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가버스 주의




*


도피는 지금 무척 긴장되어 있었다. 문득 난 왕인데 왜 이렇게 신경을 써야하지 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사실 저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무리하게 항해를 바꾸다가 조무래기 해적 하나랑 시비가 붙었다. 빠르게 처리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상처가 꽤 많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군으로 겨우 드레스로사에 도착했다. 피투성이라는 걸 인식 못하고 있다가 목적지인 방문 앞에 도착해서야 자신의 행색을 보았다. 말이 아니군. 잠시 씻고올까 고민을 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문이 열리고 로우가 보인다.

"로우!"

로우를 본 도피의 표정은 기뻐보였다. 물론 도피를 본 로우의 표정은 말이 아니었지만.




*

"지금 삐져있는거지?"
"아니"
"삐져있잖아"

이녀석의 입을 찢어버릴까말까 고민하던 중 그의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입을 다문다. 베이비5. 응? 로우가 몸을 돌려 베이비5와 마주본다. 가라앉은 로우의 분위기에 그녀가 잔뜩 긴장한다. 로우가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선물내놔"
"난 거지라서..."
"그렇다면 나에게 침묵이나 사라짐 둘 중 하나를 선물로 줬으면 하는데"

로우의 말이 끝나자 그녀가 풀죽어선 나간다. 이제 좀 조용해지겠네 싶어 다시 책상의 서류들에 눈을 고정시킨다. 이번에는 빨리 다녀온다고 떠난 도피는 오늘로 11일째 성을 비운 상태였다. 일주일 좀 안 될거라더니. 로우는 펜을 내려놓았다. 일에 집중이 안된다. 책장에서 아무 책 하나를 꺼내어 소파에 앉는다. 오메가와 출산.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집어 던졌다. 씩씩거리며 머리를 쥐어 뜯던 로우가 이내 몸을 늘어트린다. 얼마전부터 자신을 괴롭히는 이 감정만 아니면 이런 기분도 못 느낄거였다. 그래 자신은 한번도 말한적 없고 언질 조차 안 줬으니. 실제로 별로 신경쓰지 않았기도 하고.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로우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그렇다. 오늘은 로우의 생일이었다. 그를 축하해주러 온 베라미는 무언가 잔뜩 가져왔지만 로우는 오직 베라미의 목을 잘라버릴까 말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치졸한 분노에 지쳐 이마를 감쌌다. 로우가 앉은 소파 옆에 베라미가 가져온 것들이 쏟아진다. 뭐야? 베라미는 조금 들뜬 표정으로 '선물이요!'라고 말한다. 기분이 정말 말이 아니었지만 로우는 최대한 상냥하게 웃으며 성의를 표했다. 고마워. 그에 베라미가 기쁜듯 방을 나간다. 쌓여있는 선물들을 봐도 별 감흥이 없다. 누굴 여자로보나. 치장품이 몇개 섞여있는걸 보니 기분이 안 좋아진다. 선물더미에 엎어져 멍하게 있는데 다시 베라미가 들어온다.

"로우님, 이건 베르고님이 맡기고 간 생일선물입니다"

어 고마워, 소파에 둬. 건성건성으로 내뱉고 눈에 보이는 책을 집어들었다. 연애소설이라니. 생각해보니 베르고도 자신의 생일을 알고있다. 그런데 도피는... 책을 찢어버릴까 고민 중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베라미는 나간지 오랜데. 다시 들리는 부스럭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소파 위에 베르고의 선물은 철창안에 앉아있었다. 북금곰 새끼? 로우가 소파로 다가가자 중형견만한 새끼곰이 잔뜩 경계한다. 철창을 열고 새끼곰을 안아들자 새끼곰이 발버둥치며 로우를 할퀸다. 상처에도 아랑곳않고 로우가 새끼곰을 바라본다.

"너 귀엽군"

로우가 기분좋게 웃자 잔뜩 성나보이던 새끼곰의 움직임이 잦아든다. 오 착해착해. 로우가 쓰다듬자 경계가 풀렸는지 사나운 인상도 풀린다. 역시 그 선글라스 수염쟁이 아저씨는 별로지? 로우의 말에 새끼곰이 '아이아이'하며 대답한다. 특이한 울음소리 또한 마음에 든다. 새끼곰을 안아들고 소파에 앉았다. 새끼곰은 자신이 낸 상처를 핥고있었다. 

"난 의사니까 이건 혼자 치료할 수 있어"

새끼곰이 고개를 들어 로우를 바라본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귀여운 걸 좋아하던 로우인지라 그 울망한 눈에 기분이 좋아진다. 귀여워 귀여워. 새끼곰이 로우의 품 속으로 파고든다. 이 귀여운 녀석을 부를 이름이 필요한 것 같아 로우가 머리를 굴린다. 어렸을 때 봤던 동화 주인공인 곰의 이름을 떠올렸다. 이름이 베..고였나.

"베포!"

갑작스러운 탄성에 새끼곰이 움찔한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베포야 베포. 로우가 새끼곰을 들어올려 말하자 새끼곰이 눈을 깜빡인다. '아이' 곰의 울음소리에 로우가 다시 또박또박 발음한다. '베.포' 그러더니 새끼곰이 웃는다. 

"베포!"

순간 깜짝놀라 베포를 떨어뜨릴뻔했다. 말을 할 줄 안다니. 로우는 베포가 있던 철창을 뒤졌다. 작은 쪽지가 붙어있는 걸 당장 떼어 읽었다.


