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가버스 주의




*


로우가 이 성에 지내게 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벌써 만연한 가을이었고 안그래도 떠들썩한 마을은 더욱 더 떠들썩했다. 콜로세움 시즌이기도 했고. 그리고 그 사이 도피는 일이 생겼다며 지금 거의 3주가 다 되어가도록 밖에 나가 있었다. 도피는 20살이 되는 해에 로우를 자신을 항해에 참여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대신들의 반발은 로우의 말 한마디로 묵살되었다. '죽고싶지 않으면 닥쳐' 도피는 그런 로우의 모습에 기뻐한 것은 불보듯 뻔했다. 몇달새에 로우는 자신의 능력을 많이 향상 시켰고 왕궁의 정세까지 다 파악했다. 덕분에 도피가 성을 비우면 로우가 도피의 일을 맡았다. 도피는 무척 게을렀기에 일은 잔뜩 밀려있었고 로우는 도피가 오기 전까지 언제나 그 많은 일들을 척척 해내었다. 

"쉬었다해요"
"심심한데"

로우는 펜을 내려놓으며 자신의 옆에서 팔랑거리는 모네를 바라보았다. 몇주전 소수의 도피의 해적단 선원들이 상처를 입은채로 드레스로사에 돌아왔다. 모네도 그 중 하나였다. 자연계가 상처입는다면 얼마나 위험한 항해를 하는건지. 그 때 로우는 부상이 심했던 모네를 치료해주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치료후에 모네는 로우가 퍽 마음에 드는듯 자주 이야기를 걸어왔다. 지금도 한참 일을 하고 있던 중에 모네가 말을 건다.

"콜로세움이 보고싶은거군"

로우의 말에 모네가 웃는다. 로우가 남은 일의 양을 흘긋 보고는 몸을 일으킨다. 보러가도 상관없을듯해 외투를 챙겨든다. 모네는 옷을 보곤 또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검은 옷만 입는다는 말만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대충 무시하며 후드를 뒤집어쓰고 방문을 나선다. 콜로세움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곧 콜로세움 참가자를 마감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모네는 기분 좋은 듯 보였다.

"로우. 콜로세움에 참여해보는 게 어때요"
"그러다가 도피한테 혼날걸"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그녀를 로우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승상품이 뭔데? 모네가 우물쭈물하더니 대답을 한다. 검이요. 검? 자신은 메스라면 모를까 검에는 영 취미가 없었다. 물론 룸에서 검을 쓰면 절단이 더 쉽긴 하지만. 검에는 관심 없는데. 로우의 말에 울상이 된다. 왜. 사무라이들의 섬에서 훔쳐온거라는데 보고싶어서요. 분명 책에서 본적이 있었다. 다른 섬과의 교류를 하지않는 섬. 사무라이라는 전사들이 쇄국을 하고있는 나라던가. 거기서 만들어진 검이 그들의 주력이라는 소문이 있던 걸 기억했다. 하지만 쇄국정치로 인해 사무라이 외에는 쓸수도 없고 보기도 힘든 검. 해볼만하군. 로우는 뒤를 돌아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적는다. 자신의 이름을 적으면 신분을 들킬테니 잠시 고민하다가 이름을 적었다.

"하트. 하트 맞으신가요?"

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고보니 콜로세움이 열릴 때던가?"

베르고의 말에 도피가 바다 저 편을 바라본다. 어렴풋이 보이는 섬에 기분이 좋다. 로우가 보고싶기도 하고, 줄 것도 많지만 도피는 콜로세움으로 마음이 향했다. 로우에게는 조금 늦어도 괜찮겠지 싶어 도피는 배의 난간에 올라선다. 먼저가지. 베르고가 고개를 끄덕이자 도피가 도약을 한다. 이번 콜로세움의 상품은 사무라이 나라의 검이었다. 꽤 희귀한 것이니 많이들 달려들겠지. 

콜로세움에 도착해 왕의 자리를 찾아간다. 혹시나 로우가 있을까 기대도 해봤지만 없었다. 자리에 앉자 장내가 술렁인다. 사회자가 도피의 존재를 알린다. 도피는 손을 들어 흔들어주고는 시합을 지켜본다. 벌써 콜로세움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 저 챔피언은 이번에도 올라왔군. 도피가 기분좋게 웃는다. 결승에 단 둘이 남았을 때 도피는 작은 체구의 검은 후드에 흥미가 갔다. 꽤 강한가보군. 그와 덩치의 차이가 훨씬 많이 나는 상대방은 검은 후드를 얕보고 있었다. 한참 두 사람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다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도련님!"
"오. 상처는?"

모네가 기분좋게 웃는다. 상태를 보아하니 완쾌를 한 모양이었다. 역시 상당한 의술이군. 도피의 옆에 모네가 자리를 잡는다. 그러고보니 로우는? 도피의 질문에 모네가 당황한다. 시합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도피가 몸을 돌려 모네를 바라보았다. 로우의 안부를 물었을텐데. 그리고 그 순간 사회자의 흥분한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다리가 잘립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의문의 사나이 하트!!]

