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버스 주의





*


"오페오페 열매?"
"맘에 들지 않나?"

도피는 로우에게 대뜸 괴상하게 생긴 열매를 들이댔다. 얌전히 방에서 책을 읽고있던 로우는 당황스러웠다. 물론 불만도 한가득이었고. 지금 자신이 보고있는 책은 벌써 세번째 읽고 있는 책이었다. 도피는 나갈 때마다 자신을 위해 책을 사왔는데 이번에는 오랫동안 나가지 않아 읽을 책이 없었다. 간만에 나간다하여 새 책을 기대하고 있고 있었건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악마의 열매였다. 로우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책은?"
"이거 먹으면 주지"

로우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열매를 한입 물었다. 그와 동시에 입안을 도는 끔찍한 맛에 로우는 뱉어버릴 요량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도피가 큰손으로 로우의 입을 막아버린다. 꼭꼭 씹어먹어, 로우. 로우는 겨우겨우 열매를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었다. 로우가 삼킨 것을 확인하자 그제서야 도피가 손을 떼어낸다. 기분이 어때? 로우는 잔뜩 인상을 썼다. 책이나 내놔.

"능력으로 가져가봐"

도피는 방문 앞에 쌓인 책을 가리켰다. 로우는 인상을 잔뜩 썼다. 뭐 능력을 어떻게 쓰라고. 그러나 이내 당연히 알고있던 것처럼 로우는 능력을 써 책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올수있었다. 자신이 해놓고도 신기한지 로우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도피는 그런 꼬마의 뒷통수에 가볍게 입맞췄다. 저녁에 보자. 방을 나가는 도피를 바라보았다가 로우는 다시 시선을 책으로 옮겼다. 로우는 뒷통수를 긁었다. 남사스럽게.




*

도피는 방으로 돌아왔다. 가만히 앉아서 흩어진 서류들을 보던 베르고가 도피의 얼굴을 보더니 혀를 찬다. 도피가 그런 베르고를 바라보자 베르고가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린다. 왕비가 꽤 마음에 드나보지. 아아 물론. 도피는 기분좋게 웃으며 흩어진 서류 중 하나를 읽는다.

"얼굴이 폈군"
"열매도 먹였으니 전투기술만 익히면 같이 항해 할 수 있겠어"
"의사였다고?"

도피는 대답하지 않았다. 더이상의 관심은 삼가하라는 은근한 압력. 도피는 꼬마를 파트너 정도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베르고가 보기에는 그와는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얼마전에 꼬마의 가슴에 새겨진 문신은 하트였으니. 생각보다 많은 애정을 꼬마에게 쏟고 있다는게 보였다. 꼬마의 히트사이클이 시작되고 관계를 가지는게 관건이겠지. 속궁합까지 맞아버리면. 베르고는 생각을 멈추었다. 도피가 종이 하나를 그의 눈 앞에 들이댔기 때문이다.

"칠무해?"
"아. 어때?"
"그건 왕비에게 묻지 그래"

걘 아직 내가 해적인거 몰라. 베르고는 다시 한번 놀랐다. 예상보다 훨씬 더 애정을 가지고 있나보군. 베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마음대로해라. 몸을 일으켜 도피의 방을 나간다. 간만에 왕비의 얼굴이나 볼까싶어서 그의 방으로 가 노크를 한다. 보통은 '들어와'라는 꼬마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오늘은 문이 열린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로우는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책을 보고 있었다.

"능력인가?"
"응. 이런 곳에만 쓰는게 아쉽긴 하지만"
"실험체가 필요한건가?"

로우가 눈을 빛내며 베르고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무척 좋다. 몇시간 안되서 능력을 파악하고 자유자재로 쓴다. 베르고가 흥미롭게 웃으며 로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동물들이 필요하다면 따라와. 로우가 바로 몸을 일으킨다. 못본새에 키가 더 큰 것 같다. 지금 키가 몇이지? 186센치. 190까지는 크겠군. 베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거리로 나갈건데 그는 현재 왕비이기에 위장이 필요했다.

