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날 엄마만 독차지야!!"

 



집 안의 시선이 모두 한쪽으로 몰린다. 거실 한켠에서 사보의 숙제를 도와주던 도피가 난감하게 웃는다. 모르는 거 있으면 또 물어봐. 고개를 끄덕이는 사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도피가 몸을 일으켜 잔뜩 찡그린 에이스에게 다가가 눈높이를 맞춘다. 우리 아들, 무슨 일이야. 엄마가 루피 데리고 가서 루피랑 못 놀잖아. 루피랑 놀고 싶다고 말하지 그랬어. 이제 그런 말하기도 지친단말이야! 도피가 허탈한듯 짧게 숨을 뱉었다. 이 쓸데없는 고집은 분명 로우를 닮은거다.



 

"에이스랑 놀래!"



 

로우의 품에 안겨있던 루피가 버둥거리더니 에이스에게 뛰어간다. 놀자! 자신에게 와락 안기는 루피를 보며 에이스가 기세등등하게 웃는다. 가만히 앉아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로우가 뒷머리를 긁는다. 그래, 엄마가 잘못했어. 그러더니 안방으로 들어가버린다. 이번에 도피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에이스는 로우를 꼭 닮았다. 도피는 에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셋이서 말썽 피우지말고 놀고있어. 고개를 끄덕이는 에이스를 보고 도피가 안방으로 들어간다. 커다란 침대 구석에서 로우는 책을 읽고있었다. 도피가 가까이 다가가자 시선을 들어 도피를 한번 보더니 다시 책을 읽는다. 침대 끄트머리에 앉자 침대가 살짝 기운다.



 

"마음 상했어?"


"별로"



 

별로는 무슨. 몸을 움직여 침대 위의 로우 옆에 앉는다. 그제서야 로우가 읽고있던 책을 덮고 도피를 바라본다. 잔뜩 뚱한 표정이 로우의 기분을 대변해준다. 에이스가 루피 많이 아끼는 거 알잖아. 부드럽게 로우의 뺨을 쓰다듬자 로우가 한숨을 쉰다. 아는데,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어. 도피가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고는 로우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춘다. 근데 왜 그렇게 루피만 싸고 도는거야. 로우가 눈동자를 굴린다. 본능일껄. 본능? 로우가 침대에 눕는다. 같은 호랑이다보니 챙겨줘야겠다는 마음이 강해. 그리고 조류에 비해서 포유류는 독립시기가 늦으니까. 도피가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에이스와 사보는 루피 나이가 되자 스스로 자신들이 해야할 일들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의 머리가 로우를 닮아 똑똑한 것도 있었지만 혼현의 영향도 적지 않을 터였다. 그에 반해 루피는 아직도 여기저기 말썽을 부리는 꼬마였다. 얼마전에는 놀이터에서 뭘 했는지 유리조각으로 자신의 눈 밑을 그어버린탓에 상처까지 생겼다. 도피가 누워있는 로우를 바라보더니 그 옆에 눕는다. 몸을 돌려 한쪽 손으로는 턱을 괴고 다른 손으로는 로우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나랑 놀고싶은 본능은 없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로우의 입꼬리가 올라가있다. 도피가 고개를 살짝 숙여 입을 맞추자 로우가 도피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넷째는 안돼. 도피가 소리내어 웃는다. 루피는 네 집념으로 낳은거야. 시끄러워. 로우가 도피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더 깊게 입을 맞춘다.

 



"넷째는 안된다며"


"관계는 안된다 한 적 없는데?"



 

내일 병원 가? 질문의 의도가 뻔히 보여 로우가 눈동자를 굴린다. 내일 병원에 가야하지만 간만에 도피와 몸을 섞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도피가 대답을 재촉하듯 로우의 귀 뒷편에 짧게 키스를 한다. 가야하는데 미뤄보려고. 그 말에 도피가 관능적으로 웃는다. 어떡하지, 지금 당장 하고 싶은데. 도피의 손이 옷 안으로 들어와 로우의 허리를 끈적하게 쓰다듬는다.

 



"뭐해요?"



