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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는 손에 들고있던 딸기 스무디를 한모금 빨아마셨다. 여자 후배가 고른 취향이라 달다. 의자에 편하게 등을 기대고 지나다니는 사람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내 흥미가 없어져 고개를 돌린다.




"시끄러워 죽겠네"


"뭐가"


"여자애들. 다들 너보고 수근수근"




하야마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카시를 바라보았다. 엷은 분홍빛의 반팔 셔츠에 롤업한 베이지색 바지. 그리고 플랫슈즈. 하야마는 드러난 아카시의 복숭아 뼈를 유심히 관찰한다.아까 옆에 있던 여자애들이 아카시의 복숭아뼈가 섹시하다고 수다를 떨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가 섹시하다는건지. 하야마는 복숭아 뼈 관찰을 그만두었다. 확실히 아카시는 얼마전부터 꾸미고 다니기 시작했다. 귀찮다고 차지도 않던 팔찌까지. 확실히 섹시는 몰라도 잘생기긴 했다.




"갑자기 왜 꾸미고 다니는거야. 더워지니까 너도 달아올라?"


"집에 있는 봄 옷이 아까워서"


"거짓말"




아카시가 작게 웃는다. 하야마는 혀를 차고선 마지막 와플 조각을 집어 먹는다. 가자 곧 수업시간이야. 하야마가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을 집어든다. 미리 일어나있던 아카시는 하야마를 기다렸다가 발을 뗀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미리 온 사람들이 저마다 무리를 지어서 앉아있다. 대충 앞자리에 앉자 옆에 하야마가 앉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후리하타와 이노우에는 없다. 이번 강의는 그 두사람도 듣는 거였다. 앉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의실로 후리하타와 이노우에가 들어온다. 후리하타는 아카시를 보더니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아카시도 손을 들어 인사하고 하야마에게 고개를 돌린다.




"방금 이게 마지막 강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어떻게 알았어?!"


"중얼거렸어. 머릿속 말 입밖에 내는 거 고치라니까"




하야마가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아카시는 최근에 발견한 하야마의 특이한 버릇을 지적하는데에 재미를 붙였다. 하야마를 보며 웃는데 어깨에 무게감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자 옆자리에 후리하타가 앉아있다. 세이, 요즘 꾸미고 다니더니 곳곳에서 너 얘기 들려. 아카시가 부드럽게 웃는다. 다들 꾸민다고 말하네. 후리하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카시의 팔목을 들어올린다. 이 팔찌 처음 보는 건데.




"선물 받은거야. 예전에"




아카시가 은근슬쩍 팔을 빼낸다. 그걸 눈치 챈 후리하타가 개구지게 웃는다. 여자한테 받은거지? 아카시가 한손으로 후리하타의 얼굴을 문지른다. 몰라도 돼. 그리고 몸을 돌려 정면을 바라본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펜을 들자 교수가 강의실로 들어온다. 아카시는 옆에 앉은 후리하타와 이노우에를 흘긋본다. 작게 웃으며 소소한 대화에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들키지 않게 한숨을 쉰다. 괜찮은 척은 그런대로 하고 있지만 역시 괜찮아지지는 않는다. 가슴 한구석이 지끈거리는 것 같아 손에 힘을 주어 펜을 더 꽉 쥔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하루 빨리 이 세뇌가 효과를 발휘하길.








"세이. 다음에 강의 또 있어?"


"응"


"그럼 기다릴테니까 저녁 같이 먹자"




왜? 굳이 연인사이에 날 끼우려는 이유가 뭐야? 자랑하려고? 아카시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하야마랑 먹기로 했는데. 그 말에 후리하타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는다. 평소라면 당장 일정같은 거 다 취소하고 같이 먹으러 갔을테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으니까. 미안하다고 말하며 부드럽게 웃는 아카시를 보며 후리하타가 고개를 젓는다. 그럼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고 돌아서는 후리하타를 이노우에가 붙잡았다.




"넷이서 같이 먹으면 되지"


"응? 그렇긴한데 하야마가-"


"괜찮지, 하야마?"




아카시의 뒷편에서 수업시간에 채 정리하지 못한 필기를 체크하고 있던 하야마가 고개를 든다. 응? 뭐가? 저녁 넷이서 같이 먹자! 오, 좋지. 아카시는 이노우에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니 이노우에가 활작 웃는다. 이번엔 너가 좋아하는 메뉴로 고를께. 아카시가 무미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하야마의 어깨를 툭 친다. 다 했어? 응! 가자. 아카시는 하야마가 짐을 챙겨 일어나자 후리하타를 지나쳐 강의실을 나간다. 하야마도 따라 나가려다가 후리하타에게 잡힌다.




"저기, 세이쥬로 안 좋은 일 있아?"


"아니. 왜?"


"뭔가 이상해서"


"아마 여자애들한테 시달려서 그럴껄. 오늘 점심에 장난 아니었거든. 선배 이거드세요, 선배 이거 좋아하세요? 아카시 시간있어? 누나랑 밥 한번 먹자. 옆에 있는 내가 다 지치더라"




빨리와, 놔두고 간다. 아카시의 목소리에 하야마가 후리하타에게 인사한다. 그럼 이따보자. 후리하타는 강의실 밖에서 하야마를 기다리는 아카시를 바라보았다. 아카시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눈을 뗀다.




