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까만 천에 수를 놓은 것처럼 불빛이 반짝인다. 평소 같았으면 그 야경을 보며 감상에 젖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따위 없었다. 로우는 자신의 귓가에 닿는 뜨거운 숨에 몸을 움츠렸다. 도피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소선정이 너무 마니악하다. 로우는 바깥이 보이는 통유리에 손을 짚었다.




"으흣.. 흐응...."


"로우, 뒤에 뜨거워"




낮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당신 그거 일부러 그러는거지? 아냐, 진짜 뜨거워. 도피가 손가락을 움직인다. 아흑..! 자꾸만 미끄러지는 손에 힘을 주어 다시 유리를 짚는다. 도피, 침대에 가서 하면 안돼? 여기 거실이잖아. 도피는 대답 대신 로우의 귓바퀴를 물었다. 싫다는거군. 로우는 한숨을 쉬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탄성을 뱉는다. 배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흥분감에 몸이 달아오른다.




"넣는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진다. 고개를 끄덕이자 도피가 뒷주머니에서 콘돔을 꺼낸다. 한손으로는 계속 로우의 안을 휘젓고 다른 한손으로는 입이 물린 콘돔의 비닐을 뜯는다. 외설적인 그 소리에 로우가 눈을 꾹 감는다.




"아아!"


"후... 힘 빼"




도피가 로우의 엉덩이를 마사지하듯 주무른다. 착하지, 힘풀어. 로우가 입술을 꾹 물며 몸에 힘을 뺀다. 뒤에서 파고들어오는 도피의 힘 때문에 이제 로우는 팔을 짚어 몸을 버티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자 이마에 유리의 차가움이 느껴진다. 도피의 것이 안으로 더 깊숙히 들어올수록 쾌감이 더해진다. 도피가 천천히 그러나 이내 빠르게 움직인다.




"으응.. 흣..! 앗! 아,아,아, 아앗!"




두사람의 뜨거운 숨으로 유리창에 김이 서린다. 로우는 자꾸만 미끄러지는 팔을 들어올리며 까만 야경을 바라보았다.







*


피곤해. 눈을 감았다가 뜨려는데 눈두덩이가 천근만근이다. 결국 눈을 감은채로 의자에 기댄다. 요새 잠도 부족한데다가 밤마다 도피에게 시달리느라 체력이 남아나지를 않는다. 로우는 억지로 눈을 떠 수술 대기 목록을 바라보았다. 당장 급하게 수술해야 할 사람도 없었고, 다 간단한 수술이었다. 떠넘겨야지. 이 상태로 메스를 잡았다가는 사고날 게 뻔했다. 로우는 느릿하게 책상 위의 전화기를 집었다. 외과장에게 대충 넘길 수술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잔뜩 긴장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린다. 로우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럼 부탁합니다. 전화를 끊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점심 조금 넘은 시간, 그냥 퇴근해버려야지. 몸을 일으켜 의사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외투를 집어든다. 자켓을 힘들게 입는데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진동한다. 도피만 아니길. 로우가 핸드폰을 집어든다.




"왠일이야"


-나 지금 공항. 얼른 데리러 와.




로우가 인상을 쓴다. 뭐? 이 새끼가 진짜. 로우는 이미 통화가 끊긴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대충 서류들을 가방에 넣고 차키를 챙긴다. 데스크에 들려 퇴근한다고 말해두고 급하게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여기서 공항까지 한시간 걸릴텐데. 로우가 혀를 찼다.


빨리 왔네. 로우는 특이한 게임기를 만지작거리는 키드를 내려다보았다. 백팔십 밟았다. 키드가 킥킥거리며 웃더니 게임기를 내려놓는다. 저번에 말했잖아, 방학이라고. 로우는 꽤 오래전에 했던 키드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분명 이번 방학 때 우리집에서 지낸다고 했었지. 오기 전에 한번이라도 연락하지 그랬어. 까먹었어. 키드가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킨다. 가자. 먼저 앞장서서 가는 키드의 뒷모습에 로우가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건방진 동생새끼.


