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엌을 어슬렁거리다가 밥 하기 귀찮아 칼로리 바를 두개 꺼낸다. 커피까지 준비해서 다시 거실로 와 앉는다.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이제 거의 다 했네. 로우는 칼로리 바 하나를 뜯어 물었다. 다시 영어가 가득한 책을 집어 읽는다. 의사를 관두고 지인의 권유로 의학 전문서적을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도피에게 집에만 있어서 살이 찌는 것 같다라는 핀잔을 받았던 것이 기억났다. 오히려 그 때보다 밥을 더 챙겨먹지 않고 있는데. 칼로리 바 끄트머리를 입 안에 넣고 손을 털었다.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노트북 키패드에 손을 올린다. 딩동. 로우가 인상을 쓴다. 이제 막 일하려는데. 무릎위에 뒀던 노트북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인터폰 확인하기도 귀찮아 바로 문을 연다.




"로우!!"




다짜고짜 자신을 부르는 펭귄 덕분에 로우가 뒤로 물러선다. 펭귄은 현관까지 들어와서는 로우의 어깨를 틀어쥔다. 로우, 정말 병원 그만두는거에요? 무슨 일 있던거에요? 집안어른들이 병원 관두는 거 말리지 않았어요? 평생 준비해서 이룬 꿈이잖아요. 돌아와요, 제가 잘 이야기 해볼께요. 로우가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내는 입을 막는다. 시끄러워, 들어와서 얘기해. 펭귄의 손을 털어내고 로우는 거실로 향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펭귄이 주섬주섬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로우는 바닥에 뒀던 커피잔을 다시 집어 들었다. 뭐라도 마실래? 펭귄이 고개를 끄덕이며 로우를 따라간다.


응접실에 로우와 펭귄은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로우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펭귄의 앞에는 홍차가 놓여있었다. 펭귄이 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더니 입을 연다.




"이해가 안가요. 의사집안의 대를 이을 외아들이 병원을 관뒀는데 왜 집안어른들은 가만히 있는걸까요"


"버린 카드라는거지. 그 인간들은 분가에서 새로운 후계자를 찾고있을껄"




왜요. 로우가 뭐가 모자라서요. 로우가 씁쓸하게 웃는다. 그런게 있어. 너가 분가에서 온지 얼마 안되서 그래. 혹시 가주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건가요? 로우는 식어가는 커피를 다시 한모금 마셨다. 거기까지만 해. 펭귄이 입술을 꾹 문다. 왜 로우는 항상 숨기고 있습니까. 목 끝까지 올라오는 말을 홍차와 함께 목구멍 안으로 흘려보낸다. 울상인 펭귄을 보더니 로우가 나름대로 편안하게 웃는다. 괜찮아, 지금도 좋아. 반려분께서는 잘 대해주십니까? 글쎄. 로우는 병원에서 나오던 그 날 도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착각하지마라. 이렇게 어디 한쪽이 병신이었으면 결혼 거절했어. 이미 했으니까 책임지는 것 뿐이다. 로우가 씁쓸하게 웃었다. 병신인 곳이 한군데만 있는게 아닌데 말이지. 갑자기 커피잔을 쥐고 있던 손에 타인의 온기가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고 손을 보자 펭귄이 자신의 손을 감싸고 있었다. 괜찮아요? 무의식중에 손에 힘을 줬나보다.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우, 저는..."


"이거 다른 남자가 있었을 줄이야"




두 사람의 시선이 응접실 입구에 삐딱하게 기대어있는 도피에게 향한다. 딱 봐도 무언가 오해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로우가 한숨을 쉬고 펭귄을 바라보았다. 병원 다시 가봐야하는 거 아니야? 펭귄이 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만 가볼께요, 연락주세요. 배웅 나가줄께. 로우가 도피를 지나쳐 응접실을 나간다. 현관까지 나와 펭귄을 배웅해주고 몸을 돌리는데 억센 힘이 로우의 멱살을 쥔다. 순식간에 벽에 밀쳐진다. 갑작스러운 도피의 행동에 화가 나 눈을 치켜뜨고 쏘아붙였다. 왜이래.