 

으악! 로우가 급하게 도피를 밀친다. 몸을 일으키자 침대 아래에 에이스와 사보, 루피 셋이 나란히 서있다. 아빠랑 얘기 중이었어. 아이 셋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침대 위로 올라온다. 에이스가 로우에게 다가가더니 로우를 껴안는다. 기분 상하게 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로우가 작게 웃고는 에이스를 껴안는다. 엄마도 기분 상한거 아니야. 에이스가 고개를 든다. 거짓말. 이 조그만한 게. 로우가 억지로 미소를 짓는다. 아니라니까. 아닌게 아니란거 알아요. 도피가 에이스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당겨 품에 안는다. 에이스, 엄마 괴롭히면 못 쓰지. 그치만 거짓말 하잖아요. 그럼 거기서 기분 나빴다고 어떻게 말해. 에이스가 입을 꾹 다문다. 도피가 에이스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에이스를 침대 아래에 내려놓는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야?"


""


"엄마 기분도 풀렸으니까 걱정말고 놀아"


"그럼 바닷가가서 놀아도 돼요?"


"그래, 저녁 먹기 전까지는 들어와"



 

에이스와 사보의 표정이 밝아진다. 좋았어!! 루피가 소리치더니 로우를 꼭 껴안는다. 고마워요 엄마. 그리고 침대를 내려가서는 먼저 방을 나가버린다. 같이가 루피! 나머지 둘도 방을 나가더니 소란스러운 소리가 난다. 그리고 이내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정적이 흐른다.

 



"쟤네 바닷가 가고 싶어서 사과한거지?"


"요즘은 애들이 더 영악해"



 

도피의 말에 로우가 짧게 웃으며 눕는다. 시계를 확인하더니 도피의 팔을 잡아끈다. 애들은 적어도 세시간은 있다가 올테니까 우리끼리 놀자. 도피가 팔을 짚고는 로우를 내려다본다. 죽여주게 놀아줄께.

 






*

 

거실에 크고 작은 사진앨범들이 널려있다. 도피가 그 사이에서 하나를 집어 펼친다. 제일 앞장의 날짜를 보니 3년전 겨울쯤의 사진이다. 에이스와 사보는 7살이었고, 루피가 4살 때였다. 눈도 오고 기분이 좋아 겨울산의 펜션에 놀러갔었더랬다. 제대로 된 도구도 없었는데 아이들은 잘도 눈썰매를 만들어 타고 놀았다. 그 모습들을 찍은 사진에 담긴 로우의 애정이 느껴져 도피가 웃었다. 몇장을 넘기자 에이스와 사보, 루피의 혼현이 찍힌 사진이 나온다. 불을 감싸고 있는 매의 형상을 한 에이스와, 날개가 유독 큰 사보와, 새끼 호랑이의 모습인 루피. 도피는 처음 아이를 낳았을 때를 떠올렸다.

 

쌍둥이인 에이스와 사보는 도피의 예상과는 다르게 날개종이었다. 그것도 날개의 주인. 이 일 때문에 도피의 가문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한 세대에 하나가 나올까말까한 종이 두마리씩이나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로우가 병원에서 산후 조리를 할 때 병실 한구석을 선물들이 가득 차지했었다. 거기에 병실에 로우는 얼굴 조차 모르는, 도피의 친척들이 병문안을 오기도 했었다. 그들의 부담스러울 정도의 극진한 대접에 로우가 스트레스를 받아 언제는 면회 거부까지 했었다. 그렇게 태어난 에이스는 자신과 같이 불의 속성을 가졌고, 사보는 날개가 커 훨씬 높이, 빠르게 날 수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 로우는 호랑이가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는지 출산 후 몸이 괜찮아지자마자 도피와 관계를 요구했었다. 그 이후로 로우가 아프지 않은 이상은 하루에 한번은 꼭 몸을 섞었다. 어떤날은 하루종일을 그 짓만 하며 보내기도 했다. 피곤하다고 다음에 하자며 애원을 해도 억지로 하던 로우가 생각이 나 소름이 돋는다. 도피는 그 때 정말 복상사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기어코 2년만에 아이를 가지고 에이스와 사보가 네살이 되던 해에 루피를 낳았다. 로우의 두번째 출산일에 믿지도 않던 신까지 찾으며 아이가 호랑이이길 빌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호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린 것도 같다.

 



"앨범들 늘어놓고 뭐해?"


"그냥. 옛날 생각나서"



 

로우가 작게 웃더니 도피의 다리를 베고 눕는다. 도피는 앨범을 옆에 놓고 넘겨본다. , 이 때 기억난다. 도피가 사진을 빼내 로우에게 보여준다. 아이들이 처음 학교를 들어갔을 때의 입학식 사진이었다. 로우가 사진을 보더니 손가락으로 앨범을 가리킨다. 거기에 루피 콧물 흘리면서 우는 사진 없어? 도피가 앨범을 훑더니 사진을 빼낸다. 이 사진 뭐야, 엄청 웃기잖아. 로우가 사진을 보더니 크게 웃는다. 에이스와 사보가 입학하는 바람에 혼자가 되어버려 두 사람이 학교에 갈 때마다 울어대던 루피였다.

