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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가운데 젓가락 소리만이 들린다. 하나 남은 비엔나 소시지에 젓가락 두쌍이 꽂힌다. 쿠로콧치라 해도 못 넘겨드림다. 키세군, 살 찌니까 그만 드세요. 너무햇! 두사람의 반찬 쟁탈전을 보던 미도리마가 한숨을 쉰다. 이제 젓가락 싸움으로 변질된 쟁탈전에 신경도 쓰고 있지 않던 것 같은 아카시가 교묘하게 비엔나를 낚아채 입에 넣는다.



"아카싯치!"

"치사합니다"

"그럼 다음부터는 사이 좋게 반으로 나눠먹도록 해"



식사를 마친 아카시가 개수대에 빈그릇을 넣고 기지개를 킨다. 미도리마는 울상이 된 두사람에게 다른 반찬도 먹으라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오늘부터 개강이었다. 새학기라고 들뜬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 것은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의 기운으로 금방 수그러들었다. 나무들은 이제서야 새순이 돋기 시작했고 풀들은 새끼손톱만한 푸른잎을 겨우 틔우고 있었다. 수강신청은 바라던 강의에는 다 들어갔지만 역시나 후리하타와 겹치는 강의는 몇개 없었다. 같이 듣는 강의 중 두개는 이노우에도 같이 듣는 수업이었고.



"아카시. 후리하타와 같이 가는건가?"

"아니. 오늘부터 아침은 혼자"

"왠일임까 아카싯치! 차였슴까?"



아얏! 왜 때리는검까! 할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동의합니다. 너무햇! 아카시는 아침부터 기운 넘치는 세사람을 무시하고 부엌을 나와 세면실로 들어갔다. 색깔별로 있는 칫솔. 후리하타는 이 칫솔색깔들을 보며 신호등이라며 웃었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미소가 지어진다. 신호등. 나는 빨간색이니까 정지신호. 멈추라는건가. 뭘? 마음?



"하아"



괜한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아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빨간색 칫솔을 꺼내들어 치약을 짜낸다. 입에 넣고 몇번 문지르자 금방 거품이 일어난다. 그러고보니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거품이 되어 죽었지. 나도 사랑 때문에 거품이 되어 사라질까. 아카시는 입 안 가득 찬 거품을 뱉었다. 그리고 디즈니에서 해주었던 인어공주를 떠올렸다. 거기 인어공주는 행복해졌나? 결말이 기억이 나지 않아 생각하기를 관둔다. 어째됐건 내 얘기는 아니니까.







혼자서 하는 등교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어색하거나 후리하타가 계속 떠오를거라 생각했던 아카시의 우려와는 다르게 말이다. 미리 체크해둔 강의실에 들어가서 앉자 익숙한 얼굴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그 중 몇몇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후리하타와 같은 강의들은 거의 다 오전 끄트머리나 오후에 있었다. 후리하타는 월요일은 1교시 수업이 없다했으니 아마 자고있겠지. 문자라도 보내볼까 고민하던 중에 인기척이 들린다. 옆을 돌아보자 역시나 익숙한 얼굴이다.



"너가 이거 들으면 힘들텐데"

"수강신청 실패해서 그런거야"



이 과목은 미도리마의 고생으로 겨우 체육교육과에 합격한 바보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것이 아니었다. 미도리마 다음의 희생양은 나인가. 아카사의 걱정을 눈치 챈 아오미네가 인상을 쓴다. 열심히 할거야! 그래. 그러고보니 후리는? 전공 때문에 갈라졌지. 아오미네는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칠판을 바라본다.



"야 그래도 좀 도와주라"

"하는 거 봐서"







'너 없이 학교 가는 거 어색하더라' 문자 하나에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나온다. 과실에 앉아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자 후배들 몇몇이 기웃거린다. 아카시는 과내에서도 다가가기 힘든 사람으로 꼽혔다. 항상 후리하타와 다니는게 이유이기도 했지만 성적은 상위권, 완벽주의자, 맺고 끊음이 확실한 성격, 이성적인 사고 지향 같은 점 또한 이유로 꼽혔다. 잘 사는 집 아들이라는 소문 또한 돌았었고.



"선배님, 여자친구에요?"

"아니. 왜?"

"기분좋게 웃으시길래요"



아카시가 부드럽게 웃어보인다. 그래? 기분이 좋긴 해. 다가가기 힘든 사람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친해지고 싶은 사람으로도 꼽히는 게 아카시였다. 아카시는 별로 관심없어해 몰랐지만 후리하타는 아카시의 인기가 많은 것을 내심 부러워 했었다. 후리하타가 '아카시는 인기많아서 좋겠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면 아카시는 그렇지않다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카시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선을 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반반한 외모에, 신비주의 분위기, 매너남. 아카시는 꽤 많은 여학생들의 이상형으로 꼽혔다.