"아직 후계자도 안 만들었는데 딴남자를 들이는 건 뭐하는 짓이지? 너한테 별 감정 없는데 말이야 이건 좀 화난다고. 일단은 내 암컷이잖아. 내꺼라는 표시도 못했는데 빼앗길 수는 없지. 다른놈 만나고 싶으면 일단 내 암컷이 되고 난 다음에 해"




도피가 로우의 멱살을 잡은채로 질질 끌고간다. 도피의 손을 풀어보려해도 압도적으로 강한 힘에 실패할 뿐이었다. 그런 사이 아니라고! 그냥 아는 사이야! 로우가 외쳐보지만 아마 화가 난 도피의 귀에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침대에 내동댕이 쳐진다. 도피가 로우의 위에 올라타더니 윗옷을 우악스럽게 벗겨버린다. 걔는 내 아랫사람이라고! 도피는 아랑곳하지 않고 로우의 목덜미에 이를 세워 박아 넣었다. 고통에 찬 신음이 들리더니 이내 도피의 왼쪽 턱이 가격당한다. 도피가 충격에 어느정도 떨어지자 로우가 도피의 뺨을 때린다.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나며 도피의 고개가 돌아간다.




"우리 가문애야! 내 시종들던 녀석이라고!!"




발로 도피를 차버리고 로우가 방을 나간다. 도피는 멍하게 로우의 목덜미에서 떨어진 핏방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이마를 짚고 허탈하게 웃었다. 순식간에 이성을 잠식하는 치졸한 감정, 사귀는 이성이나 부부 사이에서 상대장이 다른 이성과 좋아함을 지나치게 미워하는 마음, 질투.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우스웠다. 도피는 터진 입가를 만지작거리며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


"그 상처는 어디서 달고온건가"


"몰라"




신경질적인 대답에 베르고가 한숨을 쉬었다. 보고는 나중에 올리도록 하지. 도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고가 나가자 의자에 길게 몸을 뻗었다. 딱히 로우에게 소유욕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략결혼이었고 후계자만 만들어주면 될 일이었다. 아니 고양이목이 아닌 자신과 결혼시켰으니 후계자가 필요없을지도 몰랐다. 그저 그 쪽은 이 기업의 재산을, 이 쪽은 그 가문의 인맥을 이용하면 되는거였다. 누구와 붙어먹든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자신은 질투를 느꼈는가. 혼현을 본적도 느낀적도 없다. 자신의 짝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기회 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한번도 나의 암컷이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겨우 결혼식이라는 행위로 암컷을 정하는 물러빠진 놈이었나. 도피가 한숨을 쉬었다.




"도플라밍고. 바로크워크스에서 연락 달라는군"




문 밖에서 들리는 베르고의 목소리에 도피가 상념에서 벗어난다.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어 전화를 건다. 첫번째 신호음이 끝나기도 전에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냐. 핸드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 번호로 연락한거 보니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걸 눈치챘나보군. 도피가 혀를 찼다. 사족 좀 달지마. 




-알아본 바로는 트라팔가가 그런 대우를 받는 건 혼현과 관련이 있어.


"혼현?"


-자세한건 몰라. 


"아예 고양이목이 아닌건가?"


-알아보고있어. 궁금하면 너도 좀 도우라고. 정보가 부족해. 나름 부부인데 뭐 좀 캐내봐란 말이야.