 



"이렇게 심하게 울었어?"


"당신은 출근해서 몰랐지? 달래느라 고생했다니까"



 

도피가 로우의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했네. 사진을 집어넣고 다시 앨범을 넘긴다. 로우도 소파 밑의 작은 앨범을 집어 들어 펼친다. 여기는 당신도 찍혀 있네. 로우가 앨범을 뒤집어 도피에게 보여준다. 침대에 도피와 아이 셋이 누워자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인데도 느껴지는 평온함에 도피가 자세히 사진을 살펴본다. 루피의 눈밑에 붙여져있는 반창고에 도피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거 올해인데? 왜 기억에 없지? 로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애들이 옆에서 잘 때부터 깰 때까지 당신은 잠만 잤으니까. 도피가 머리를 긁적인다. 언제쯤이야? 해외출장 돌아온지 얼마 안되서. 도피가 다시 사진을 바라본다. 아빠가 간만에 집에 와서는 안 놀아줘서 서운했겠네. 로우가 고개를 들어 도피를 바라본다. 당신 깨우는 걸로 놀았다고 생각하던데. 도피가 작게 웃는다. , 귀여워 죽겠다.

 



"이거 봤어?"



 

로우가 앨범 사이에 끼어있던 종이 한장을 꺼낸다. 반듯하게 접혀있는 종이를 펼치자 제멋대로인 글씨가 보인다. 내용은 대충 가족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아빠. 도피가 짧게 웃는다. 이거 누가 쓴거야? 로우가 미간을 찡그린다. 누구였더라, 사보일껄. 도피는 다시 종이를 읽었다. 꼬불거리는 글씨 때문에 읽는 속도가 느리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멋있고 똑똑한 엄마. 문신이 최고에요. 도피가 크게 웃는다. 사보는 네 문신이 마음에 드나봐. 사보보다 에이스가 더해. 크면 문신할거라고 난리더라. 그거 다 읽으면 에이스가 그린 문신 도안 보여줄께. 도피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맞는 에이스, 사고뭉치이지만 형들을 잘 따르는 루피. 빨간머리가 특이한 키드 삼촌. 다정한 펭귄 삼촌.

 



"잠깐만. 펭귄은 왜 들어가 있는거야"


"계속 읽어봐. 크로커다일이랑 베르고도 나와. 샹크스씨도 나올껄"



 

무섭지만 이것저것 잘 챙겨주는 크로커다일 삼촌. 무뚝뚝한데 웃긴 베르고 삼촌. 계속 절 놀리는 샹크스 삼촌. 모두 다 좋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마지막 문장이 도피가 길게 숨을 뱉는다. 펭귄이 들어간 게 마음에 안 들지만 마지막 문장 때문에 참는다. 도피는 종이를 접어서 로우에게 건네었다. 여기, 문신 도안 봐. 도피는 로우가 주는 조그마한 쪽지를 받아든다. ASCE. S에 왜 엑스자 쳐져있는거야? 잘못써서 엑스자 치는데 사보가 자기 이름의 S라고 말한게 감명 깊었대. 그래서 그 모양 그대로 팔에 할거래. 에이스가 적은 모양을 보며 도피가 웃는다. 감각있네. 로우가 손가락을 들어 쪽지 뒷편을 톡톡 친다. 뒤에 봐봐. 쪽지를 돌리자 특이한 모양의 해적기마크가 보인다.



 

"이거, 흰수염?"


"당신도 그 동화책 봤어?"



 

도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코가 처음으로 쓴 동화책이라고 꼭 보라했잖아. 아아, 봤나보네. 에이스가 그 동화 팬이거든. 거기 나오는 해적단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그 마크를 등에 커다랗게 새길거래. 도피가 웃는다. 흰수염 해적단? , 멋지잖아. 선장이 아버지고 해적단들이 아들이고. 에드워드 영감 모토잖아, 내 아래 부하들은 다 내 아들이다. 누구씨의 나는 왕이고 너흰 백성이다 보다 훨씬 나아. 도피가 미간을 찡끄린다. 그건 내가 술 취해서 한 소리잖아. 로우가 들리지 않는 척 몸을 돌린다. , 딴청 부리지마. 도피가 로우의 손에 든 앨범을 빼앗아 바닥에 두고 두 팔을 잡는다. 계속 내 술주정으로 놀릴래? 그러게 누가 술주정 부리래? 너 좀 기어오른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수직적인 관계였어? 도피가 이를 간다. 로우가 그런 도피를 비웃는다.

