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우는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새파랗고 구름은 아래에 있었다. 도피는 잠이라도 잘까하다가 로우를 관찰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고도에 오른지 꽤 됐는데도 창 밖에서 눈을 뗄 줄 모르는 모습이 흡사 다섯살짜리 꼬마 같아보였다. 하긴 집 안에서만 지냈으니 신기하고 새롭겠지. 27살에 첫 비행기라. 도피가 씁쓸하게 웃었다. 로우는 한참 여기저기를 구경하는 것 같더니 결국 잠에 들었다. 도피는 노트북으로 서류를 확인하다가 옆에서 자고 있는 로우를 바라보았다. 요새 로우는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깜짝 놀라며 깨어나는 소리를 몇번 들었던 적이 있었다. 도피가 손을 들어 로우의 눈가를 쓸었다가 손을 떼었다. 저번에 로우가 회사에 찾아왔을 때 느꼈던 그 미묘한 느낌이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도피는 한숨을 쉬고 다시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일어나. 어깨를 치는 느낌에 무겁게 눈을 뜬다. 로우가 노트북을 가리켰다. 착륙한다고 끄래. 도피가 고개를 끄덕이고 노트북을 껐다. 다 왔대? 응. 들떠있는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도피가 작게 웃고는 기지개를 켰다. 호텔, 너네 동생한테 부탁했는데. 로우가 시선을 도피에게 옮긴다. 왜? 도피는 민망한듯 턱을 긁었다. 네 취향에 맞춰서 예약해달라고 했어. 아, 그래. 또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로우는 얼굴이 화끈거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도피도 더운 느낌에 셔츠의 단추를 하나 풀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로우는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방을 하나만 예약해둔걸까, 침대가 하나뿐이면 어쩌지. 키드가 알아서 방 두개로 잡아주었을까. 캐리어를 잡은 손에 땀이 났다. 카운터에서 직원과 대화하던 도피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몇번 대화를 더 나누더니 카드키 하나를 가지고 로우에게 다가온다.




"룸을 하나만 예약해뒀더군. 다른 룸을 잡으려해도 다 찼대. 괜찮겠나?"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를 잡아뒀어도 침대가 두개 있는 룸이 아닐까하는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방에 도착하는 순간 그 생각은 무참히 짓밟혔다. 커다란 침대 하나. 그게 이 큰 방에 있는 침대의 다였다. 절대 못잔다, 절대로 못자. 로우는 아직도 이상한 꿈을 꾸고 있었다. 도피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빨간머리 녀석, 눈치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예전같으면 그냥 같이 자도 상관없지 않겠냐 했겠지만 요즘은 달랐다. 그 이상한 분위기 때문에 몸이 달아오른 적이 한두번이 아니

었다. 도피는 마른세수를 하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일단 회사에 가야겠다.




"나 지사 다녀와야하니까 호텔 구경하던지 있어. 어디 갈 때 연락하고"




도피의 말에 로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도피는 로우의 손에 쥐어진 로밍한 폰을 확인하고 방을 빠져나간다. 도피가 나가자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로우가 침대에 눕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구나 인테리어가 꽤 맘에 든다. 키드치고는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골랐겠지. 테라스로 나가자 바다가 펼쳐진다. 집에서 보는 바다와는 또 다른 풍경에 입이 벌어진다. 밤이 되면 야경이 퍽 아름다울 것 같다. 로우는 먼 바다를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


"병원 그만 뒀다고?"


"어. 용돈은 넣어줄테니까 걱정말고"




키드가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용돈이 문제야! 로우는 칵테일을 한번 마시고 키드를 바라보았다. 그럼 뭐가 문젠데. 너도 펭귄처럼 평생을 준비했다 뭐 이렇게 말할거냐? 키드가 입을 꾹 다문다. 확실히 저의 형이 의사가 되고싶어 했던 것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저 집안어른들의 비위를 맞추기위해 공부했다는 것도.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지금 뭐하는데. 의학서적 번역하고, 얼마전까지는 어떤 꼬마 가정교사 했어. 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괜찮네. 로우가 크게 웃었다.




"건방지게 형한테 잔소리냐?"


