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우는 칼로리바를 베어물었다. 한참 사진 찍느라 돌아다닌 탓에 일이 밀렸다. 마감기한을 넘겨버려 몇일전에 샹크스에게 크게 한소리를 들었다. 벌써 몇일째 하루에 네시간정도 자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돈 많이 벌어오는 배우자도 있겠다 이번 일만 끝나면 때려 치워 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마르코의 과외도 이번 겨울을 끝으로 관뒀다. 자신은 정식으로 무언가를 배운 사람도 아니었고, 이제 마르코는 기본은 거의 다 했기 때문에. 이쯤되면 자신의 반려가 일을 도와줄법도한데 그는 느긋하게 로우가 찍은 사진들을 자신의 노트북으로 감상하고 있었다.




"팔자 좋네"


"너가 팔자 좋게 마감 까먹고 놀러다닌걸로 화풀이 하지마"


"누가 화냈다고"


"치졸하게 말꼬리 잡긴"




도피는 얄밉게 웃어보이고는 다시 노트북에 시선을 둔다. 로우는 이를 갈 수 밖에 없었다. 말싸움에 절대 지지않으려고 한다. 그게 더 치졸한거 아닌가. 로우는 다시 영어로 된 책을 뒤적거렸다. 이제 알파벳만 보면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이게 마지막이었다. 이 것만 끝나면 잘거다. 푹, 아주 푹.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누르며 다시 타자를 친다.




"머리 아파? 많이?"




로우가 이마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봤는지 도피가 노트북을 내려놓고 로우의 옆에 앉는다. 이마에 손을 올리더니 짧게 숨을 내뱉는다. 도와줄까? 로우는 아까의 말이나 자존심 때문이라도 절대로 혼자서 하겠다고 쏘아 붙이고 싶었으나 이미 피로는 쌓여있었고 한계였다. 마지막 책인데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로우가 입술을 꾹 물고 고개를 끄덕이자 도피가 그 입술에 입을 맞춘다. 대신 커피 좀 줘. 로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노트북을 도피에게 건넨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 커피포트 앞에 선다. 이제야 살겠네. 눈을 몇번 깜빡이고 컵을 꺼내들어 커피를 붓는다. 거실로 나와 도피에게 컵을 건넨다. 땡큐.




"로우. 이번 일 끝나면 이제 이거 그만둬"


"그럴려고"


"흠. 의학용어 엄청 많네"




그냥 내가 할까? 아니, 의학용어는 원문 그대로 썼으니까 나중에 편집해. 로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소파에 눕는다. 아 살 것 같다. 로우는 꽤 집중해 책을 보는 도피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도피는 저보다 영어를 잘했다. 저번에 호주에서도 그랬고. 이론만 튼튼한 자신에 비해서 도피는 이론 회화 다 방면이었다. 내가 당신보다 나은게 별로 없군. 그렇게 생각하며 눈가를 문질렀다.


일어나 들어가서 자. 몸이 흔들리는 느낌과 도피의 목소리에 눈을 뜬다. 깜빡 잠에 들었나보다. 몸을 일으켜 노트북 화면을 보자 그새 번역을 다 해놓았는지 노트북이 꺼져있다. 다했어? 응, 내일 확인하고 수정해. 로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시계를 본다. 자정이 훌쩍 넘었다. 고마워, 도와줘서. 도피가 웃는다. 뭘 부부사이에. 그러더니 로우를 안아든다. 자러가자. 기분 좋은 도피의 냄새에 취해 그의 목덜미에 뺨을 부빈다. 침대에 누워 도피의 품을 파고든다. 도피도 로우를 껴안는다.




"사진 잘 찍었더라"


"빈말이라도 고맙게 받을께"


"아니 정말. 감각 있는 것 같던데"




로우가 푸스스 웃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고마워.







*


일을 관둔 로우는 그야말로 한량이었다. 사진 찍으러 여기 저기 돌아다니던가 집에서 하루종일 박혀 만화책을 보던가, 게임을 하던가, 영화를 보던가. 그리고 얼마전에 게임을 하나 샀다며 게임을 시작하더니 몇일째 그 게임만 붙잡고 있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고. 도피는 게임에 집중한 로우를 바라보았다. 추리나 심리, 퍼즐 게임을 좋아할 것 같던 로우는 총게임을 광적으로 좋아했다. 기분이 상쾌해진다며. 나름 건전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생겼군. 도피는 그렇게 생각하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클리어. 그 글자가 뜨자 로우가 조이패드를 내려놓고 기지개를 킨다. 드디어 깼네. 도피가 그 모습에 작게 웃는다. 로우가 게임을 끄기 위해 조이패드를 집어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피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온다.