 



"건방진 놈"


"자기 배우자한테 건방진 놈이라니... !"



 

도피가 로우의 손가락을 깨문다. 꽤 힘을 주었던지라 잇자국이 남았다. 로우가 몸을 일으켜 도피를 바라본다. 말에서 밀린다고 무식하게 힘을 쓰는건 야만인이나 하는 짓이야. 도피가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로우의 어깨를 잡아쥔다. 그래, 야만인이라서 널 잡아먹어야겠다. 로우를 끌어당겨 목덜미를 아프지 않을만큼 베어문다. 살짝 잇자국이 남은 곳을 혀로 핥자 로우의 몸이 움찔거린다.

 



"핥아먹을까, 씹어먹을까"



 

로우의 귓바퀴를 혀로 핥았다가 이를 세워 잘근잘근 씹는다. 계속 움찔거리던 로우가 도피를 밀어내더니 무릎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는다. 이제는 로우가 도피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는다. 목에서 시작해 입술이 점점 내려가며 쇄골에 머무른다. 도피는 달아오르는 몸에 로우의 머리카락을 헤집는다. 로우가 고개를 들어 도피와 눈을 맞추고는 웃는다. 그 모습이 섹시해 흥분감이 인다. 로우가 도피의 입술에 가볍에 입을 맞추더니 소파에서 일어난다.

 



"나 오늘 약속있어서 늦을테니까 애들오면 저녁이랑 숙제 부탁해"



 

그렇게 말하며 안방으로 들어가는 로우의 뒷모습을 보며 도피가 허탈하게 웃는다. 요물이네, 요물.

 






*

 

아까부터 로우는 5분마다 한번씩 한쪽 구석을 바라보았다. 안절부절하는 모양새가 신경쓰여 샹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우리 출판사 행사인데 얼굴 좀 펴. 무슨 일 있어? 로우가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한 곳만을 향해 있었다. 결국 샹크스가 고개를 돌려 로우의 시선이 닿은 곳을 바라본다.

 



"뭐야? 애들 걱정하는거야? 괜찮아, 우리쪽 경호원들이 잘 지키고 있어"


"그런 걱정이 아니라.."



 

로우가 입술을 꾹 문다. 쟤네가 사고치면 어쩌지. 로우의 말에 샹크스가 크게 웃는다. 로우네 삼형제가 꽤 사고뭉치라는 얘기는 소문으로 들었지만 로우의 이런 모습을 보니 얼마나 심각한지 예상이 되지 않는다. 괜찮을거야, 마르코도 저기 있거든. 애들 좀 놀아달라고 특별히 부탁 좀 했어. 그 말에 로우가 샹크스에게 맞춘다. 마르코?

 

 

 

에이스는 지금 잔뜩 화가 나있었다. 사보는 냉정한 판단으로 멀리서 에이스를 바라보고 있어고 루피는 먹을게 가득하다는 사실만으로 이 공간에 얌전하게 있었다. 하지만 에이스는 이 지루하고 좁은 공간에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눈 앞의 사람이 자신에게 가위바위보를 이길 때까지 절대로 여기서 내보내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시 덤빌셈이야, 꼬마?"


"꼬마 아니야!"



 

나한테 가위바위보도 못 이기는데 꼬마지. 에이스가 인상을 잔뜩 쓴다. 다시 해!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래, 이번에는 가위를 낼께. 좋아, 결정했어! 다시 두 사람이 가위바위보를 한다.

 



"젠장!"


"아하하! 너 정말 재밌다. 보통 이정도면 한번이라도 이길만한데"



 

에이스는 특이한 머리모양의 금발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빠와 같은 금발인데 느낌이 다르다. 훨씬 재수없다. 파인애플 같은게! 에이스가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른다. 마르코야, 마르코형이라고 불러. 싫어! 마르코는 싱글벙글 웃으며 에이스를 안아들었다. 에이스가 버둥거렸지만 18살의 마르코에게는 그저 어린아이의 몸짓일뿐이었다. 귀엽구마잉. 에이스가 눈을 치켜뜨고 마르코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심심해?"