로우는 조수석에 늘어지게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키드가 왔으니 이제 밤에 잠 좀 자겠지. 운전을 하다말고 키드가 멍하게 있는 로우를 곁눈질로 본다. 나한테 운전까지 시키고, 밤에 매형이랑 사이 좋은가봐. 닥쳐. 키드가 개구지게 웃는다. 로우는 이마를 짚었다. 호주가 꽤 잘 맞는지 전보다 장난이 더 늘었다. 호주 살만하냐? 응, 완전 재밌어. 애들도 웃기고.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형한테 내 얘기했어? 아니. 얼른 전화해. 로우가 귀찮은듯 짧게 숨을 뱉자 키드가 으르렁거린다.




"나보다 작은게 어디서 이빨 세워"


"어리다고 무시하지마라"




로우가 인상을 잔뜩 쓰고 으르렁거린다. 키드가 깜짝 놀라 로우를 바라보았다. 그거 방금 혼현이야?? 로우가 귀찮은듯 핸드폰 화면의'홍학'이라고 적힌 부분을 터치한다. 혼현 맞아? 방금 엄청 컸는데? 호랑이야?




-무슨일이야


"오늘부터 키드 방학이라서 우리집에서 지내. 저번에 말했지?"


-아아, 그래


"뭐야 반응이 왜그래"




한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도피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쉬워서. 로우는 도피가 생략하고 말한 부분이 예상이 가 한숨을 쉬었다. 나 이제 죽을지도 몰라. 도피가 웃는다. 곧 들어갈께. 응.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키드가 달려든다. 대답 좀 하라고! 로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호랑이야. 집에 가서 보여줘! 미쳤냐? 키드가 끙끙거리는 소리를 낸다. 로우가 혀를 차며 말을 덧붙인다. 검은 호랑이야. 장난 아니다! 잔뜩 들뜬 키드의 목소리에 로우가 인상을 쓴다. 운전에 좀 집중할래 멍청아?


로우는 집에 오자마자 바로 뻗었다. 그러니까 침대에도 가기 전에 소파에 앉자마자 잠에 들어버렸다. 키드는 잠든 자신의 형을 바라보며 침대에 눕힐지, 담요를 덮어줄지 고민했다. 깨면 안되니까 담요가 좋겠지. 키드가 겨우 안방을 찾아 담요를 가져와 덮어준다. 차를 타고 오면서 들은 얘기들로 미루어보아 요새 일이 많은 게 분명했다. 거기다가 수면부족까지. 수면부족의 이유는 말 안해도 뻔했고. 키드는 거실 한켠에 놓인 짐들을 바라보며 턱을 쓸었다. 짐 풀 수 있게 방이라도 알려주고 자지. 곤히 잠들어있는 로우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쉬고 아까 안방을 찾기 위해 집 안을 돌아다닐 때 쓸만한 방이 없었는지 기억을 되새긴다. 딱 봐도 로우의 방인 곳 외에는 그닥 잘 수 있을만한 방이 없었다. 자신이 형의 방에서 잔다면 형은 어디서 자는가. 키드는 짐만 가득하던가,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없는 휑한 방들을 떠올렸다. 너무한데. 




"왔네 처남"




키드가 고개를 돌려 현관쪽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입니다. 도피가 기분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편하게 말해, 로우는? 키드가 턱짓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오자마자 자네요, 밤에 좀 살살하시지 그랬어요. 도피는 대답없이 입꼬리만 올려 웃고는 잠들어있는 로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몸을 숙여 조심스럽게 로우의 뺨을 쓰다듬는다. 침대에서 편하게 자. 로우가 살짝 뒤척인다. 데려다 줘. 잠에 취한 목소리가 제법 가라앉아있다. 도피가 로우를 안아든다. 키드는 남사스러운 둘의 애정행각에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발끝을 바라보았다. 괜히 온다했나. 로우를 침대에 눕히고 도피가 다시 거실로 나온다. 짐 풀어야지? 그제서야 키드가 고개를 든다. 로우 방 써, 그 방 거의 안 쓰니까.







*


"언제까지 있다 간다고?"