"시끄럽고 그거나 다 마셔. 다른 거 시킬거야"




로우가 잔을 들어 남아있던 술을 한번에 다 털어마신다. 그거 그래보여도 도수 높아. 로우가 손을 휘저었다. 빨리 다른 거 주문해. 키드가 투덜대더니 종업원을 부른다. 익숙하게 몇가지를 더 주문하고 턱을 괴어 로우를 본다. 근데 살 찐거같다. 로우가 손을 들어 볼을 만지작거린다. 그런 얘기 자주 들어. 별로 챙겨먹지도 않는데. 좀 챙겨먹어. 귀찮아. 주문한 칵테일들이 테이블에 놓여진다. 화려한 색깔들에 로우가 눈살을 찌푸린다. 색깔이 괴상해. 키드가 웃더니 하나하나 짚어주며 맛을 설명해준다. 이건 파인애플, 이건 복숭아, 이건 민트, 이건 메론, 이건 커피. 로우가 복숭아맛이 난다고 하는 핑크빛의 잔을 들었다. 한모금 마시자 복숭아향과 함께 알콜 특유의 맛이 난다. 괜찮네. 키드가 웃었다.




"그러고보니 매형이랑은 잘 지내?"


"왜 매형이야?"


"그야 형에게서 그 남자 냄새가 나니까"




콜록. 키드가 사레가 들린 로우의 등을 두드린다. 뭘 이런거 가지고 사레가 들려, 둘이 자긴 잤어? 로우의 기침소리가 더 커진다. 안 잤구나. 어느정도 진정이 된 로우가 키드를 째려본다. 넌 사생활이라는 것도 없냐. 키드가 어깨를 으쓱한다. 아무튼 잘지내냐고. 로우는 술을 두세모금 더 마셨다.




"글쎄. 표면적으로는 잘 지내는데"


"속은 모르겠다? 왜? 나한테 부탁한거 보면 꽤 챙기던데"




로우가 입술은 깨문다. 그야 아직 나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두통 하나만으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한 사람인데. 키드가 말이 없는 로우를 바라본다. 집안어른들 외에 로우의 비밀을 알고있었던 유일한 사람. 키드는 머리를 긁었다. 하긴, 아직 안 말했으면 그럴수도 있겠다.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번에 어떤사람이 내 비밀에 대해서 알았어"




키드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어떻게? 어쩌다가? 어디서 들은거야?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키드를 밀어내고 로우가 입을 연다. 정보를 사고 파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인데, 어쩌다가 만났어. 근데 뭘 어떻게한건지 갑자기 다 알아냈다고 그러더니 두통이 실마리라는 말만 해주고 입을 다물었어. 키드가 두통이라는 말을 곱씹는다. 해결이 가능한걸까? 글쎄.







*


도피는 묘하게 행동이 느린 로우를 바라보았다. 으, 속 안 좋아. 도피가 자리에서 일어나 로우에게 다가간다. 술 마셨어? 가까이 다가가도 술냄새가 독하게 나지 않는다. 칵테일 마셨어. 그래서 냄새가 안 나는거였군. 도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내일 뭐할래. 노트북 화면을 보며 묻는데 대답이 없다. 고개를 들어 로우를 찾으니 어느새 테라스에 나가 야경을 보고있다. 난간 사이에 다리를 끼우고 앉아있는 모습이 한없이 어려보인다. 




"전부터 그랬지만 밖을 자주 보네"


"버릇이야"




도피가 로우 옆의 난간에 기대어 앉는다. 왜 그런 버릇이 생긴지 알 것도 같지만 그래도 물어본다. 어쩌다가 생긴 버릇인데. 로우의 시선이 도피에게 향한다. 불편한 질문을 했을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다. 상대방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도피가 눈을 맞춘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생명력 있는 눈이다. 눈동자 은색이었구나. 항상 잿빛이라고 생각했었다. 궁금해? 로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마른침을 삼킨다. 최대한 태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우가 다시 고개를 돌려 바깥을 바라본다.




"어렸을 때 한번도 바깥에 나가본 적이 없었거든. 제일 오래된 기억 속에도 나는 담장이 높은 별관에 갇혀지내고 있었어. 비행기 타본 것도 처음이야. 나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비정상적으로 살아왔어. 당신 말마따마 병신인 곳이 한군데만은 아니야"


"그 때 그말은..."