"잠깐만"




도피가 로우의 왼손을 잡아채어 바라본다. 그의 네번째 손가락에 마땅히 있어야 할 반지가 없다. 처음에는 도피의 행동에 의아해하던 로우도 반지가 없음을 확인하자 놀란다. 도피가 얼굴을 굳힌다.




"너 이거 평소에도 빼놓고 다녔냐?"


"아니야!"


"그럼 어디있는데"




로우는 눈동자를 굴리며 오늘 하루를 되짚어본다. 샤워할 때, 꼈는데. 요리할 때, 안했는데. 책 읽을 때, 꼈는데. 게임할 때, 꼈는데. 아니 근데 진짜 꼈나? 이제 로우는 어제와 오늘, 그저께와 어제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책을 오늘 읽었던가 어제 읽었던가. 로우의 표정이 점점 울상이 되어간다. 도피는 로우가 반지를 빼놓는 것도 모자라 잃어버리기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머릿속에 수많은 상황들이 지나갔다. 너 바람피는거지? 로우의 눈이 커진다. 뭐?




"안그래도 요즘 악어새끼랑 자주 만나더니 둘이 붙어먹어?"


"뭐라고? 붙어먹어? 당신은 날 그렇게밖에 못 믿어?"




이제 로우도 화가 난다. 반지 하나 안 꼈다고 다짜고짜 자신을 불륜남으로 몰아간다. 도피가 이를 으득 간다. 네 녀석 주위에 위험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펭귄이란 새끼도 그렇고. 펭귄 얘기는 왜 꺼내? 그 새끼 위험하니까 만나지마. 그게 무슨 상관이야! 니 남편인데 상관있지! 내 인간관계 다 끊어버릴 생각이야? 니 주위에 음흉한 놈들 밖에 없다고! 그러면 마르코도 만나지 말라고 하지 그래? 그래, 만나지마! 치졸하게 왜이래? 넌 왜 주변에 남자나 끌어들여? 당신은 둘 다 끌어들이잖아! 내가 언제? 크로커다일이랑도 잤다며! 왜 옛날 얘기를 꺼내? 있지도 않은 얘기 꺼내는 건 누군데! 있지도 않은 얘기는 무슨, 솔직히 다른 남자들 만나고 다녔잖아! 로우는 이제 어이가 없어 미칠 지경이었다.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자 억울함까지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참 억울해서 못있겠네! 진짜 바람피러 가겠어!!"




그렇게 소리 지르고는 로우가 핸드폰과 지갑, 차키를 챙긴다. 나가봐 그래! 로우가 뒤를 휙 돌아 도피를 째려보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도피는 닫힌 문을 보다가 소파에 앉는다. 어느정도 숨을 고르고 난 뒤에도 로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부터 도피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바람 피러 간 걸까. 그럼 누굴까. 크로커다일? 펭귄? 샹크스? 얼마전에 자신의 지인이 연 파티에서 친해진 드레이크? 옛날에 학회에서 만났다가 로우가 번역한 책을 보고 찾아온 시저라는 놈? 로우가 후원하는 유기동물 센터의 베포라는 남자? 아니면 어느날 핸드폰에 저장 되어있었던 사치인지 뭔지 그 사람? 그것보다 왜 이렇게 남자가 많아! 도피는 다시 화가 나 소파에서 일어났다. 방금전까지는 전화라도 해볼까 했지만 지금은 괘씸해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솔직히 반지 잃어버린 로우의 잘못이 컸다. 도피는 쉬어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몸을 바로 눕혀 천장을 바라본다. 아직도 화가 가시지 않는다. 덕분에 괜히 로우의 안 좋은 모습만 떠오른다. 일단 제일 먼저 떠오른건 절대로 현관으로 나와 인사 한번 하지 않는다는 것. 우연히 그 앞을 지나다가 마주치면 '왔어?' 이 한마디만 하고 자기 할 일 하러 간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하는데. 요리를 지지리 못한다. 저번에 한번 도와줘서 시켰더니 부엌만 엉망이 되었다. 아니 진짜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혀봤나. 진짜 도련님 납시셨네. 이제 슬슬 로우의 단점을 생각하는게 재미가 들린다. 로우는 말다툼이 일어나면 곧 죽어도 지지 않으려고 으르렁거린다. 장유유서도 모르는 건방진 놈. 어짜피 자신이 이기긴 하지만 곧 죽어도 말꼬리 잡고 덤벼드는 모습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린게 어디서 기어올라. 그리고 부부가 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한번도 그걸 하지못했다. 껴안는데까지 키스까지 얼마나 걸렸던가. 먼저 스킨십을 하지도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도피는 짜증이 치밀었다. 내가 봐주는게 몇갠데 그렇게 기어올라? 괘씸한 놈. 도피는 몸을 뒤척였다. 짜증이 나 몇번 몸을 뒤척이는데 턱뼈 부근이 딱딱한 무언가에 결린다. 뭐야. 손으로 베개를 휘적이며 딱딱한 것을 찾는다. 잡았다.