알았어, 끊어.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책상에 던졌다. 나름 부부. 도피는 이 때까지 로우와 자신의 관계를 돌이켜보았다. 신혼여행도 가지않고 각방을 쓰며 가벼운 스킨쉽 조차 하지 않는다. 매일 하루에 한번씩은 말다툼을 한다, 저번에는 괜한 심술로 병신이라는 교양없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 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까지 휘둘렀다. 한숨을 쉬었다. 정상적인 부부와는 한참 먼 사이였다. 언제부터 어긋났지? 첫만남때부터 투닥거리긴 했지만 그 이후에 집을 보러 갔다가 술까지 마시면서 많이 친해지긴 했었다. 투닥거리긴했어도 같은 방에 앉아 얘기를 할만큼의 사이이긴했다. 틀어진 건 자신의 말실수 때문인가. 그 때는 자신의 손을 쳐낸게 좀 화가 나서 그랬었다. 따지고보면 선을 그은 건 트라팔가 로우, 녀석이 먼저였다. 애초에 결혼할 사람한테 문제가 있건 말건 혼현 그거 좀 보여주면 될 것 아닌가. 혼현에 문제있다고 딱히 뭐라할 생각은 없다. 도피는 이마를 짚었다. 어느 한쪽이 병신이었으면 결혼하지 않았다고 말한건 자기 자신이었다. 자업자득이군. 지금와서 그 말을 바꾼다면 뒷조사를 했던 사실을 다 밝혀야 할 것이다. 결국 상대방이 마음을 열게 해야한다는건가. 도피는 핸드폰을 다시 집었다.




-왜


"어제 미안했어"




한숨소리가 들린다. 도피는 뒷머리를 긁었다. 너무 건성인 사과인가. 다시 사과하려는데 목소리가 들린다. 됐어, 무슨 일로 전화한건데. 나 곧 휴가인데 놀러가자, 신혼여행도 못 갔잖아. 정적이 흐른다. 역시 어제 일로 더욱 더 마음을 닫아버린걸까. 도피가 핸드폰을 고쳐쥐었다. 어디? 로우의 말에 도피는 책상위의 캘린더를 넘겼다. 휴가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해외출장 일정이 없나 뒤적이는데 호주 출장이라고 달력 한켠에 적혀있다. 




"호주 어때. 동생도 봐야지, 마침 호주에 가야할 일도 있네"


-마음대로 해


"지금 어디야?"


-출판사. 나 회의간다.




응. 종료버튼을 눌렀다. 호주. 이 여행이 로우와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소유욕에 관한 것과 혼현에 관한 것 모두. 핸드폰을 자켓 안주머니에 넣으려는데 문자가 온다. 도피가 내용을 보더니 짧게 숨을 뱉었다.







*


로우는 전화를 끊고 다시 사장실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자 맞은편에서 로우가 번역한 것을 보고있던 샹크스가 고개를 든다. 정말 깔끔하네, 그 좋은 머리로 이 정도 일만 하고있는건 아깝단 말이야. 로우가 눈살을 찌푸린다. 귀찮은거 질색이니까 시키지마요. 샹크스가 호쾌하게 웃더니 소파에 몸을 기댄다. 




"방금 통화는 누구야"


"도플라밍고"


"호오. 그 목에 격렬하게 남겨주신 네 반려?"




로우는 손을 들어 목덜미에 붙인 거즈를 만지작거렸다. 이가 꽤 깊이 박힌데다가 목부근이라 피가 잘 멈추지 않는다. 꿰매기도 애매한 상처라 피가 나는대로 거즈를 붙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래서 나오기 싫었는데. 로우가 이를 갈았다. 사과는 받았어요. 




"홍학 주제에 이가 있다니. 다른 피가 섞였나"




홍학? 로우의 반응에 샹크스가 놀란다. 그녀석 홍학이라고, 몰랐어?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하도 숨기니까 그녀석도 숨기고 있나보네. 너네는 정말 천생연분이야. 제발,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왜 굳이 출판사로 부른거에요? 그제서야 샹크스가 목적을 기억해낸듯 몸을 일으켰다. 우리 출판사랑 협력관계인 흰수염재단 알지? 거기 이사장 에드워드씨의 손자 녀석 가정교사 좀 부탁할까했지. 마르코라고 엄청 영특해. 




"가정교사?"


"영특하다고 말했지만 한량같은게 머리가 엄청 좋아서 가정교사들을 다 쫓아냈거든"


"시험하는거군"




샹크스가 웃었다. 어때 관심있어? 한번 해볼게요. 로우도 마주 웃었다.







*


로우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의사를 그만두면서 인연이 없을거라 생각했던 병원이었는데 도피 때문에 이렇게 병원확장 축하파티에 끌려왔다. 로우는 자신도 데려오라는 내용이 담긴 문자를 들이대던 도피를 떠올렀다. 그렇게 도살장 끌려오듯 왔더니 도피는 가문에서 정계에 진출한 사람들과 인사를 하기 바빴다. 철저한 이익관계. 로우는 한숨을 쉬었다.