"열흘정도 있다가 갈거에요"




도피가 젓가락을 움직이던 손놀림을 멈추고 생각을 한다. 열흘. 어느정도 시간 계산을 끝낸 도피가 다시 젓가락을 움직인다. 적당히 놀다가라고, 둘 다 바빠서 괜찮을지 모르겠네. 키드가 고개를 젓는다. 다른 친구들도 있으니까 괜찮아요. 로우없이 단 둘이만 있는 것이 꽤 어색할거라는 키드의 걱정과는 달리 두 사람은 꽤 편하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키드는 식사를 하며 무언가 할 말이 없나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보니 형의 혼현. 도피가 고개를 든다. 봤어? 멋지지? 아뇨, 보지는 못했는데. 검은 호랑이야, 털도 윤기나거 반짝거리고 멋있어. 로우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묘하게 들뜬 목소리의 도피에 키드가 당황한다.




"저녁 먹고 있었어?"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있는 로우가 응접실로 들어온다. 너도 먹을래? 아니, 막 일어나서 입맛없어. 로우가 느릿하게 걸어와 도피의 옆에 앉는다. 짐은 풀었냐? 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너 어머님은? 내가 왜 굳이 형에게 왔겠어.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어디시래? 로마. 장난아니네.




"어머님?"


"이복형제니까요"




아아. 도피가 로우를 바라본다. 근데 웬 로마? 어머님 세계여행이 취미시거든, 남편분이랑 자주 돌아다니셔. 멋지네, 우리도 여행 다닐까? 병원 때문에 바빠. 로우가 식탁 위의 컵을 집어 마신다. 병원일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야? 확실히 요즘 피곤해서 그런지 몸이 너무 무거워. 휴가 내고 좀 쉬어. 그래야겠다. 두사람이 대화 할 동안 식사를 마친 키드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형, 매형한테 그 얘기 들었어?"


"뭐?"


"아이 이름"




로우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진다. 무슨 말이야. 로우가 사납게 노려보지 도피가 난감하게 웃는다. 아니 그냥 혼자 생각했봤던건데. 왜 나보다 쟤가 먼저 알아? 로우, 질투하는거야? 로우는 대답 대신 도피의 볼을 꼬집었다. 됐고 무슨 얘기인지 빨리 말해. 별거 아닌데. 키드는 턱을 괴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깨가 쏟아지는구만.




"그냥 남자애면 스페이드나 클로버. 여자애면 하트나 다이아로 하는게.."


"절대 안돼"




어디서 가져온 트럼프 카드야? 안 그래도 아까 처남한테 한소리 들었어. 로우가 한숨을 쉰다. 다시 지어. 







*


로우는 간만의 휴가에 조이패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키드가 어제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서 자신을 위해 최신 게임을 여러개 사왔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을 산 그 돈은 다 자신의 것이었지만. 그 중 로우는 키드의 강력한 추천으로 격투게임을 선택해서 플레이하고 있었다. 로우가 하는 모습을 몇번 보던 키드가 결국 자기도 하고싶다며 조이패드를 잡는다.




"형, 은근히 잘하는구나"


"다시 병원일 하기 전에는 하루의 반을 게임에 투자 했었으니까"




키드가 킥킥거리며 웃는다. 형, 게임하다 죽을 수도 있어. 로우는 대답 대신 조이패드를 꾹꾹 누른다. 로우의 캐릭터와 싸우고 있던 키드의 캐릭터가 쓰러진다. 으악! 곰돌이한테 한방 먹었어! 이상한 마스크 쓴 킬러라는 놈에게 당할 우리 곰돌이가 아니다. 키드가 이를 간다. 로우의 캐릭터인 곰돌이에게 공격을 퍼붓지만 덩치는 커다란게 날렵해서 공격을 맞추기가 꽤 힘들다. 그거 사기캐야. 로우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인다. 능력치는 너가 더 좋거든. 결국 키드의 캐릭터가 쓰러진다. 키드는 조이패드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안해. 로우는 다시 새로운 게임 무더기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형, 내가 아이 이름 생각해봤는데"


"아직 애도 안 만들어졌는데 왜 다들 아이 이름 얘기야"




미리 생각해두면 좋잖아, 아무튼. 로우가 몸을 돌려 키드를 바라본다. 아들이면 에이스랑 사보, 딸이면 보니랑 다이아, 어때? 사보? 클로버가 지혜잖아. 그래서 먹, 벼루, 붓, 종이 이렇게 네 개의 보물, 사보. 그럴싸하네. 마음에 들지? 근데 클로버 클레버에서 나온게 아니라 클럽에서 나온 말이야. 키드가 인상을 쓴다. 트럼프 카드로 고려한거 아니거든? 로우가 시큰둥한 얼굴로 끄덕인다. 그래 그래. 