"아"




그건 로우의 반지였다. 다른날도 그랬지만 오늘따라 유독 몸을 뒤척이던 로우를 떠올렸다. 그 때 빠진건가. 도피는 이마를 짚었다. 미안하다, 로우. 무엇보다 뒷담깐거 미안.







*


로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현관 앞에 섰을 때부터 당황스러워졌다. 이렇게 나오면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도피가 잡아주면 미안하다하고 화해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이렇게 흘러가버렸다. 갈 곳도 없었다. 크로커다일에겐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는 없었다. 펭귄은 본가에서 지내고 있었고, 샹크스는 일을 그만둔 후로 한번도 연락 한 적이 없었다. 얼마전에 친해진 드레이크는 언제든 놀러와라고 말은 했지만 동하지 않았고, 시저라는 사람은 겉으로는 좋아보여도 속은 알 수 없어 기분 나쁜 사람이었다. 유기동물 센터에나 갈까했지만 바쁠 베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관둔다. 사치, 사치는. 날 너무 어려워해. 로우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주위에 별로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울적해진다. 로우는 일단 이 아파트를 벗어나기 위해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차를 타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떠오른 한 공간에 핸들을 꺾었다. 한참 한시간정도를 달린 후에야 도착한 곳은 가문의 공동묘지였다. 로우는 미리 사둔 꽃 두송이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부모님의 묘가 나란히 있었다. 로우는 각자 꽃 한송이씩 묘지에 내려둔다. 그리고 부드러운 잔디가 깔린 곳에 엉덩이를 깔고 앉는다.




"꽃다발은 너무 거추장스러운 것 같아서 관뒀어요.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네. 나는 두분 다 얼굴도 잘 모르잖아요. 그게 좀 아쉽네요. 그래도 사진은 있어요. 어렸을 때 보물상자 같은 곳에 꼭꼭 숨겨뒀는데 결혼한다고 이사를 하면서 찾았어요. 지금은 액자에 걸어두고 있어요"




로우는 뜸을 들이듯 조금 숨을 골랐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는 두분 다 원망 많이 했어요. 태어날 때부터 혼자이게 만든 어머니도, 그런 날 가시방석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며 목숨을 끊은 아버지나. 특히 아버지는 더욱 더 미웠어요. 이런 지옥에서 날 두고 죽나. 날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위안은 됐었거든요. 근데 아버지까지 사라지니까 정말 외톨이가 된 것 같아서. 아버지가 죽으면서 키드도 쫓겨났거든요. 내가 그녀석이 이복동생이라는 걸 알고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이 미웠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좋은 사람도 만났고, 살아갈 이유도 있고, 더이상 혼자도 아니고, 행복해요"




살랑거리며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에 로우가 웃는다. 아직은 봄이 오지않아 바람이 차가웠다. 하지만 로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묘석을 만지작거렸다.