"로우"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펭귄이었다. 


도피는 겉으로는 웃고있었지만 관심은 온통 로우쪽으로 가있었다. 저번에 집까지 찾아온 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신의 시종을 들던 남자라고 했지만 남자가 로우를 보는 눈은 수상했다. 돈키호테, 어디 불편한가? 도피가 시원스럽게 웃었다. 그럴리가요. 도피는 들고있는 샴페인을 한모금 마셨다. 저 귀염성이라고는 없는 녀석에게 왜 이렇게 신경쓰이는지 모르겠다. 어디서 나오는 소유욕인가. 튀어나오는 한숨을 감추기위해 다시 입에 잔을 가져다댄다. 




"아! 소개하지. 돈키호테, 이쪽은 우리 가문쪽 아이인데 소아과 의사라네. 몇년전에 본가로 들어갔지"




안녕하세요, 펭귄입니다. 도피는 내밀어진 손을 맞잡아 악수했다. 살짝 시선을 돌려 홀을 훑었지만 로우는 보이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입니다. 예의상의 미소를 짓자 상대방도 미소를 짓는다. 저번에 댁에서 뵈었죠. 네, 그 때 오해해서 죄송했습니다. 펭귄이 손사래짓을 한다. 아닙니다. 펭귄을 소개해주었던 어른은 어느새 다른곳으로 가버렸다. 도피는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로우랑 많이 친하신 것 같던데"


"그럴리가요. 전 분가사람이라 친해질 수 없어요, 로우가 벽을 치고 있기도하고요"


"아아, 그러면 로우의 혼현은 모르시겠네요"


"네? 당연히 알죠. 로우는 고양이에요"




고양이요? 네, 로우가 돈키호테씨에게도 혼현을 드러내지 않던가요? 어르신들 말로는 경종이라서 드러내기 싫어한다고 했는데, 반려분께도 그럴줄 몰랐네요. 고양이라. 도피는 턱을 쓸었다. 그럼 로우 어렸을 때는 아십니까? 전 본가에 들어온지 몇년 안되서요 잘 모릅니다. 도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반가웠습니다. 다시한번 펭귄과 악수를 하고 도피는 걸음을 옮겼다. 연회장 안에 로우가 보이지 않았다. 또 두통으로 구석에 웅크려있나. 도피는 연회장을 빠져나와 로우를 찾기 위해 건물을 돌아다녔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불이 거의 켜지지 않은 윗층까지 왔을 때 구석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그 쪽으로 다가가자 로우와 그의 할머니 외에 집안어른 몇몇이 있었다. 도피는 기둥에 몸을 숨겼다.




"로우, 흰수염재단의 손자를 가르치게 됐다는게 사실이냐"


"...예"


"함부로 나서지마라. 네가 이 가문에 발 붙일 수 있는 이유가 돈키호테 때문임을 모르는 게 아닐텐데"


"안 들킬 자신 있습니다 할머님"


"허튼짓말고 후계자나 만들어. 결혼한지 꽤 됐는데 아직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니! 더이상 내가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겪게 만들지마라"




발소리가 들리고 집안어른들이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이 완벽하게 사라지자 털썩하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리니 로우가 주저앉아 있었다. 도피가 로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로우가 고개를 들더니 눈이 커진다.




"어디부터 들었어?"


"흰수염재단 손자부터"




로우가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도피의 손을 잡았다. 로우를 일으켜주면서 도피는 로우가 대체 무엇에 안심을 한것인지 생각했다. 내가 들으면 안되는 것이 있다, 로우가 들키면 안되는 것이 있다. 로우가 도피의 손을 놓으려하자 도피가 그 손을 더 꽉 쥔다. 




"내가 들으면 안되는게 있어? 뭘 숨기는거야?"


"..."


"뭘 숨기는거냐고!!!!"