"레이싱 게임 할래?"


"콜. 이번에는 내가 이기겠다"


"그래라"







*


로우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너 도대체 왜 나에게 쇼핑을 가자고 한거냐. 키드가 몸을 돌려 로우를 바라보았다. 형, 옷들이 너무 구식이잖아. 로우가 인상을 쓴다. 호주 가기 전에는 너나 나나 비슷했거든. 형은 너무 집 안에서만 있었어. 키드가 옷을 하나 집어든다. 28살이나 됐으면 후드는 그만 입어. 로우는 매장에 구비되어있는 소파에 앉았다. 알아서 골라, 결제 다 하고 불러. 키드가 혀를 찬다. 늙은이.


으레 쇼퍼홀릭이 쇼핑하듯 쇼핑백을 한가든 든 키드를 바라보았다. 그거 다 내 옷이냐. 응. 로우가 이마를 짚는다. 형이 좋아하는 취향대로 샀으니까 걱정마. 로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밀었다. 들어줄께. 키드에게 쇼핑백을 받은 로우가 걸음을 옮긴다. 더 살 거 있어? 없어. 그럼 이거 차에 가져다놓고 어디에 앉아 좀 쉬자.


"형 일주일동안 봐 왔는데 체력이 너무 떨어졌는데?"

"그러게. 요즘 몸이 너무 무거워"


키드가 로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리를 약간 끌면서 걷는게 로우가 얼마나 피곤한지를 말해준다. 주차장의 차 뒷좌석에 쇼핑백들을 우겨 넣고 로우가 핸드폰을 확인한다. 주변에 카페 없나.


"여기서 멀긴 한데 경치 좋은 카페 갈래?"


로우가 핸드폰에 두었던 시선을 옮긴다. 어딘데? 한시간 좀 안되게 차 타고 가면 있는 바닷가. 로우가 턱짓으로 운전석을 가리킨다. 운전해.




바로 옆에서 파도 치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 특유의 짠 냄새가 나지만 그렇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로우는 짜이라고 하는 차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홍차에 우유 탄거라고? 비슷한데 조금 달라. 마셔봐 맛있어. 로우가 찻잔을 들어 한모금 마신다. 홍차 특유의 맛이 나면서도 우유 때문에 목넘김이 훨씬 부드럽다. 괜찮네. 키드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여기 경치 좋지? 어.


"요즘 피곤해하는 거 심리적인 이유 아닐까"

"별로 요즘 스트레스 받는 거 없는데"


키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럼 왜 그렇게 피곤해하지? 로우도 머리를 긁었다. 그러니까. 포도당 주사라도 맞아야하나. 고개를 돌려 풍경을 바라본다. 나무들 사이로 반짝거리는 바다가 보여 기분이 좋다. 여기 정말 괜찮은 곳이네. 로우가 눈을 감고 살랑거리는 바람을 느낀다. 나중에 매형이랑도 자주 와. 응. 







*


로우는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바라보았다. 요새 몸이 좋지 않아 수술은 전부 돌려버리고 이사직 일만 맡고 있는데도 피곤하다. 키드는 몇일전에 호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번주 주말에 도피가 꽤 오랫동안 해외 지사에 간다. 로우는 짧게 숨을 뱉었다. 갑자기 집이 텅 비는군. 한달정도 도피없이 밥을 챙겨먹을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밥 하는 건 정말 싫은데. 로우는 늘어져있던 몸을 일으켜 책상 위의 서류를 바라보았다. 괜히 병원일 맡았나. 다시 펜을 들어 서류에 사인을 한다.




"일하는 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도피가 들어온다. 로우가 다시 달력을 본다. 오늘 따로 이사회의가 잡혀있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야? 너 보고싶어서. 도피의 낯간지러운 말에 로우가 작게 웃는다. 그거 고맙네. 도피가 로우의 책상을 흘긋본다. 급한 일이야? 아니. 로우가 펜을 내려놓는다. 어짜피 빨리 처리해야하는 일들은 펭귄에게 돌려버렸다. 도피가 로우의 뒷편에서 가만히 서있다가 몸을 숙인다. 로우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가볍게 입을 맞춘다.