"영화관도, 미술관도, 박물관도, 동물원도 그 어느 곳도 가본 적이 없어. 대학생 때 겨우 백화점 같은 곳에 가봤으니까. 그 마저도 꼭 집안시종을 데려가야 했었고. 의사가 되서야 혼자 돌아다닐 수 있었어"




어찌보면 결혼 잘 한 것 같기도 해. 무조건 가문에 복종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게 아니잖아. 로우가 웃는다. 도피가 씁쓸하게 웃었다. 술을 마시니까 솔직해지는군. 도피가 손을 들었다. 머리 쓰다듬어도 돼? 로우가 고개를 젓는다. 뺨, 쓰다듬어 줘. 로우의 뺨을 감싸자 뜨거운 숨이 느껴진다. 부드럽게 어루만지자 로우가 기분 좋은 숨소리를 뱉는다.




"여기있는동안 못 가본 곳 다 갈 수 있게 해줄께. 가고싶은 곳 목록 적어놔"




소리없이 로우가 웃더니 난간에 머리를 기댄다. 응. 약간 젖어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


아픈 머리를 부여잡았다. 별 맛 없다고 휙휙 마신게 화근이었다. 숙취는 그리 심하지 않았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차가운 무언가를 머리에 올리고 싶었다. 몸을 일으켜 얼음이라도 찾으려는데 머리 위에 묵직한게 느껴진다. 차가운 느낌에 두통이 가신다.




"시원하다"


"그래, 술의 힘을 빌어 잠은 잘 잤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로우가 위를 올려다본다. 피곤해보이는 도피의 얼굴이 보인다. 뭐야, 밤샜어? 소파에서 잤어. 로우가 침대 옆자리를 보더니 눈을 감는다. 소파는 편하던? 도피는 침착하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본인을 위해 힘들게 소파에서 잤더니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저런 반응이다. 너 때문이잖아. 로우가 실소를 터트린다. 날 침대에서 재운건 당신 선택이었잖아. 도피가 이를 갈았다. 저게 진짜 오냐오냐 해주니까. 로우는 간만에 편하게 잔 것에 기분이 좋았다. 도피가 자신을 배려해 침대에 재운 것도 기분이 좋았고. 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생색내는 모습이 아니꼬와 시비조로 말을 뱉었다. 어느정도 두통이 가라앉자 로우가 몸을 일으켰다. 얼음주머니, 고마워. 로우가 여유롭게 욕실로 걸어간다. 도피는 그 뒷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듯 짧은 숨을 뱉었다.





로우가 제일 처음 가고싶어했던 곳은 동물원이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보다가 로우가 한 곳에 멈추어섰다. 호랑이. 어딜가도 상처투성이군. 도피가 가만히 서있는 로우의 옆으로 다가갔다. 저기에 열대지방에 사는 동물들 있는데 보러갈래? 도피의 물음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어깨를 툭툭 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다. 왜? 저기 보러가자. 그렇게 말했지만 도피는 거의 끌고가다싶이 로우를 데려갔다. 계속 넋이 나간듯 돌아다니던 로우가 홍학을 보다니 정신을 차린다. 홍학. 로우의 말에 도피가 멀리있는 홍학무리들을 본다.




"당신 혼현, 홍학이라며"


"응? 아아 표면상"


"표면상?"


"홍학이랑 다른 피랑 섞여있거든. 혼현은 그 다른 피"




로우는 전에 크로커다일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더 크고 어마어마한 것. 희귀한 종인가봐. 도피가 웃는다. 그렇지,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해줄께. 로우는 입술을 짓씹었다. 자신의 혼현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무엇보다 원래라면 희귀종에게는 자신보다 더 좋은 '여자' 신부감이 많을텐데. 그런 로우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도피가 로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걱정마, 그 중에서 널 선택한거야"




가문을 보고 말이지. 로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혼현에 대해 알게된다면 도피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를 생각하자 오한이 들며 소름이 끼쳤다. 그런 일은 없어야한다.