"잠깐만 기다려"




*

로우는 몇달만에 나오는 거리에 꽤 들떠있었다. 여전히 북적거리는 거리를 둘러보고 있을쯤 베르고가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간다. 로우는 후드를 더 깊게 눌러쓰고 그를 따른다. 조금 구불구불한 골목을 빠져나가자 동물들을 파는 가게가 나온다. 이런 거리에서 살던 로우는 여기가 불법적인 가게라는 걸 알고있었다. 베르고가 한 가게 앞에서 멈춘다.

"무난하게 개로 하지"

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의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장이 익숙하게 그를 지하로 안내한다. 지하에 갔더니 꽤 넓은 공간이 나온다. 한참 이런 거리에서 살 때 '사나운 동물들로 싸우는 능력을 키울수 있는 가게가 있다'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로우는 베르고의 의도를 눈치챘다. 베르고가 로우에게 물었다. 그만두고싶나. 로우는 기분좋게 웃었다. 아니.




*

움직이는 생물에게는 능력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베르고가 개라고 말했지만 정작 튀어 나온 것은 개처럼 생긴 사나운 괴수였다. 몇번 그 날카로운 발톱에 긁히고 난 후에 겨우 능력이 먹혀들었다. 다리를 잘라버려 움직임은 봉쇄했지만 생명을 끊기지 않는다. 로우는 거친숨을 내쉬었다. 숨통을 끊는 방법. 로우는 허공에 손을 뻗곤 꽉 쥐었다. 

"성공적이군. 그 룸이란 거 안에서는 네가 신인건가?"
"그런셈이지"

손에 튄 피를 털어내며 로우가 대답했다. 베르고는 조금 고민하는듯 하더니 뭔가 생각난듯 웃었다. 여러마리는 어때. 로우는 고민했다. 확실히 움직이는 생물에게 쓰는 건 익혔으니 움직이는 여러 생물에게 쓰는 법도 익혀야겠지. 하지만 지금도 부상은 꽤 심했다. 부담스럽다면 오늘은 이쯤하고. 조금은 오기가 돌아 베르고를 저지한다. 여러마리로 가지. 베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수고. 베르고가 지하실을 나가자 지하실 한켠의 문이 열린다. 여러마리면 세마리에서 네마리정도 될까 생각하던 로우는 경악했다. 열마리, 그것도 다양한 생김새의. 개, 고양이, 새, 뱀, 곰, 말 기타등등. 로우는 이를 악물었다.

"룸"




*


일단 개는 순조롭게 처리를 했지만 각각 다양한 속성을 가진 괴수들에 머리가 팽팽 돌 지경이었다. 날렵하고, 날아다니고, 유연하고, 힘이 강하고, 빠르고. 한마리를 잡았다 싶으면 다른 한마리가 다가와 이빨을 드러낸다. 빠른 시간에 어느정도 이상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야한다. 제일 빠른 죽음, 즉사의 한 방법. 로우는 곰에게 손을 뻗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쉰다. 손가락을 움직이자 곰의 심장이 빠져나온다. 그대로 뒤에서 날아오는 새의 입으로 던져버린다. 곰이 울부짖으며 쓰러진다. 로우가 만족스러운듯 웃었다. 이거다. 그렇게 동작이 느린 괴물부터 처리해 나가기 시작했지만 계속 생기는 상처들과 그 전에 생긴 상처들로 몸이 느려진다. 네 마리정도 남겨두고 있던 중 다리에 힘이 풀려 피웅덩이 사이로 주저앉았다. 남은 놈들은 민첩하고 날렵한 종류들뿐. 주저앉은 상태에서 손을 움직여 한마리의 행동을 멈춘다. 그리고 심장을 빼내어 터트린다. 그와 동시에 어깨를 깊게 물린다. 이제 한쪽 팔도 못 쓴다. 여러마리에게 동시에 능력을 쓸 수 있다면. 이제 기회는 마지막이나 다름없다. 이번에 실패한다면 한쪽팔도 물릴테고 결국 죽게될거였다. 입술에 피가 나올정도로 꽉 깨문다. 손을 뻗어 힘을 준다. 한마리가 저에게 달려온다. 주먹을 꽉 쥐었다. 코 앞에서 괴물이 멈춘다, 세마리의 움직임이 멈췄다. 됐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려면 다른 손이 필요하다. 움직임은 멈췄지만 여기서 더 어찌할 수가 없다. 설사가상으로 주먹을 쥐고있는 이 손도 힘이 빠진다. 점점 힘이 빠지면서 괴수들이 움직인다. 

