 눈물을 흘리지않았다.

드레스로사의 왕, 돈키호테 도플라밍고는 짜증이 치밀었다. 벌써 몇명째인지 모르겠다. 귀찮기도해서 일부러 인원수를 100명으로 제한해두었던 터였다. 그러나 100명도 많았다. 이제 겨우 반을 넘겼을까 여전히 마음에 드는 오메가들은 없었지만 스치듯이 마음에 드는 향이 느껴졌다. 흥미를 느껴 도피는 고개를 들었지만 그 곳에 서있는 오메가 다섯 중에서 그 향을 풍기는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여자 -무척 초췌해서 볼품없는 여자- 에게서 얼핏 그런 향이 나는 것도 같았다. 다시 흥미를 잃어버린 도피는 손을 까딱이며 축객령을 내렸다. 그렇게 100명을 다 보았지만 단 한명도 선택하지 않아 커다란 홀에 100명을 다 모을 수 밖에 없었다. 대신들은 여기서 선택하지 못한다면 제비뽑기로 뽑겠다며 협박을 했다. 오만상을 다 쓰며 홀을 훑어보던 도피의 코에 아까의 그 향이 느껴진다. 더욱 더 강렬하게. 그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도피는 만족했다. 인상이 더러운게 무척 마음에 드는 놈이었다.

"저 녀석으로 하지"

도피의 말과 함께 한 사람을 향해 뻗어져 있는 손가락 끝으로 시선이 모였다. 로우 또한 왕의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저는 일단 시종의 입장이기에 홀의 구석인 기둥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근데 이 곳을 향해 손가락이 향해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집안의 하인들 뿐이다. 저 미친 왕이 가문의 하인 중 하나를 선택했나보다. 그래도 결국은 한 가문의 일원이니 그 가문은 좋게 되겠다. 로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얼른 집에 돌아가 셋째딸 때문에 읽지 못했던 책이 읽고싶었다. 마지막 읽은 부분까지 찬찬히 내용을 되새기고 있던 로우의 앞에 그림자가 졌다. 

"너 오메가인가?"

또 다시 울리는 왕의 음성. 로우는 설마 자기일까 싶어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손으로 인해서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앞에 거구의 왕이 보였다. 그는 다시 물었다. 오메가냐고 물었다. 왕의 뒤쪽에 서있는 주인어른의 표정은 절망적이었다. 기회가 왔음에도 로우가 오메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로우는 잠시간 고민한 후에 입을 열었다.

"예"
"좋아. 맘에 드는군"

왕은 독특한 웃음소리를 내며 등을 돌렸다. 왕이 뒤를 돌자마자 시종들이 로우를 데려간다. 홀 밖으로 거의 끌려나가다싶이 하면서 로우는 왕의 목소리를 들었다. 혼인식은 내일, 많은 참석 바라네. 




*

로우는 커다란 방에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침대에 걸터 앉아 있었다. 저가 왕비가 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꿈꾸지도 않던 신분상승이었다. 부모가 있었다면 당장에 기쁨-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을 나눴을테지만 딱 16살이 되던 해에 부모는 생을 마감했다. 그들은 병을 얻어 그의 곁을 훌쩍 떠나버렸다. 괜한 생각에 우울해져 주인집에서 보내준 짐들 중에서 그렇게 읽고 싶어하던 책을 꺼내들었다. 바다와 해적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항상 무언가에 쫓겨 멀리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던 바다. 16살 부모를 여의고 주인집에 들어가 살게 되면서 그의 단 하나의 꿈이었다. 바다로 나가리라. 하지만 왕비가 된 지금 그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원피스, 해적왕.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커다란 침대에 몸을 기댔다. 왕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도 왕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계자는 필요하겠지. 로우는 그 끔찍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애정없는 사람과 몸을 섞고, 그 사람의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꽤 절망적이었다. 아이를 가져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히트사이클 시기에 관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

거창할 것 같았던 혼인식은 별 것 없었다. 왕이 귀찮다는 이유로 약소하게 끝내버렸다. 로우도 그 편이 훨씬 좋았다. 문제는 초야였다. 저는 이제서야 히트사이클 기간이 잡히는 나이였다. 무엇보다 아직 첫 히틀사이클이 오지않았다. 로우는 어제의 그 커다란 방의 침대에 기대어 책을 보고있었다. 책을 보고있음에도 긴장이 가시지 않아 손이 떨렸다. 로우는 18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다. 로우는 눈을 꾹 감으며 왕이 이 방에 오지 않기를 빌고 빌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를 와장창 무너뜨리고 왕은 얼굴을 비추었다. 

도피는 일단 그 꼬마의 방에서 잠이라도 자야 대신들의 비난을 피할듯싶어 그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었을 때 꼬마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홀에서 볼 때는 무심한 표정이었는데 또 다른 표정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여유롭게 꼬마가 앉아있는 침대에 누웠다. 꼬마의 몸이 더욱 더 긴장한다. 도피는 나른하게 목뒤에 깍지를 꼈다. 그러고보니 도피는 그가 오메가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꼬마 이름이 뭐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로우는 도피의 질문을 들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머리만 잔뜩 굴리고 있던 중에 머리채가 우악스럽게 잡혔다. 도피가 다시 말한다. 두번말하게 하지마라. 이름이 뭐냐 꼬마. 그제서야 로우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트라팔가 로우"
"그 집에서는 하인이었나?"
"주치의였어"

왕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하는 모습을 보며 지능이 낮은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닌듯하다. 도피는 흥미롭게 웃었다.

"나이는?"
"18살"

더욱 더 흥미로웠다. 어린 얼굴이었지만 의사라는 말에 적어도 스물은 되겠다싶었더니 이제서야 3차 성징 -알파, 베타, 오메가의 특징이 나타나는 시기- 이 일어날 나이이다. 도피는 몸을 로우의 쪽으로 돌렸다. 한쪽팔로 턱을 괴고 꼬마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까보다 긴장은 풀린듯했다. 분위기를 읽어 대처할 줄 알고 꽤 영특하군. 도피의 시선은 로우의 다리께로 향했다. 해적의 항해를 소설로 담은 책이었다. 만점. 도피는 쓰고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나이트테이블에 두었다. 그는 로우의 검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꼬마 잡아먹을 생각은 없으니 걱정마라"
"하지만 후계자가 필요할텐데"
"그건 네 히트사이클이 오고 난 후에 얘기하지"

도피의 말에 로우는 긴장했던 몸을 풀었다. 푹신한 베개에 몸을 기대자 도피가 웃는다. 해적 좋아하나? 로우는 다시 책을 펼치며 답했다. 해적보다는 바다. 도피는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책을 읽는 로우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라면 자신의 항해에 데려가도 되겠다는 생각에 싱글벙글 웃었다. 결혼상대자로써의 매력은 몰라도 파트너로써의 매력은 상당했다. 그저께 맡았던 그 기분 좋은 향이 난다. 꼬마 먼저 잔다. 도피는 눈을 감았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