*


"피곤해 죽을 것 같아"



로우가 침대에 눕는다. 몇일째 연속으로 도피에게 져서 소파에서 잠을 잤다. 소파는 무척 불편했고 피로가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매일 가고싶은 곳은 꼭 가야겠다며 시내부터 차를 타고 3시간 이상은 가야하는 곳까지 돌아다니느라 녹초가 되어있었다. 도피는 오늘 하루쯤은 양보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첫날의 말이 약올라 그 생각을 접었다. 나 회사 가니까 그동안 침대에서 좀 자둬. 로우가 도피를 노려본다. 어제도 도피에게 졌다. 자신이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도피는 잔꾀가 많았다. 로우가 침대의 부드러운 느낌에 볼을 부볐다. 다녀온다. 로우가 대충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도피가 나가고 난 후에 로우는 오늘 일정을 떠올렸다. 오전중에 도피가 일을 끝내고오면 스쿠버 다이빙을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실질적으로 놀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기에 저녁에는 유람선에서 야경을 보기로 했다. 일단 잠을 좀 자둬야지. 로우는 기분좋은 냄새가 나는 이불을 감싸안으며 눈을 감았다.





딱히 물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 도피는 배 위에서 물 아래를 돌아다니는 로우를 바라보기만 했다. 로우는 간혹 열대어 하나를 잡아 물 위로 꺼내 담당자에게 혼나기도 했다. 그 미끌거리는 거 잡으면 기분 나쁘지 않아? 별로. 로우가 담당자의 눈을 피해 물고기 하나를 끌어올려 도피에게 보여준다. 핑크색의 몸체가 신기해 도피가 몸을 숙여 물고기를 바라본다. 신기하네. 그렇지? 물고기를 바라보다가 살짝 시선을 옮겨 로우를 바라보았다. 로우 또한 도피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춘다. 아. 또다. 낯뜨거운 시선을 얽힐까봐 고개를 돌려버린다. 로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물고기를 놔주고 다시 물 안으로 들어간다. 재미있나보군. 도피는 물결의 움직임을 보다가 물 속에다 손을 집어 넣었다. 차가운 느낌이 손가락에 닿아 찰랑인다. 푸하. 로우가 물에서 나오더니 배에 기댄다.




"성게에 찔렸어"


"조심 좀 하지"


"당신 안 들어와봐서 모르잖아. 성게가 엄청 커, 가시 길이가 내 팔만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생기가 도는 얼굴이 보기 좋다. 도피가 작게 웃고 물에 젖은 로우의 머리를 정리해준다. 너 같은 아이를 가지면 좋겠군. 말을 한 도피도, 들은 로우도 깜짝 놀란다. 무,뭐? 로우의 당황스러움이 잔뜩 묻은 질문과 마찬가지로 도피도 혼란스러워한다. 뭐? 몰라! 빨리 물고기들이나 더 봐! 도피가 억지로 로우를 물 안으로 넣는다. 두사람의 얼굴이 붉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 얕은 물로 와 스노클링까지 즐긴 로우는 저녁 먹을 쯤에는 피곤한듯 늘어졌다. 야경보지말고 바로 호텔로 갈까? 로우가 고개를 저었다. 도피는 쥐고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두었다. 그럼 좀 제대로 먹지 그래? 깨작거리며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이 마음에 안든다. 로우는 귀찮다는듯이 도피를 바라보았다. 알아서 먹고 있어. 지금 스테이크의 반도 안 먹었잖아. 스테이크 별로 안 좋아해. 그럼 다른 걸 주문하지 그랬어. 파스타는 더 싫어. 도피는 화를 참기 위해 잠시 숨을 골랐다. 썰어먹는게 귀찮은거지? 로우가 고개 숙인 상태에서 시선만 올려 도피를 바라본다. 이리줘, 썰어줄테니까. 머뭇거리지만 로우가 접시를 도피에게 넘긴다. 어려. 도피는 한숨을 쉬고 한입 크기로 스테이크를 잘라 로우에게 건넨다. 내가 집어서 먹여주기까지 해야하나? 로우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아아. 벌려져 있는 입에 도피가 억지로 웃으면서 한 조각을 집어 넣어준다.