"28살이나 되서 이제서야 처음으로 이 곳에 온 거 죄송해요. 아까 말한 좋은 사람 덕분에 여기 올 용기가 났어요. 그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인데, 건방져요. 4살 많다고 나이 들먹거리면서 뻐기고, 자기가 선택해서 한 일에 온갖 생색은 다 내고, 게임이나 내기는 죽어도 이기려들고. 철 없는건 저가 더 심하면서 괜히 나이타령하고. 오해도 잘하고, 속 좁고. 하나에 집착하는 성격도 장난 아니고. 근데 그런데도 다정한 게 신기해요. 그렇게 틱틱거리면서 챙길 건 다 챙겨주고, 부드러울때는 얼굴이 빨개질만큼 부드럽고. 요리도 잘해요. 파스타 느끼해서 안 먹었는데 그 사람은 담백하고 맛있게 해요. 애정표현도 많이 해주고, 싫다하면 물어날 줄 알고 기다려주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엄청 희귀한 유존종이고"




어느새 도피의 칭찬을 늘어놓는 저가 민망해져 로우가 뒷머리를 긁는다. 정말 많이 좋아하나보네. 로우는 차가워진 손을 만지작거겼다. 습관처럼 왼손 네번째 손가락을 만지작거렸지만 반지가 만져지지 않았다.




"아, 오늘 제가 반지 끼는 걸 깜빡했나봐요. 그 사람이 반지가 없는걸 발견한거에요. 근데 갑자기 저보고 바람 피냐고 몰아붙이더라고요. 좋은 사람이긴 한데 절 못 믿는 건 좀 너무한거 같아서 이렇게 뛰쳐나왔어요. 아파트 현관에서 조금 기다렸는데 기어코 안 나왔어요. 내가 자길 버릴리가 없는데 그것도 못 믿고 몰아붙이고. 얼마나 억울하던지.."


"미안해"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로우가 고개를 돌렸다. 뒤편에 가만히 서있는 도피를 보고는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뭐야? 어떻게 왔어? 그의 반응을 보던 도피가 혀를 찬다. 그렇게 좋다고 칭찬해놀고 왜 이렇게 쌀쌀맞게 굴어. 로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들었어? 도피가 고개를 끄덕이고 로우의 옆에 다가가 눈높이를 맞춘다. 로우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도피를 바라본다. 도피는 민망한듯 턱을 쓰다듬다가 이내 손을 내민다.




"왼손 줘 봐"


"왜"


"일단 줘"




로우가 손을 들어 도피의 손에 얹힌다. 그러자 도피가 주머니를 뒤적여 반지를 꺼내 네번째 손가락에 끼운다. 침대에 있었어, 자면서 벗겨진 것 같더라. 밥 좀 챙겨먹어, 손가락까지 살이 빠지냐. 그렇게 말하는 도피는 자신의 잘못을 아는지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미안해, 오해해서. 로우가 작게 웃는다. 괜찮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로우는 도피의 차에 탔다. 조수석에 늘어지게 몸을 기대며 로우는 차에 있던 직소퍼즐을 만지작거렸다. 한참 영양가없는 대화를 하다가 로우가 퍼즐을 멈추고 도피를 바라보았다.




"근데 내가 거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어?"


"핸드폰 GPS 추적"


"뭐? 스토커야?"




도피가 브레이크를 밟는다. 이게 진짜 말하는 꼴 봐라?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어떡해! 신호걸린거야. 로우가 인상을 쓴다. 아니, 내가 틀린말했어? 위치추적이라니 스토커지! 야, 원래 요즘 폰 다 GPS 되거든? 난 그 기능 설정해놓은 적 없어. 도피의 입이 다물린다. 입술을 꾹 무는 모양새가 로우에게 진 것이 분명했다. 로우가 그 모습을 보더니 크게 웃는다.




"내가 그렇게 좋아?"


"당연한거 아니야?!"




로우가 팔을 뻗어 도피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긴다. 가볍게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핥은 뒤에 입술을 뗀다. 로우가 눈꼬리까지 접으며 웃는다.




"나도 당신이 좋아"







*


베르고는 묘하게 들뜬 도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분명 회의가 끝나자마자 받은 보고 때문이겠지. 회장실의 문을 여는 도피의 손짓은 이제 아예 흥분에 가득 찼다. 열린 회장실 문 안에는 그의 반려, 로우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베르고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곤 문을 닫았다. 도피는 로우의 옆자리에 가 앉았다. 그가 두번째로 스스로 회사에 찾아온 것이다. 무슨일로 온거야? 나 보러왔나? 같이 들어가려고? 도피의 질문에 로우가 머뭇거리는듯 하더니 서류봉투를 꺼내어든다. 도피는 그것을 받아 안을 확인해본다.




"오! 공모전 수상했어?"




