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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하타는 발걸음이 급했다. '보고싶다'라는 감정보다는 '불안하다'라는 감정이 그 이유였다. 꽤 장기출장이었다. 아이가 있었기에 출장기간을 줄여달라고 사정을 해보았지만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3주. 절대로 짧지 않은 그 기간동안 자신의 남편인 아카시와 아이가 잘 지낼지 의문이었다. 아카시는 거의 육아에 간섭하지 않았다. 혹시나 자신이 아이를 다치게 할까봐가 그 이유였다. 후리하타는 공감했다. 20년동안 아카시의 삶은 힘으로 억누르고 지배하는 것뿐이었으니까. 후리하타는 두사람이 모두 걱정이 되어 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일을 한 결과, 예정보다 이틀 빨리 도쿄로 올라올 수 있었다. 마음이 급해 아카시에게 연락하지 않은 게 걸리지만 그래도 이미 자신은 집 앞에 와 있었다. 오토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현관에 놓여진 신발 두짝이 보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텐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아 의아한 마음으로 집 안으로 발을 들인다. 안방에 들어가자 커다란 침대에 아카시와 아이가 자고있었다. 생각보다 잘 지냈던 것 같은 모습에 후리하타는 안심한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아이가 잠에서 깬다.


"엄마!"


어린아이의 높은 톤의 목소리와 함께 아이가 품에 뛰어들듯이 안긴다. 후리하타가 아이의 뺨에 뽀뽀를 한다. '마사키 잘 지냈어요?' 아이가 방긋방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생긴 건 머리부터 발 끝까지 아카시를 닮았는데 성격은 그 어디에도 아카시를 닮은 흔적이 없다. 성격만보면 후리하타를 빼다박은 아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의 오드아이를 바라보면서 후리하타가 웃는다.


"...왔어?"


아이의 호들갑에 잠에서 깼는지 아카시가 몸을 일으킨다. '일찍 왔네' 그의 말에 후리하타가 고개를 끄덕인다. '두사람 다 보고싶어서' 아카시가 작게 웃더니 후리하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침대에서 일어나 아이를 안아든다. '마사키 낮잠자고 뭐하기로 했죠?' 아이가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더니 울상을 한다. '유치원 숙제요' 아카시가 그런 아이를 보며 웃는다. '빨리 끝내면 아빠가 동화책 읽어줄께요' 그 한마디에 아이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펴진다. 예상보다 훨씬 아이를 잘 다루는 모습에 후리하타가 멍하게 거실로 나가는 두사람을 바라본다. 


아이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지를 않는다. 열린 방문으로 아이가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끙끙거리며 숙제를 하는 모습이 보이자 후리하타가 작게 웃는다.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카시의 옆에 앉자 아카시가 책을 덮는다.


"세이, 육아에 재능이 있는데?"

"나도 깜짝 놀랐어"


그의 은근한 자만에 후리하타가 웃는다. 아카시도 민망한듯 웃다가 후리하타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보고싶었어' 후리하타도 간만의 아카시를 느끼려는듯 그의 뺨을 쓰다듬는다. '일찍 오려고 진짜 열심히 일했다니까' 후리하타의 투정에 아카시가 여전한 웃음으로 후리하타의 손을 잡아 쥔다. 


"관둬. 나 하나로 두사람 먹여 살릴 수 있어"

"돈 문제가 아니야. 집에만 있는건 적성에 안 맞아"


아카시는 후리하타의 고집을 알아 고개를 끄덕인다. '아, 곧 애 소풍이래' 후리하타가 거실에 있는 달력을 바라본다. 아이가 크레파스로 붉게 칠해놓은 숫자가 보인다. '육아에 소질있는 세이쥬로씨, 소풍 만들기에 도전해보는 건 어때?' 아카시가 고민하는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연다. '그럴까?'


"으엑? 진짜?"

"아빠 숙제 다 했어요!"