"여기있었군"

목소리와 함께 괴수들이 피를 내뿜으며 죽는다. 로우는 룸을 풀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철벅하며 피가 튄다. 도피가 로우에게 다가간다. 로우는 머리맡에 가만히 서있는 거구를 바라본다. 역시 왕은 강하군. 로우가 웃자 도피의 표정은 더욱 더 굳는다. 


같이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 들어간 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성 안 곳곳을 찾아봐도 로우는 보이지 않았다. 도피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꼈다. 도망간건가. 성 안 경비병들을 쑤셔대서 그 방안에 마지막으로 들어간게 베르고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장 베르고에게 찾아가자 베르고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자신이 뒤를 봐주고 있는 괴수들을 파는 가게 중 하나. 빨리 가보는게 좋을걸. 마지막으로 나올 때 열마리 주문하고 나왔거든. 젠장. 도피는 걸음을 빨리했다. 성의 서쪽벽을 넘어가면 금방이었다. 서둘러 뒷골목으로 가 가게들을 뒤졌다. 


그렇게 겨우 찾아오니 이 모양 이 꼴이다. 거기다가 핏물사이에 누워서는 웃는다. 화가 솟구쳐 한대 걷어찰까하다 그에게 묻은 피가 괴수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참았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도피가 고개를 숙여 로우를 바라보았다. 로우는 대답이 없었다. 죽고싶어서 환장한건가 아니면 어린 놈의 패기인가? 한 나라의 비가 뒷골목으로 와서 이렇게 상처를 달고오면 보기 좋겠나? 도대체 무슨 정신이지? 대답해봐라 트라팔가 로우. 


로우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답지않게 냉정을 잃은 모습에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도피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결국 대답 대신 그는 도피에게 웃어보였다. 도피는 한숨을 쉬고는 로우를 안아 들었다. 

"자세한건 성에서 듣지"




*

치료를 위해 옷을 벗었을 때 상처는 어마어마했다. 도피의 표정은 펴질줄을 몰랐다. 분명 이 상처를 보면 대신들이 쪼아댈 것이 분명하다. 상처가 나을 동안은 근신처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치료가 끝나고 의사가 방을 나가자 도피가 침대에 걸터앉는다. 아까보다는 훨씬 냉정을 찾은 모습이다. 따로 추궁은 하지 않았지만 로우는 무언가 말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얼른 바다에 나가고 싶어서"
"하"

도피는 피로를 느꼈다. 언젠가 흘러가듯이 너가 강해지면 항해에 참여 시켜 주겠다 말한 것을 그렇게 담아두고 있었나보다. 생각보다 바다에 강한 열망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로우는 선글라스를 벗고 눈을 만지는 도피를 바라보았다. 얼핏 충혈된 게 스트레스가 꽤 쌓였던가보다. 저의 서랍에 충혈에 좋은 안약이 있던 것이 기억이 나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이내 도피의 손으로 저지당한다. 어디가려고. 안약. 로우가 손으로 서랍을 가리키자 도피가 몸을 일으킨다. 서랍 앞으로 다가가 로우를 바라본다. 거기서 제일 윗쪽 서랍 보라색 병. 도피가 보라색 병을 꺼내 다시 침대로 다가온다. 로우에게 건내어주자 로우가 도피의 뒷목을 잡아당긴다.

"넣어줄께"

도피는 작게 웃는다. 꼬맹이의 작은 관심에 마음이 풀린다. 눈에 차가운 액체가 느껴지자 피로감이 좀 사라진다. 실력이 좋군. 도피가 말하자 로우가 만족스럽게 웃는다. 안약을 나이트테이블에 놓고 이불 안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있던 도피가 로우의 옆에 눕는다. 이불 안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로우가 고개를 든다. 벌로 오늘은 같이 잘거야. 그리고 상처 나을 때까지 근신. 로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피는 눈을 감고 로우를 끌어 품속에 안는다. 일찍이 도피가 무언가 안고 자는 버릇이 있는 걸 아는 로우는 가만히 품에 안긴다.

"미안 도피"
"알면 잘해"

도피의 고른 숨소리와 함께 로우도 눈을 감는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