"맛있네"




로우가 재수없게 웃더니 포크를 든다. 그 때부터 아까와는 확연히 다르게 적극적으로 스테이크를 먹는다. 도피는 아이를 하나 키우는 기분에 지친 숨을 내뱉었다. 식사를 마치고 유람선을 타러 선착장에 왔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주변에 세워진 간이마켓을 둘러보기로 했다. 로우는 신기한듯 여기저리를 기웃거리며 보고 있었다. 특히 수공예작품들이 마음에 드는 듯 그 주변에서는 오래 남아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배 타러 가자. 로우가 한참을 보고있던 물건에 시선을 뗀다. 응, 가야지. 도피는 흘긋 로우가 봤던 물건을 보았다. 반지? 도피가 먼저 가는 로우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로우와의 결혼식 때 반지교환 조차 하지 않았다. 정략결혼에 그런건 필요없다는게 로우네 집안의 주장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시키면서도 최대한 로우가 남에게 관련되지 못하게 만들기위함이었던 것 같다. 도피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해 빨리와"




밥먹을때와는 다르게 생생한 모습에 기가 찬다. 낮에 로우에게 했던 뇌를 거치지 않은 말 -너 같은 아이를 가지면 좋겠군- 을 떠올렸다. 저런 아이라니 싫다. 도피는 혀를 차고 로우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




로우는 난간에 기대어 야경을 바라보는 도피를 바라보았다. 몇일동안 호주에 있으면서 도피의 행동은 전과 많이 달랐다. 아직은 몇번 실랑이를 벌이던가 했지만 전체적으로 자신을 대하는 행동이 부드러워졌다.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이상한 말도 하고. 왜그럴까. 무엇을 바라고 이렇게 태도를 바꾸는건가. 로우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사정상 도피를 완벽하게 믿을 수 없다. 자신도 모든 비밀을 털어놓고 도피와 동등해지고 싶었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난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게 아니야. 자신의 결함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로우는 울적해졌다. 사실 그게 도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빠져있다. 시작은 야한꿈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꿈이 아니더라도 그를 쫓고 있었다. 




"내 혼현"


"어?"


"저번에 말해준다 했잖아"




도피가 난간에 기대어있던 몸을 돌려 로우를 바라보았다. 묘한 느낌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환영처럼 도피의 등 뒤에 보이는 날개에 눈을 깜빡였다. 당신 ...천사야?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뛰던 심장이 진정되고 날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도피가 손수건을 꺼내 로우의 땀을 닦는다. 조금 공격적인 성향으로 꺼냈더니 부작용이 있었네. 로우는 다시 아까를 떠올렸다. 희귀종, 그것보다 더 우위의 느낌.




"천사, 텐구, 가루다, 금시조. 뭐 꽤 많은 말로 불리지. 정확한 표현은 날개의 주인이라고 하는 게 맞아"


"날개의 주인?"


"모든 날아다니는 것의 수장이지"




일단 형태는 매와 거의 흡사하게 구현하지만 실제 형태는 좀 특이해. 로우는 혼란스러웠다. 도피는 크로커다일이 말한대로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그 때 들었던 '당신이 그 녀석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네'라는 말이 떠올랐다. 받아들일 수 있을리가 없다. 내 혼현은... 로우가 입술을 꾹 물었다. 부담스러워 하지마. 네 혼현은 천천히 가르쳐줘도 돼. 도피가 로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나중에 꼭 네 입으로 말해줘. 로우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키드는 언젠가와 같이 또 한번 도피와 악수를 나누었다. 한번도 얘기를 못 나눠서 아쉽네요. 도피가 웃었다. 둘 다 바빴으니까. 나 잠깐 다녀올데가 있으니까 둘이 잠깐만 있어줘. 도피가 키드의 어깨를 두드리고 어딘가로 향한다. 어디가는거야? 회사일 마무리 안된게 하나 있어서 통화하러. 그걸 저렇게 멀리가서 얘기하나? 회사일이니까. 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즐거웠어? 그럭저럭.




"야"


"왜"


"내 문제에 해결책이 있었으면 좋겠어"




로우의 말에 키드가 씁쓸하게 웃는다. 형. 어. 안아나보자. 로우의 표정이 잔뜩 구겨진다. 내가 왜. 아 그러지말고 한번만. 키드가 억지로 로우를 잡아 당겨 안는다. 괜찮아. 품 속에서 울리는 그 말에 로우가 잔뜩 울상이 된다. 건방지게 나보다 키도 커서는, 어깨 좀 빌려줘. 써라. 로우가 키드의 어깨에 기댄다. 어깨가 축축해진다. 매형 오기 전에 얼른 멈추고 정리해라. 닥쳐.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