"설마 당신"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잖아?"




도피가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처남 있을동안 많이 참았어.







*


"괜찮아요? 안색이 많이 안 좋은데, 밥은 잘 챙겨먹는거에요?"




집요하게 따라붙는 질문에 로우가 손을 휘저어 질문을 저지시킨다. 하나씩 물어봐, 머리 아파. 그제서야 진정한 펭귄이 로우의 옆에 난간에 기대선다. 잠은 잘 자요? 응. 밥은요? 대충 먹긴 먹어. 대충? 칼로리바 정도. 펭귄의 표정이 험악해진다. 그렇게 먹다간 쓰러져요. 로우가 혀를 찬다. 귀찮은 걸 어떡해, 요리는 도피의 일이었단 말이야. 남편분 없으면 밥도 못 먹습니까? 응. 펭귄이 이마를 짚는다.




"로우 안되면 제가 밥 사드릴테니까 끼니 거르지 마세요"


"거른적은 없어"


"제대로 챙겨드세요. 이러시면 억지로 본가에 끌고 들어올겁니다"




로우가 오만상을 한다. 싫어. 그럼 혼자서 잘 챙겨드세요. 로우가 입술을 꾹 물더니 펭귄이 사온 스무디를 빨아 마신다. 너 잔소리가 너무 심해. 애같이 굴고 있는 건 로우에요. 로우가 팔을 들어 시계를 본다. 점심시간 거의 끝나가네, 먼저 내려간다. 로우가 난간에 기대있던 몸을 일으킨다. 펭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계단으로 가는 로우를 바라보았다.




"어어?"




로우! 펭귄은 들고있던 커피도 떨어뜨리고 계단으로 뛰어갔다.


눈앞이 새까맣다. 몇번 눈을 깜빡이자 흰빛이 눈 안으로 들어온다. 정신이 좀 들어요? 불만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로우가 고개를 돌린다. 펭귄이 팔짱을 끼고 로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 어디야? 어디긴요, 병원이잖아요. 계단에서 쓰러져서 깜짝 놀랐다고요. 로우가 천장을 바라본다. 쓰러졌었나? 왜? 로우의 표정을 보더니 펭귄이 한숨을 쉰다. 영양부족이래요. 그러니까 밥 잘 챙겨먹으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얼마동안은 입원하세요. 왜? 펭귄이 뒷머리를 긁는다. 몸 상태가 좀... 그래요.







*


도피는 북적거리는 공항의 한복판에 있었다. 자신의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와야할 베르고가 아직까지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으름 피운건지, 차가 막히는건지. 도피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로우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일하는 중인가, 수술하러 들어갔나.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내 멀리서 보이는 베르고의 모습에 생각을 멈춘다.




"늦어서 미안하다"


"됐어"




베르고가 도피의 옆에 있는 가방의 손잡이를 잡는다. 바로 회사로 갈건가? 도피가 턱을 쓰다듬는다. 글쎄. 그것보다 로우는 뭐하는 줄 알아? 모를것이 뻔하지만 혹시나하고 베르고에게 묻는다. 베르고가 잠깐 생각하는듯 하더니 입을 연다. 그는 병원에 있다. 도피가 허탈하게 웃는다. 그렇게 당연한건 나도 알아. 입원해있어. 도피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왜?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군, 입원해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짐은 내가 알아서 하지"




도피는 베르고가 건네어주는 차키를 받아들었다. 부탁해.


급하게 차에서 내려 병원 카운터로 향한다. 트라팔가 로우, 입원실 어딥니까. 카운터의 직원이 컴퓨터 화면을 몇번 훑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 이름의 환자분은 안 계신데요. 도피가 이마를 짚었다. 일반 병원도 아니고 반류 전문 병원에 입원해 있다, 도대체 어디가 아픈걸까. 도피는 몸을 돌려 반류 관할로 향한다. 카운터에서 로우의 병실 호수를 듣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일반 병원도 아니고 반류 관할이면 혼현에 관련된 문제일 것이 분명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걸까, 겨우 찾은 혼현이다. 안좋은 일이 생겨 절망하는 로우가 머릿속에 지나간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할텐데. 엘리베이터가 목표층에 다다른다. 꽤 안쪽에 있는 병실에 더욱 더 긴장이 된다.