로우는 입을 꾹 다문채로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도피도 말 없이 로우를 바라보았다. 대답해봐, 숨기고 있는게 뭐야. 턱을 쥐어 고개를 들게하자 고통스러움이 담긴 시선과 마주친다. 그런 거 없어. 도피가 한숨을 쉬었다. 아닌척하지만 로우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도피는 로우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피곤하다, 집에 가자.







*


거실 한켠에서 통화를 하고 있던 도피가 티비를 보고있던 로우를 흘긋 본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도피가 로우의 옆에 앉는다. 왜, 누군데. 너네 할머님. 로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본가에 오라는데, 너랑 나. 로우가 들고있던 리모컨을 떨어트린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부르는 이유는 분명 저번에 파티에서 했던 말과 관련이 있을것이다. 로우는 눈을 감고 지난 파티 때 할머님의 말을 떠올렸다. 손자, 가문, 후계자, 냄새.




"냄새!"




도피가 로우를 바라보았다. 할머님이 부르는 이유, 냄새 때문이야. 도피도 그 때 할머님이 로우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큰일이네, 지금 해야하나? 침대에 갈래? 도피의 장난기 어린 질문에 로우가 멀찍이 도망간다. 도피가 큰소리가 웃자 로우가 잔뜩 인상을 쓴다. 장난치지마 지금 심각해!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참을 수 있겠어?"




뭐가. 로우의 말에 도피가 손을 까딱인다. 이리와. 로우가 조심스럽게 도피에게 다가간다. 이제 도피는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쳤다. 앉아. 찝찝하지만 마지못해 도피의 옆에 앉는다. 무슨 방법인데.




"블라인드"




블라인드라는 말을 듣자마자 로우가 몸을 일으켜 도망가려했지만 도피에게 뒷덜미가 잡힌다. 싫어! 내가 왜 그 비린걸 얼굴에 발라야하는데! 도피가 한숨을 쉬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침대에 갈까? 그 말에 로우가 다시 자리에 앉는다. 한숨을 쉬는 모양새가 블라인드를 선택할듯했다. 상냥하게 해줄께. 로우가 입술을 깨문다.




"하려면 빨리 해"




도피가 웃는다. 로우가 눈을 꼭 감는다. 바지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로우가 소파를 꽉 쥐자 도피의 손이 로우의 손을 끌고와 깍지를 낀다. 기분 나쁘면 상처내도 상관없어. 그리고 이내 살을 문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손에 힘을 꽉 주자 도피가 부드럽게 엄지로 손등을 쓸어준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도피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짐승의 소리와 비슷한 느낌에 소름이 돋는다. 숨소리가 더 거칠어질수록 형용할 수 없는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좋은 냄새. 달큰한 향에 취해 무의식적으로 로우가 눈을 뜬다. 흥분이 가득찬 도피의 얼굴이 보였다. 도피는 건조한듯 혀를 빼내어 아랫입술을 핥았다. 로우의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 순간 끈적한 액체가 로우의 얼굴에 닿는다.




"하아.. 고개 들어봐 발라줄께"




도피가 대충 정리하고 바지를 입는다. 고개를 숙인 로우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너 얼굴 엄청 붉어. 도피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액체를 골고루 펴바른다. 평소였으면 뭐라고 대꾸라도 했을 녀석이 아무런 말이 없다. 어느정도 바른 후에 몸을 숙여 눈을 맞춘다. 많이 불쾌한가? 도피가 손을 들어 로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데 로우가 도피의 손을 쳐내버린다. 만지지마! 그러더니 몸을 일으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또 예민해졌군. 도피 또한 나갈 준비를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


연재속도 느려질거라고 말해놓고 또 하루에 한편씩 쓰고있네요.

쓰는 제가 재미있으니까 그냥 짬짬히 시간내서 쓰게되네요.


제가 노트북이던 핸드폰이던 아침일찍이나 밤에만 사용 가능한지라 일부러 대댓같은 건 가능한 달고 있지않습니다. 소설 외의 사적인 글도 올리지 않고 있구요. 

오늘 이렇게 사족을 다는 김에 이 때까지 댓글 써주셨던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혹시 궁금한게 있으시다면 질문해주세요. 답변 할 수 있는거라면 답변하겠습니다. 


소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