로우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것봐, 내가 재능 있는 거 같다 했잖아. 도피가 기분좋게 웃으면서 로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엄청나, 이런거 상 받는 거는 또 처음보네. 대상이잖아. 진짜 열심히 공부했나봐. 로우는 말없이 들뜬 도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쩌지. 오늘 일정 다 취소하고 집에 갈까. 로우가 고개를 젓는다. 기다릴테니까 다 하고 와. 괜찮겠어? 로우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도피가 몸을 일으켜 로우의 이마에 뽀뽀를 한다. 금방 끝내고 올께. 그러고는 베르고를 불러 일정을 확인한다. 도피는 이 다음에 바로 미팅이 있어 회장실을 나선다. 로우랑 있어줘. 베르고는 그렇게 말하고 미팅을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도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회의 중간부터 지루해하며 일을 미룰 생각을 하던 그를 단번에 의욕에 차게 만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난 배우자군. 베르고가 회장실로 발을 들였다.




"불편한건 없으십니까?"


"괜찮습니다"




로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챙겨온 것인지 책을 읽는다.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베르고가 대화를 하고싶어 하는 걸 눈치챈 로우가 책을 덮고 고개를 든다. 대화할거면 마주앉아서 얘기하고 싶은데요. 베르고가 살짝 웃고 맞은편 소파에 앉는다. 실례. 저번에 만년필에 대한 이야기 도플라밍고에게 해주셨다던데. 예. 알아챌거라고 기대조차 안했는데 덕분에 기뻤습니다. 베르고가 웃는다. 별말씀을요, 덕분에 일의 능률이 올랐습니다. 로우가 도피의 책상을 흘긋 본다. 게으른가보죠? 일하기 싫어하시죠, 할 때는 하시는데 그게 드뭅니다. 방금도 트라팔가씨가 오시기 전까지 일을 미룰 생각만 하고 있으셨습니다. 로우는 새로운 도피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4살차이 연상이라해도, 결국 철 없이 일을 미루는 건 둘 다 똑같다. 베르고가 웃는 로우를 보더니 말을 잇는다. 만년필일이나 오늘 일이나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별로 제가 의도 한 일은 아닙니다. 베르고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감사의 선물입니다. 아니,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뇌물이니 받아주시죠"




앞으로도 회장님을 위해서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요. 그의 재치있는 말에 로우가 크게 웃는다. 그런거라면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로우가 상자를 집어 열어본다. 금색링의 귀고리가 네개 들어있다. 회장님과 같은 것입니다. 로우는 도피의 귀에 달린 링을 떠올렸다. 자세히보면 묘하게 유광과 무광의 조화로 무늬가 있던 귀고리. 상자를 빛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자 그와 같은 무늬가 나타난다. 로우가 귀고리를 꺼내 바꿔낀다. 딱 달라붙는 피어싱을 하고있었던지라 흔들거리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고마워. 베르고가 작게 웃었다.







*


"너무 많아"


"많이 먹어. 그래야 살이 찌지"




로우는 짧게 숨을 내뱉고는 다시 포크를 움직인다. 간만에 도피가 수상기념이라며 요리를 해주었다. 간단한 파스타도 아니고 코스요리를. 로우는 그 많은 양에 혀를 내둘렀다. 부지런히 먹고는 있지만 양이 쉽게 줄지 않았다. 계속 샐러드만 먹고있는 로우를 발견한 도피가 핀잔을 준다. 탄수화물이나 단백질도 먹어. 비타민만 먹으면 힘 없어진다. 로우가 투덜거린다. 스테이크나 감자나 썰어먹기 귀찮아. 내 이럴줄 알았지. 도피가 썰어진 자신의 스테이크 조각을 집어 로우의 입가에 가져다댄다. 아. 정말 애 하나 키우는 기분이야. 도피는 턱을 괴고 자신이 먹여주는 고기나 감자를 씹는 로우를 바라보았다.




"귀고리 바꿨네"




샐러드의 토마토를 집어먹던 로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 비서가 줬어. 당신이랑 같은거야. 그러게. 도피가 기분 좋게 웃는다. 주말에 놀러가자. 일이나 해, 이거 그 비서가 당신 일 좀 하게 도와달라고 준거야. 도피가 이마를 짚는다. 그런거였어. 로우가 시선을 들어 도피를 본다. 눈이 마주치자 로우가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아쿠아리움 갈래? 도피가 크게 웃는다. 전국에서 가장 큰 곳으로 가자.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