"이런 공간은 질색이야"



 

마르코가 에이스를 자신의 무릎에 앉힌다. 그럼 동화책 좋아해? 뚱해있던 에이스의 표정이 금새 흥미로 변한다. 마르코가 기분좋게 웃고는 직원 하나를 부른다. 귓속말로 무어라 말하더니 이내 직원이 책 여러권을 가져온다. 동화책을 보자 이제 에이스의 표정은 흥분에 가득 찼다.

 



"흰수염 해적단이다!"


"? 이거 알아?"



 

에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야. 나중에 크면 등 뒤에 흰수염 마크로 크게 문신도 할거야. 이거 팬이었을 줄이야, 영광인데. 에이스의 눈이 커진다. 이거 그 쪽이 쓴거야? 마르코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이스의 태도가 돌변한다. 작가님, 팬이에요! 마르코가 에이스의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럼 아직 출판안된 다음편도 보여줄까? ! 대신 여기에 가만히 있어야 해.

 

조금만 더 있다가 가요. 로우는 그렇게 말하며 떼를 쓰는 에이스를 바라보았다. 마르코가 당황스러운듯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죄송해요, 선생님. 에이스가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네요. 한참 둘이서 마르코가 구상한 동화책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던지 낙서들이 그러져 있는 종이들이 쌓여있었다. 아니야, 얘가 원래 네 동화책을 좋아했었어. 로우가 떼를 쓰는 에이스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오늘은 여기까지하고, 다음에 마르코 형아를 집에 초대하는 건 어때? 로우의 제안에 에이스가 고민하는듯 잔뜩 인상을 쓴다. 그럼 그 때는 하룻밤 자고 가야해. 에이스의 말에 마르코가 웃는다. 그래, 약속할께. 마르코가 내미는 새끼손가락에 에이스가 자신의 손가락을 건다. 약속이야! , 그럼 밖에 아빠 있으니까 거기에 가 있어. 로우의 말에 에이스와 사보, 루피가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제서야 로우가 몸을 일으켜 마르코를 본다.

 



"이제 사투리 거의 안 쓰는구나"


"이 나이에 쓰면 웃기니까요"



 

마르코가 작게 미소 지었다. 에이스 때문에 고생 많았어. 아니에요, 오히려 열혈팬 만나서 힘이 됐는걸요. 로우가 낙서가 그려진 종이를 집어들었다. 확실히 너, 무역쪽 잘 포기했어. 선생님도 동화책 보셨어요? 안 봤으면 에이스가 어떻게 그 동화책을 알겠어. 감사해요. 로우가 고개를 들어 마르코를 바라보았다. 그럼 자주 에이스 좀 돌봐줘, 상상 이상으로 네 동화책 좋아하거든. 마르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선생님과 다르게 에이스는 엄청 귀엽네요잉"


"넘보지마"



 

로우가 마르코를 노려보았다. 마르코는 그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멀리서 도피와 이야기를 나누는 에이스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요라는 속마음을 삼키면서.

 






*

 

책 읽어주세요. 밑에서 들리는 소리에 도피가 고개를 숙인다. 에이스가 손에 든 동화책을 흔들어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요구하는 횟수가 줄기는 했지만 에이스는 자기 전에 동화책 읽어주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동화책 마니아. 얼마 전에 마르코가 왔다 간 것을 떠올렸다. 분명 그 녀석이 주고 간 책일테지.

 



저번에 아빠 목소리 별로라고 싫다며


엄마가 훨씬 부드러우니까요. 근데 이 동화책은 아빠 목소리에 더 어울려요



 

얜 정말 로우의 아이임이 분명했다. 요망한 게 빼다 박았다. 도피가 작게 웃고는 에이스가 쥐고 있는 동화책을 받아 들었다. 읽어줄테니까 침대 가서 누워. 도피의 말에 에이스가 기분 좋게 웃으며 방으로 뛰어간다. 아이들의 방으로 가면서 동화책을 대충 훑어본다. 흰수염 해적단 2번대 대장, 에이스. 오로지 에이스를 위한 동화책이군. 들으면서 부러워 할 루피나 지루해 할 사보의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저건 듣기 싫어!”


형이 고른거잖아, 잔말 말고 들어


고작 2 20초 차이면서



 

이미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두사람을 도피가 말린다. 그럼 내일은 사보가 고르면 되겠네. 부드럽게 사보의 머리를 쓰다듬자 사보가 입술을 꾹 다물고 2층 침대로 올라간다. 루피는 아직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지 침대에 누워 똘망똘망한 눈으로 도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이스까지 침대에 눕자 도피가 책을 펼친다.

