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 산짐승 수컷고등학교 역사와 전통이 오래 됌. 그래서 학생들도 무척 많음. 학교 들어올 수 있는 규정은 그냥 학교가 위치해있는 산에 사는 짐승이고 수컷이면 됌. 대신 육식동물들은 동급생을 잡아먹으면 안됌. 대부분 초식, 육식으로 학교가 나뉘어져있지만 여기는 워낙 척박한 시골이라 통합. 수컷이랑 암컷 나누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음. 암튼 그런 동네임. 짐승들 사이에서도 동성애는 있기 마련임. 근데 뭐 짐승이다보니 동성애 같은 거 신경안씀. 근데 대부분 같은 종끼리 사귀는데 이 학교는 좀 특이함. 다람쥐랑 늑대랑 사귀고, 여우랑 토끼가 사귀고 난리가 아님. 여기 학교에서 유명한 커플들이 꽤 있는데 제일 유명한건 다람쥐랑 늑대 커플임. 이유는 간단함.
"코우키. 장난친거야, 내려와도 돼"
"그걸 어떻게 믿어!"
둘이 사귀면서 다람쥐가 겁이 엄청 많음. 그래서 늑대가 배고프다의 배만 말해도 겁먹고 도망감. 처음에는 다람쥐가 사물함이나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늑대가 찾았는데 나중에는 얘도 지능있는지라 나무 위로 가서 숨음. 늑대는 애석하게도 나무를 못 탐. 그래서 닭 쫓는 개 마냥 나무 위만 쳐다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해짐.
"진짜야. 배고프다해도 내 살을 먹지, 넌 안 먹어"
그제서야 다람쥐가 내려옴. 근데 다람쥐가 겁이 많은 것도 있는데 이렇게 겁이 많은데에는 이유가 있음. 다람쥐가 내려오니까 늑대가 다람쥐를 껴안음. 갑자기 품에 안긴 다람쥐가 부끄러워서 어물어물 거리고 있는데 늑대가 기분나쁘게 웃음.
"드디어 잡아 먹을 수 있겠다"
"흐이이익!"
늑대가 장난기가 엄청 많음. 근데 장난을 장난같이 안해서 다람쥐가 더 무서워하는거. 다람쥐 반응보고 늑대가 웃음. 다람쥐는 장난인거 알면서도 초식동물의 본능 때문에 항상 덜덜 떰. 늑대가 다람쥐 놓아주고 손을 잡음.
"가자, 곧 수업시작하겠다"
"응"
눈이 번쩍 뜨였다. 어디선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꿈인듯해 다시 이불 안 깊숙한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꼼지락 거리며 자리를 잡다가 등에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벌떡 일어나서 이불을 걷어내자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자는 그 사람의 등이 보인다. 울컥 눈물이 나온다.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로 몸을 조금 숙여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힘의 작용으로 눈꼬리 달려있던 눈물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결국 그가 눈을 뜬다. 왜 울어, 울지마 응? 그의 말에 후리하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응, 얼른 그칠께.
온 방 안이 환할 때 다시 눈을 떴다. 다급하게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역시 그는 없었다. 몸을 일으켜 이불을 정리하고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다시 흠칫 놀란다. 거실에서 그가 티비를 보고있었다.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었다. 아픔이 뇌로 전해진다. 후리하타는 그가 앉아있는 소파옆에 조심스레 앉아 그를 흘긋 보았다. 그런 후리하타의 모습에 그가 크게 웃는다. 왜 그래 코우키. 그에 후리하타는 살풋 웃어보인다. 세이쥬로. 응?
"세이는 죽은거야?"
후리하타의 말에 그가 들고있던 리모컨을 내려놓는다. 오해하지 말아줘 너 따라온 거 아니야. 여전히 냉정하게 끊어말하는 그의 모습에 후리하타가 환하게 웃는다. 알아 자살이라면 여기 못 오잖아. 더군다나 여기는 병으로 제 명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세이, 아팠던거야?' 후리하타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후리하타가 그를 덥석 끌어안는다. '왜 어디가 아팠던거야'
아카시는 저보다 훨씬 먼저 아팠던 그를 떠올렸다. 둘은 어짜피 병원에서 만났던 사이였다. 그는 입원, 저는 통원치료. 그에게는 언제나 아는 사람 문병오는거라 거짓말 했지만 결국 지병으로 이렇게 되었다. 힘들기는 그가 더 힘들었을텐데.
"여긴 코우키 집이야?"
"응 열심히 일해서 산 집이야"
"나도 열심히 일해야겠네"
두사람이 마주보고 푸스스 웃는다. 후리하타가 아카시의 손을 꼭 쥔다. 밥먹고 이따가 여기 구경 시켜줄께. 여기는 아이들이 사는 마을 다음으로 예뻐. 아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모르겠다. 한숨밖에 안나온다. 제 눈높이에서 왔다갔다 거리는 하이힐을 보면서 또 한숨을 쉰다. 그리고 옆에서 잔뜩 눈을 빛내며 바텐더를 보고있는 키세를 바라보았다. 개새끼. 평소에 하지 않는 욕이 다 나온다. 게이바라니 다시 한숨만 나온다. 물론 이 나이까지 연애 한번 하지않아 성 정체성을 고민한 적은 있다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런 바에서 정체성을 깨닫는 건 싫다. 한숨을 푹푹 쉬면서 술을 털어 마셨다. 결국 키세는 자리를 비웠다. 보나마나 바텐더에게 작업을 걸러 갔을 터. 또 한숨. 트랜스젠더들의 공연이 끝나더니 갑자기 환호성이 들린다. 얼핏 주변의 말소리를 주워들으니 이 바의 명물인 봉춤을 하는가보다. 물론 남자가 하는 봉춤.
심드렁하게 무대를 바라보았다. 조명이 켜지고 댄서들이 첫 동작인듯 봉에 다리를 감는다. 제일 정면에 있는 갈색머리 남자의 다리를 보고 있다가 그 다리가 봉에 감기는 순간 나는 머리에서 종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 무슨 남자가 저리 관능적인지. 넋을 놓고 남자를 바라보다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 나의 번호를 적었다. 노래가 시작되고 남자가 다가오자 난 떨리는 손으로 그의 짧은 바지에 수표를 꽂아넣었다. 남자는 무대중앙으로 돌아가며 나에게 입을 벙긋거리는 것 같았다만, 술도 마신데다 멀리 있어서 제대로 보지못했다. 무슨 말이었을까. 혹시나 다시 말을 걸어줄까 싶어 잔뜩 긴장하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미스터 아카시, 곧 비행기 시간 아님까"
장난스럽게 물어오는 키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조금 여유롭긴 하지만 술도 조금이나마 마셨으니 지금 일어나는 게 좋을 듯 했다. 의자에 걸쳐두었던 자켓을 집어들었다. 나가기 전 무대위의 그 남자를 꼼꼼히 봐두고, 작업에 성공한건지 싱글벙글한 키세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올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