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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소리가 날 법도 한데 푹신한 바닥의 재질에 그 마저도 사라져버린다. 지독한 정적에 절로 인상이 써진다. 앞선 사람의 등을 보며 걷고 걷고 계속 걷는다. 어디까지 가는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죄다 톤다운된 단편적인 색깔의 구조물. 기분이 가라앉는듯해 다시 시선을 정면에 둔다. 앞서 가던 사람이 어느 문 앞에 서더니 손짓을 한다. '다왔습니다'같은 의례적인 말도 할 법한데 그 마저도 없다. 문을 열자 그 안에는 미리 와 있던 나의 연인이 앉아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얽히는 시선에 참을 수 앖는 갈증이 일어 급하게 발을 옮겨 입술을 찾는다. 물기에 젖은 입술을 내 입에 담는다. 그 청량함으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입 안 곳곳을 훑는다. 깊이 더 깊이. 매워지지 않는 욕구로 나는 더욱 더 매달린다. 어린아이가 칭얼거리는듯한 키스를 받아주던 그가 부드럽게 나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제서야 나는 입술을 뗀다.


"오늘따라 급하네. 앉아. 너가 좋아하는 와인 주문해놨어"


그는 태연하게 손짓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권한다. 그가 손짓한 곳에 앉자 그가 와인을 잔에 따라 건넨다. 나는 그 쓰디 쓴 와인을 혀에 굴린다. 그의 표정은 평화롭다. 턱을 괴고서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는 다 알고있다, 알고있음에도 내색하지 않는다. 술을 몇모금 마시고 이번에는 부드럽게 그와 입술을 맞댄다.


"사랑해, 사랑해 코우키"

"응, 나도"


술자리는 일찍 파했다. 애초에 우리 둘에게 술은 맞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만나왔고 술보다는 농구와 대화로 친해졌던 사이였다. 오히려 우리 둘 사이에 술이 있다는 것이 더 어색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조금 걷다가 사람이 없는 한적한 주택가로 들어서자 손을 잡고 걸었다. 익숙한 걸음걸이로 익숙한 목적지에 간다. 자그마한 단층 주택의 문을 연다. 그의 집, 그의 현관에 들어서서 신발을 벗자마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입을 맞추고 서로를 찾는다. 열 띤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긴다. 침대에서 진득하게 몸을 섞으면서 우리는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낸다. 흡사 짐승의 소리와도 같은 그 것은 매우 애달퍼 나는 서러워졌다.


"왜 울고 그래"

"흑... 윽, 읍.. 흐으..."


뜨거운 그의 가슴에 고개를 묻고 차가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여전한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거짓말 같은 '괜찮아'라는 주문을 끊임없이, 쉴새없이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지 않아, 괜찮아, 괜찮아.




날씨는 기분나쁘도록 맑았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날씨가 맑다며 좋아했다. 눈 앞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위로 올려세운 붉은 앞머리를 살짝 매만졌다. 왁스로 굳어져 있어 딱딱한 질감이 손 끝에 닿는다. 넥타이가 조금 갑갑한듯해 티나지않게 살짝 풀었다. 식 전에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에 대기실은 한산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품 안의 네모난 상자를 만지작 거린다. 꺼내어 열어보니 다이아가 박힌 반지가 반짝인다. 이걸 왼손 네번째 손가락에 낄 여자의 얼굴을 떠올려보다가 이내 관둔다.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여자와는 손에 꼽을 만큼 밥을 먹은게 다였다. 그녀는 악착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나의 애원에도 그녀는 끝내 여기까지 왔다. 한숨을 쉬고 품 안에 반지 케이스를 넣는다.


"아카시님, 시간 됐습니다"


식은 지루했다. 주례의 앞에서 그녀와 마주봤을때야 나는 그녀의 얼굴이 기억났다. 눈 앞에 두고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웃기지만 화장을 한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예쁜가?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 아이는 가질 수 있을까. 나는 그녀에게 흥분이라는 걸 할수나 있을까. 주례의 명령에 품 속의 반지를 꺼내어 끼워준다. 키스같은 행위는 하지 않았다. 의례적인 질문과 상투적인 대답만 오고 갔다. 나는 몇번이나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식이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는 모습에 체념하고 만다. 그래, 여기에 와봤자 그에게 상처만 될 뿐이었다. 식이 끝나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무료한 시선을 정면에 두는데 그가 보인다. 그다. 그가, 그의 모습이 식장 입구에 어른거린다. 나의 발은 뇌를 통하지도 않고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세이쥬로!"


혹시나 환영일까. 놓치고 싶지 않아 손을 뻗어 그를 꽉 껴안았다. 품에 감기는 온기가 진짜라고 말해준다. 아아, 내 사랑, 나의 심장, 나의 목숨. 나는 더욱 더 깊게 그를 끌어안았다. 식장의 술렁임은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느때와 다름없던 그의 손길이 이번에는 나를 밀어낸다.


"곤란하게 만들지 말아줘"


나는 무너져내렸다. 무릎을 꿇고 그에게 사랑을 구걸하고만 싶었다. 쓰게 웃는 그의 미소에서 나만큼의, 아니 나보다도 더한 고통과 슬픔이 느껴졌다. 내가 보듬어주고 싶었다. 내가 어루만져주고 싶어. 하지만 곤란하게 만들지 말아달라던 그의 목소리에 나는 그저 울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를 향해 뻗고 싶은 손으로 바지자락을 꽉 쥐었다. 무너져내려 오열하는 나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그는 다정한 미소와 손길로 나를 어루만졌다. 나는 이별을 직감했다.


"코우키... 코우키.. 나는...."

"응, 알아"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발길을 돌린다. 


'안녕, 세이쥬로'


안녕. 내 사랑, 나의 심장, 나의 목숨.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