 


동화책의 내용이 끝났을 때는 에이스까지 잠에 들어 있었다. 도피는 책을 책상 위에 두고 아이들 세명 모두의 이마에 짧게 키스를 한다. 잘자라. 문을 닫고 안방으로 가자 침대에 누운 로우의 등이 보인다. 이불을 파고 들어가 허리를 껴안자 얕은 신음소리를 낸다.

 



“…다 읽어줬어?”


. 나 때문에 깬거야?”



 

아니, 기다리고 있었는데 깜빡 잠들었어. 그 말에 도피가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로우의 뺨에 키스를 하자 로우가 몸을 돌려 도피의 품 속으로 파고든다. 내일 우리 둘 다 휴일이지? 도피의 말에 로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 같은 날 밤이 제일 행복해, 애들은 자고, 나는 당신의 품에 있고, 내일 출근 안하고


왠일로 예쁜 말이야?”



 

아까 잠깐 잘 때 꿈 꿨거든, 당신이랑 결혼하기 직전의 꿈. 도피가 팔에 힘을 줘 로우를 더 세게 끌어안는다. 결혼하고부터 벌써 10년이다. 꽤 오랜 시간인데 돌이켜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렸다. 처음 결혼하고부터 1년 동안 있었던 우여곡절이나, 아이를 가지고 키우면서 힘들었던 거나, 로우가 병원에서 자리를 잡는 과정이나. 27살과 31살이던 그들은 이제 37살과 41살의 자신들이 되었다.

 



우리 곧 결혼 11주년인데 뭐 할래


벌써 그렇게 됐나



 

로우가 날짜를 계산하는 듯 눈동자를 굴린다. 10년 지났네. , 하고 싶은 거 없어? 우리 막 결혼했을 때 했던 것들 해볼까. 뭐했더라? 호주도 가고, 아이스 스케이팅도 하고, 같이 게임도 하고, 케이크도 만들어 먹고, 아쿠아리움도 가고. 그걸 다 기억해? 당연하지, 다 첫경험인데. 자신이 신경 써서 준비했던 이벤트까지 빼먹지 않고 기억하는 모습에 도피의 기분이 좋아진다.

 



진짜 행복하다


당신이 그런 단어 쓰니까 낯간지러워



 

, 난 예쁜 말이라고 했잖아. 도피의 말에 로우가 얄밉게 웃는다. 누가 그렇게 말하라 했나. 에이스나 사보가 얄미운 건 다 너 닮은거야. 갑자기 애들은 왜 끌어들여. 네 유전자 섞였으니까 그러지. 우와, 치졸해. ? 치졸? 이게 진짜. 도피가 몸을 일으켜 로우의 허리를 간지럽힌다. 결혼하고 몇 년 지나서야 로우가 간지럼을 잘 탄다는 걸 알아낸 도피였다. 간지럼을 태우자 로우가 금방 항복을 선언한다. 미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제서야 도피가 만족스러운 듯 손을 거둔다.

 



치사해


너도 약점 하나 잡던가



 

로우가 도피를 노려본다. 도피도 지지 않고 그 시선에 맞대응한다. 그러다가 동시에 서로 웃어버린다. 한참 기분 좋게 웃다가 로우가 도피의 뺨을 쓰다듬는다. 도피, 내일 둘 다 쉬는데 뭐할까. 글쎄, 케이크 만들까? 좋다, 애들 학교 다녀오면 간식으로 줘야겠어. 그리고 애들이랑 게임 내기 하자. 애들이 싫어할걸, 내가 다 이기니까. 로우의 말에 도피가 킥킥거리며 웃는다. 그러니까 봐주면서 하는거지. 져주는 건 싫은데, 난 승부사라고.

 



알았어, 알았어. 나머지는 내일 생각하고 이만 자자



 

그래. 도피가 고개를 숙여 로우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진 입술이 호선을 만든다.

 



잘자


당신도



 

좋은 꿈 꿔.



























*


완결이 났습니다.

이건 스토리성이 아니라서 완결느낌 안 났다가 완결이 됐네요.

따지고 보면 시즌 1 완결, 이런 느낌입니다만 

시즌 2는 계획을 아직 안 만들어서 어찌 될 지 모르겠습니다. 


슬슬 공부를 해야할 때가 되면서 장편이 부담스러워 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이제부터는 짧은 소설이나, 썰, 상중하 형태의 단편정도만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때까지 모자란 소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