어느새 숙제를 다 했는지 아이가 동화책 하나를 아카시의 앞에서 흔들어보인다. 아카시가 아이를 안아들어 무릎에 앉힌다. 동화책을 펼쳐들어 조곤조곤 내용을 읽어준다. 별로 내용이 길지 않아 동화책 읽기가 금방 끝난다. 아이는 동화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었던듯 동화책의 그림을 꼼꼼이 훑어본다.


"마사키"

"네!"

"마사키는 소풍 때 도시락 아빠가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님 엄마가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카시의 돌발질문에 아이가 아카시와 후리하타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후리하타는 은근히 기대하는듯한 아카시의 표정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찾는다. 아이는 고민하는듯 하더니 이내 해맑게 웃는다.


"역시 요리는 엄마가 나은 것 같아요!"

"윽"


후리하타는 순수한 얼굴로 아카시에게 상처 주는 아이를 안아들었다. '역시 마사키는 엄마가 해주는 밥이 맛있지요?' 아이는 또 잠깐 고민하더니 후리하타를 바라본다. '엄마랑 아빠가 같이 만들어주면 더 맛있을거 같아요' 후리하타는 잔망스러운 자신의 아이를 폭 껴안았다. 


"우리 마사키는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쁠까!"

"아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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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주말에 세사람은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아카시는 소파에 앉아있었고, 후리하타는 그런 아카시의 다리를 베고 누워있었으며 그런 후리하타의 위에는 마사키가 엎드려 누워 티비를 보고있었다. 티비에서는 한참 남극의 펭귄들에 대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지금은 눈보라가 치는 겨울에 수컷 펭귄들이 알을 품고 암컷을 기다리는 장면을 보여주며 나레이션이 펭귄들의 짝짓기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티비를 보더니 꼬물거리며 기어올라와 후리하타와 눈을 맞춘다.


"엄마, 애기는 어떻게 하면 생겨요? 저렇게 알에서 태어나요?"


아이의 질문에 후리하타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게, 그러니까... 아빠가 말해줄거야' 후리하타의 말에 아카시의 표정이 당혹감에 물든다. 아카시가 아이를 안아들고는 후리하타에게 작게 속삭인다. '그걸 왜 나한테 떠넘겨', '그야 세이가 나보다 머리가 좋잖아' 결국 아카시가 한숨을 쉬고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의 눈은 호기심에 반짝이고 있었다.


"엄마랑 아빠가 사랑을 나누면 생겨요"

"어떻게 나눠요?"

"그건 모두 달라서 다 비밀로 하고 있어요. 우리 마사키도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거에요. 그래도 우리 마사키가 유치원도 잘 다니고, 나중에 초등학교랑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잘 다니면 아빠가 비밀이니만 몰래 말해줄께요"

"네!"


후리하타는 아카시의 화려한 언변에 입을 벌렸다. 봐봐, 넌 천재라니까. 아카시는 한 고비 넘긴 것에 안심하고는 아이를 내려놓는다. '펭귄 질리지 않아요?' 그 질문에 아이가 입술을 벙긋거린다. 질리는가보군. '마사키 혹시 하고 싶은거 있어요?' 아이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듯이 큰 목소리로 '히카루랑 코우타랑 세이타로랑 요시키, 아츠야랑 놀래요! 세이타로가 놀고싶으면 놀이터로 와랬어요!' 아카시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 지기 전까지는 와야돼요'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현관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직 키가 작아 현관문을 못 여는 걸 기억해낸 후리하타가 몸을 일으킨다. '엄마가 문 열어줄께' 아이가 나가고 난 뒤에 후리하타가 다시 아카시의 옆에 앉는다.


"우와 세이는 정말 대단해.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해?"

"몰라. 그것보다"


응? 후리하타가 고개를 돌려 아카시를 바라본다. 음흉하게 미소 짓는 아카시가 보여 후리하타가 당황한다. 아카시가 손을 뻗어 후리하타의 목덜미를 잡는다.


"마사키 덕분에 사랑을 나누고 싶어졌어"

"에엑?"

"코우키, 둘째는 널 닮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