"세이! 오래 기다렸어?"

"별로. 밥 먹으러 가자"



아, 이노우에랑 같이 먹어도 돼? 다음 강의 같이 듣잖아. 아카시는 가방을 집어들다 말고 후리하타의 옆에 있는 이노우에를 쳐다보았다. 안녕. 조금은 수줍은듯한 인사를 아카시는 고개만 끄덕이며 받아주었다. 두사람은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후리하타 조차 작년 여름까지는 그냥 동기 여자애 정도의 사이로만 알고지냈으니까. 후리하타는 친해졌어도 아카시는 여전히 이노우에와 그정도 사이였다. 후리하타와 이노우에가 친해진 작년 여름의 폐강파티에 아카시는 없었으니까.



"뭐 먹을래?"

"탕두부 먹고싶다"

"그건 교토 가야 되는거잖아"



주말에 교토갈래? 탕두부 사줄께. 후리하타가 웃는다. 다음에 벛꽃 피면 가자. 너네집 꽃나무 구경도 할겸. 아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향집의 마당에 있는 커다란 벛꽃나무에서 꽃잎이 눈이 내리듯 떨어지는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부푼다.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네.



"이노우에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카레 먹고싶은데"

"어?"



후리하타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드러난다. 아카시는 짧게 숨을 내뱉고는 가방을 맸다. 나 혼자 알아서 먹을테니까 둘이 카레 먹어. 이노우에가 후리하타와 아카시 두사람의 반응을 보더니 당황한다. 왜?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건지 불안해하며 아카시를 바라본다. 아카시는 이노우에의 시선을 무시했다. 이유따위 알려주고싶지 않다.



"세이는 카레 안 좋아해"

"그럼 다른 거 먹을께! 돈까스 어때?"

"그것도 안 좋아하는데..."



이노우에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하자 후리하타가 급하게 말을 꺼낸다. 돈까스덮밥은 어때? 이노우에가 고개를 젓는다. 덮밥은 별로. 이쯤되자 아카시는 짜증이 치솟았다. 어떻게든 같이 먹으려고 하는 이노우에가 거슬려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카시를 슬쩍 보던 후리하타가 당황해서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귀에 입을 바짝 붙인다.



"지금 눈동자 색깔 변했어"



아카시가 손을 들어 왼쪽 눈가를 만지작거린다. 눈을 감고 숨을 몇번 골랐다가 다시 뜬다. 됐어? 후리하타가 아카시의 왼쪽 눈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연한 핑크색이야. 그래서야 왼쪽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어낸다. 어지간히 짜증이 났었나보다. 아카시는 몸을 돌려 과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둘이서 먹어. 아무래도 취향이 안 맞는 것 같으니까"



돌아올 대답은 듣고 싶지 않아 제 할 말만 하고 과실을 나선다. 어렴풋이 등 뒤로 '나 때문에 화난거야?'라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내가 저런 계집애보다 훨씬 나은데 성별이 같다는 걸로 모든걸 부정 당하다니. 아카시는 다시 화가 치솟는 것 같아 고개를 휘저었다. 기억할 수 없이 어렸을 때부터 감정이 격해지면 왼쪽 눈의 색깔이 옅어지다가 노란색이 되었다. 눈동자의 색이 바뀌면 극단적인 성격으로 변해버려 주변에서 당황하곤 했었다. 그 때마다 아카시의 제동장치가 되어준 건 후리하타였다. 멍하게 건물을 나서는데 자켓 주머니의 핸드폰이 울린다. 후리하타인가 싶어 액정을 확인하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다.



"뭐야"

-지금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른 튀어오세여.

"왜"

-점심 사려는검다.







정문으로 나가자 키세의 차가 보인다. 다가가서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탄다. 역시 후리하탓치 없네여. 아카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키세가 아카시의 어깨를 툭 친다.



"도쿄에 꽤 괜찮은 탕두부 집 알아냈슴다"

"그거 때문에 부른건가?"

"당연하져! 아카싯치한테 합격점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슴다!"

"그래"



아카시가 입꼬리를 올려 웃자 키세 또한 웃는다. 뭐, 차인 두사람끼리 위로파티라도 합시다. 아카시의 눈이 커진다. 차였다니? 뭐, 결국 모델남친이 필요해서 사겼다는거져. 아카싯치 남은 강의 있슴까? 아카시가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빠지면 돼. 괜찮슴까? 접촉사고 났다고 하면 괜찮아. 진단서는요? 신타로 어머님 병원 있잖아. 과연!



"괜찮은 척 하지마"

"네?"

"그 여자애 많이 좋아했잖아"



그런 상처는 술 한잔 사주고나서 후벼 파시져. 사줄께. 키세가 쓰게 웃는다. 그럼 제가 아카싯치 취향일 것 같은 곳으로 안내하겠슴다. 응.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