[사람사람열매를 먹은 곰임. 언어능력은 아직 아기]


다시 베포를 바라보았다. 베포는 엉성하게 두발로 걸어다니고 있었다. 바로 넘어졌지만. 걸음마를 가르쳐야겠군. 자신이 읽었던 육아에 대한 책을 떠올리며 푹신한 러그에 베포를 데려갔다. 자 베포 걸음마 해보자. 앞발을 들어올리자 베포가 아장아장 걷는다. 손을 놓자 기우뚱거린다. 다시 앞발을 잡아주고 걸음마를 시킨다. 몇번하다보니 두발로 걷는 시간이 늘어난다. 베포는 똑똑하구나. 로우가 머리를 쓰다듬자 베포가 웃는다.

"아이아이"



*

"캡틴"
"옳지 잘한다"
"로우는 캡틴?"

베포의 말에 로우가 웃는다. 아니야 아니야. 베포는 생각보다 배우는게 빨라 이제 간단한 책까지 읽는다. 로우는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보고있는 베포를 바라보았다. 열심히 책을 읽다말고 베포가 고개를 들어 로우를 바라본다.

"나는 무리에서 쫓겨났어!"
"왜?"
"몰라. 나 이거 할래. 로우가 캡틴! 내가 어.. 선원!"

베포가 해적단이라는 단어를 가리키며 말한다. 로우가 베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그래. 

"그러고보니 베포 방이 필요하겠네"
"아이?"
"구하러가볼까?"

로우가 베포를 안아든다. 인간이 쓰는 방은 너무 크고 자신의 방에 가까워야하니 방 가까이 있는 창고용 방으로 갔다. 애초에 로우의 짐이랄 것이 없는지라 작은 방은 텅 비어있았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치워내고 담요와 러그 정도만 있으면 잘만할듯했다. 시종을 불러 방의 청소를 명령하고 정원으로 나간다. 베포를 내려주자 신기한지 여기저기 뛰어다며 구경한다. 한참후에 조그마한 털뭉치가 로우 앞으로 나타난다. 흙 묻었네. 아이? 베포를 들어올려 다시 방으로 향한다. 씻고 옷 사러가자. 




*

시장에 갔다가 주황색 점프수트가 마음에 든다며 조르는 베포에게 옷을 사주고 먹을거 몇개 쥐어주자 피곤하다고 칭얼거린다. 성으로 돌아와 정리된 방에서 베포를 재우고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자 방이 휑하다. 외출한 사이 어질러져있던 선물들도 다 정리되어있다. 책장에서 육아에 관련된 책을 꺼내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지금 베포는 다섯살정도의 어린아이와 지능이 같다. 하루만에 다섯살이니 내일이면 열살이 될까. 오전에 기분나빴던 일은 베포 덕분에 많이 누그러졌다. 다음에 베르고를 만나면 한번쯤은 '씨'를 붙여줘야겠군. 한참 책을 읽고 있을쯤 방문에 기척이 느껴진다. 혹시 베포인가싶어 얼른 책을 두고 문을 열었다.



*


"로우!"

매우 기쁜듯 자신을 부르는 도피의 모습은 반갑기 이전에 경악스러웠다. 피투성이에 드문드문 보이는 상처라니. 당장 도피를 끌어와 욕실로 집어넣었다. 피나 씻어, 옷 준비해올께. 도피의 대답은 듣지않고 도피의 방으로 향했다. 그가 자주 입는 옷을 챙겨 방으로 돌아와 문 앞에 놓는다. 치료를 위해 약이나 붕대들을 꺼내고 있을 쯤 도피가 나온다. 도피가 소파에 앉아 방금전까지 로우가 읽었던듯한 책을 집었다. 육아? 

"로우 임신했나?"
"무슨 소리야"

로우가 도피의 상의를 벗긴다. 그리고 약을 꺼내 상처부위들을 치료한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있던 도피가 집중하고 있는 로우의 귓가에 입을 맞춘다. 깜짝 놀란 로우의 표정을 보자 크게 웃는다.

"생일 축하한다 로우"
"아"
"선물은 뭘 사야할지 몰라서"
"괜찮아"

로우가 다시 상처를 치료한다. 아까와는 다르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정도 치료를 하고 실로 꿰맨 후 붕대를 감는다. 치료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도피가 로우에게 책을 들이댄다.

"임신도 안 했으면서 왜 이런 책을 읽는거지?"
"애가 생겨서"
"지금 나랑 장난하나?"
"새끼곰을 선물로 받았어. 악마의 열매를 먹은. 사람사람 열매라던데"

로우가 심드렁하게 말하며 도피의 손에서 책을 빼내어 책상에 올려둔다. 로우의 말에 도피가 허탈하게 웃으며 일어난다. 한동안 내 품이 그리웠을테니 같이 자볼까? 도피의 말에 로우가 코웃음친다. 그건 당신 얘기겠지. 아무렴. 도피가 로우의 침대에 누워 옆자리를 툭툭 친다. 로우도 대충 약품들을 정리해놓고 침대에 눕는다. 임신 안했으니 오늘 어때. 스멀스멀 옷 안으로 들어오는 손을 로우가 쳐낸다. 다쳤으면 곱게 잠이나 자. 훗훗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로우가 등을 돌려 눈을 감자 도피가 로우를 껴안는다.

"내일이나 내일모레쯤 온천섬에 놀러가자, 선물도 그 때 사줄께"

로우가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좀 더 웅크린다. 도피의 고른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로우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피가 잔다고 느껴질때쯤 몸을 틀어 다시 도피를 바라본다. 도피 자? 물음에 대답이 없자 손을 들어 도피의 얼굴을 조목조목 만진다. 입술을 쓰다듬다가 이내 손을 뗀다.

"마음도 없으면서 그런 말들은 왜 뱉어내는지"

로우는 한숨을 내쉬곤 이불에 몸을 파묻었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