"로우 병원밥은 왜 남기는거에요. 다 드셔야죠"


"그럼 맛있게라도 만들던가. 다음 이사회 때 건의해야겠어. 식사의 질을 높이라고"




생각보다 평화로운 로우의 모습에 도피가 당황한다. 펭귄은 도피를 보고 고개를 까딱인다. 로우 저 갈테니까 밥 좀 잘 챙겨드세요, 영양제도 한계가 있어요. 펭귄이 병실을 나가자 로우의 시선이 도피에게 향한다. 왔네. 도피가 멍하게 로우의 얼굴을 바라봤다가 이내 한달음에 달려가 로우를 껴안았다.




"무슨 병원이야! 큰일 난 줄 알았잖아!"




도피의 품 속에서 로우가 작게 웃는다. 별로 걱정할만큼은 아닌데. 도피가 몸을 떼어내고 로우의 뺨을 쓰다듬는다. 어디 아파? 아픈거 아니야, 있다면 영양부족 정도. 그럼 왜 입원한거야? 로우가 조금 민망한듯 눈동자를 굴린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 얼른 말해.




"임신했어"




그것도 쌍둥이. 도피의 눈이 커진다. 로우가 고개를 숙인다. 살짝 보이는 귀 끝이 붉다. 도피는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혹시 이게 꿈은 아닐까, 그것보다 혹시 자신을 놀리기 위한 거짓말이 아닐까. 중종끼리의 번식은 무척 힘들다, 특히나 희귀종인 자신의 번식력은 거의 바닥이었다. 그런데 쌍둥이라니, 날개의 종족이 아니더라도 쌍둥이를 가졌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로우가 손을 들어 부드럽게 도피의 뺨을 쓰다듬는다. 약간은 울듯한 그의 표정에 로우가 웃는다. 나도 처음 그 얘기 들었을 때 그런 표정이었던 거 같아. 도피가 눈을 꾹 감았다 뜬다. 기쁘다. 응.







*


그러니까 처남 오기 전에 착상 된거구나.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피는 볼록해진 배를 쓰다듬었다. 피곤하지는 않고? 피곤해, 쌍둥이라서 힘이 더 들어. 도피가 로우의 뺨에 입을 맞춘다. 힘들면 도와줄테니까 말해. 도피는 막 임신하고 입덧할 쯤의 로우를 떠올렸다. 그 어떤 때보다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모습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하루에도 수십번 먹고싶어하는 음식이 바뀌었고, 사소한것에도 화를 내고 꼬투리를 잡았었다. 




"도피, 그 날개의주인 능력으로 어떤 종인지는 못 봐?"


"배 안에 있어서 그렇게 자세히는 못 봐. 크기나 생명력 정도밖에 못 봐. 확실한건 남자아이야, 둘다"




로우가 고개를 숙여 배를 바라보았다. 번식력이 약한 두 사람이라 어떤 종이 나올지 몰랐다. 확률은 확실히 호랑이가 높았지만 도피에게는 홍학의 피가 반 섞여있었기에 아이의 혼현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호랑이였으면 좋겠다. 은근슬쩍 고개를 드는 종족번식의 욕심이 재미있어 로우가 웃었다. 당신은 아이가 어떤 종이었으면 좋겠어? 둘이니까 사이 좋게 하나는 호랑이 하나는 날개종이면 좋겠지. 아이 이름은? 스페이드랑 클로버. 로우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걸 아직도 고집하고 있었나.




"전에 키드가 에이스랑 사보 어떻냐고 물어봤는데"

"사보?"




네가지 보물이라는 뜻인데, 먹, 벼루, 붓, 종이를 말하는거래. 괜찮네. 그렇지? 도피가 기분 좋게 웃는다. 첫째를 에이스라고하자. 왜? 트럼프 카드에서 최고의 카드니까. 로우가 도피의 볼을 꼬집는다. 그 놈의 트럼프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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