도피는 다시 시합에 고개를 돌린다. 실소가 나온다. 저건 분명히 룸이었고 거구의 남자는 오페오페열매의 능력으로 인해 사지가 따로 놀고있었다. 얼핏 본 검은 후드 안의 얼굴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내가 미친놈 하나를 거뒀군. 도피가 싱글벙글 웃으며 몸을 일으킨다. 승부는 결정났다. 

"국민들이여! 즐거웠나?"

관중석에서 열렬한 함성이 울린다. 도피는 난간에 올라선다. 시종 하나가 상품인 검을 들고온다. 저 키에 이 검은 많이 크지 않나.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이내 칼을 시합장의 검은 후드에게 던진다. 검은 후드는 검을 받는다. 표정이 말이 아니군. 도피는 특유의 웃음소리로 웃었다. 옆에 있는 모네의 표정 또한 말이 아니었다. 모네가 로우를 살살 구슬려 참여시킨게 틀림없군.

"그럼 모두에게 소개하지. 의문의 사나이 하트는 나의 반려인 트라팔가 로우다"

도피의 말 한마디에 콜로세움이 크게 술렁인다. 로우는 이마를 짚었다. 차라리 따로 불러내서 잔소리라도 할 것이지 이렇게 많은 대중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혀버리다니. 자신을 당혹스럽게 만드려는게 틀림없다. 로우는 후드를 벗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했다. 자신을 향한 환호성이 들린다. 로우는 함성을 뒤로 한 채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콜로세움을 빠져나와 성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이내 발자국 소리가 하나 더 들린다. 그리고 웃음소리까지.

"많이 컸군 로우"
"미안"

도피가 크게 웃으며 로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겼으니 됐어. 로우가 도피를 올려다본다. 키가 좀 큰 것 같은데. 도피는 다시 로우의 머리를 짚는다. 로우, 키가 몇이지? 191센치. 정말 컸군. 로우는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고 상품으로 받은 검을 훑어본다. 생각보다 검이 크지 않아 로우가 검을 꺼내 이리저리 살펴본다. 마음에 드나? 로우는 칼을 몇번 휘두르고는 어깨를 으쓱인다. 검에는 문외한이라서. 검을 다시 칼집에 넣어 어깨에 맨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는 로우의 뒷모습을 보며 도피는 로우에게 검술을 가르칠 사람을 가려내고 있었다.




*

"선물은 마음에 드나"

한참 쌓여있는 도피의 선물을 뒤적거리던 로우는 몸을 일으켰다. 도피의 모습을 보아하니 오늘은 저의 방에서 잘 것이 분명했다. 로우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다시 도피가 구해온 약초들을 훑어보았다. 그런 로우의 머리에 도피가 입을 맞춘다. 재회의 키스. 장난스러운 말투에 로우가 웃음을 터트린다. 도피가 로우를 안아들어 침대로 향한다. 이쯤하고 자. 로우를 눕히고 저도 침대에 눕는다.

"도피"

도피가 고개를 돌린다. 

"나 피어싱해도 되나"

도피는 훗훗거리면서 웃었다. 귀여운 꼬마. 도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우를 품에 안았다. 191이라면 키가 제법 큰데 워낙 거구의 도피라 그의 품에 알맞다. 간만에 맞는 기분 좋은 향에 코를 로우의 어깨에 묻는다. 가면 갈 수록 향이 짙어지는게 아마 올해 안에는 히트사이클이 시작될듯 했다.




*

항해의 결과물들을 정리하느라 수일만에 로우를 만났더니 귀에 링이 짤랑거린다. 호기롭게 두개씩이나 뚫었군. 저와 같은 모양의 링에 괜히 기분이 들뜬다. 로우는 막 검술훈련을 마치고 오는 길인듯 했다. 땀을 흘려서 그런지 로우의 향이 더 짙다. 몸을 살짝 숙여 깊에 숨을 들이쉰다.

"히트사이클은 안하나?"

도피의 질문에 로우가 뻣뻣하게 굳는다. 똑똑한 놈이 자신의 입지를 잊고있었군. 도피가 로우의 머리를 헤집는다. 너무 긴장하지마 부드럽게 해줄테니까. 놀리듯 얘기하자 금새 기분 상한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 이마에 짧게 키스를 하고는 걸음을 옮긴다. 로우는 도피의 뒷모습에 가운데 손가락을 올린다. 엿이나 먹어라 도피. 오늘 로우의 기분은 말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야한 꿈을 꿨고 속옷이 축축해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괜히 기분이 더러워 몸을 쓰는 훈련들을 몰아서 했었다. 그런데 도피까지 그런 말을 하니 정말 히트사이클이 시작되는가 싶었다. 로우는 머리는 좋았지만 아직은 어렸기에 겁이 났다.

"로우!"

한참 멍하게 복도에 서있던 로우를 모네가 부른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로우가 뒤를 돌아본다. 밖에 놀러가자. 모네는 기분 좋게 웃었다. 로우는 잠시 생각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전환 겸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나 가야겠다. 이제 검은 후드로도 위장이 안 될테니 선글라스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로우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나 샤워 끝나면 나가자.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