"아카시 인기 많다"


"응..."


"부러워?"




후리하타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왜인지 아카시가 멀게 느껴져 후리하타의 마음이 무겁다. 가자. 저를 이끄는 이노우에의 손길에 일단 그 생각을 미룬다. 그저 여자애들에게 시달려서 피곤해서 그럴거야.








"바보냐. 그걸 왜 또 좋다고 수락해?"


"다같이 먹으면 좋지 뭐"




커플이 포함된 다같이는 좋지 않아. 아카시의 불평에 하야마의 눈이 반짝인다. 요즘 왜 꾸미고 다니나 했더니 후리하타가 부러워서였어. 맞지? 주변에 여자도 많은데 아무나 골라 잡으면 되지 왜- 컥! 아카시에게 옆구리를 얻어맞은 하야마가 끙끙거린다. 아파! 이 무자비한 놈아!








후리하타는 아까의 불안이 역시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식사를 위해 다시 만났을 때에는 여느때의 아카시였고 식사중에는 이노우에에게도 친절하게 대했다. 반면 아카시는 죽을 맛이었다. 아까 자신이 조금 달라진걸 눈치 챈 후리하타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마음은 모르면서 이런 작은 부분은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후리하타였다. 아카시는 물을 마시는 척하면서 한발짝 뒤에서 테이블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친했던 하야마와 이노우에는 이 얘기 저 얘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거기에 있던 가게의 아이스크림 맛있었는데! 맞아, 쌌는데 망했어. 이제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대한 얘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후리하타는 옆에서 둘의 얘기를 듣고 있다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둘만 얘기하지마- 질투 나려고 해"


"아! 그렇네. 미안미안, 절대 여자친구들 넘보려던건 아니었어"




자기들끼리 즐겁게 웃는다. 아카시는 다른 의미로 웃음이 나왔다. '질투' 너의 질투는 신경 쓰고 내가 느끼는 질투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런 자리에 불러냈다. 미운짓만 골라서 한다. 아카시는 또 한번 웃었다. 미운짓이라고 말해도 후리하타를 전혀 미워하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아카시에게 후리하타는 그만큼 큰 존재였다.




"아카시군 눈이 충혈됐어"


"그래? 피곤한가봐. 혹시 인공눈물 있어?"




있어! 이노우에가 가방을 뒤적여 파우치 안에서 안약을 꺼낸다. 아카시는 안약을 받아 하야마에게 넘긴다. 넣어줘. 후리하타는 아카시의 눈에 안약을 넣어주는 하야마를 보면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은연중에 아카시가 당연히 자신에게 부탁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카시가 멀어진게 아니라 내가 멀어진거구나. 후리하타는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피곤하다니까 이제 그만 일어나자"




이노우에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게 밖을 나와 헤어지기 위해 인사를 하는데 후리하타가 머뭇거린다. 헤어지기 싫은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카시가 자리를 비켜주려는대 이노우에가 하야마의 팔을 잡는다. 나 하야마랑 같은 방향이라서 같이 들어갈께. 후리하타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카시는 멀어지는 이노우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후리하타의 마음이 뻔히 드러났는데 왜 굳이 같이 가려하지 않는걸까. 의아한 마음에 계속 시선을 두는데 이노우에가 뒤를 돌더니 팔을 흔들어 인사한다. 아카시가 옆을 돌아보자 후리하타는 이미 집의 방향으로 몸을 틀어 걸어 가고 있었다. 다시 이노우에를 바라보는데 이노우에는 여전히 이쪽을 보고있었다. 아카시는 인상을 쓰고 그녀의 인사를 무시한채로 몸을 돌렸다.




"코우키 같이 가"




후리하타가 고개를 돌려 아카시를 보더니 발을 멈춘다. 조금 빨리 걸어 그의 옆에 선다. 후리하타는 아카시가 옆으로 오자 다시 걸음을 옮긴다. 이노우에가 방금 너한테 인사하려고 뒤돌아 봤었어. 엑? 진짜? 놀라는 후리하타를 보고 아카시가 허무하게 웃는다. 다음부터는 안 보일 때까지 뒷모습 봐줘. 응.




"세이"


"왜"


"내가 너한테서 멀어진 것 같아 기분 상했어?"




아카시가 웃는다. 말했잖아, 딸 시집 보낸 것 같다니까. 아카시의 미소를 보고 후리하타도 웃는다. 그 놈의 딸. 아카시가 손을 들어 후리하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건 갑자기 왜? 후리하타가 민망한듯 뺨을 긁는다.




"뭔가, 난 세이한테 여자친구 생기면 조금 질투날지도?"


"시어머니의 마음이지"




후리하타가 아카시의 농담에 웃는다. 혹시 여자친구 생기면 말해. 응. 어느새 후리하타가 사는 멘션까지 도착해 작별인사를 나눈다. 후리하타가 멘션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자 그제서야 아카시가 자신의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집으로 가면서 후리하타의 말을 곱씹는다. 질투, 질투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혹시나 같은 마음일까 설레었지만 이내 자신의 감정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더 좌절했다. 쓸데없는 말 하긴. 혀를 차고 걸음을 좀 더 빠르게 한다. 집으로 가자 다들 자기방에서 무언갈 하는지 조용하다. 아카시도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선다. 왼쪽 눈이 보기 흉하게 충혈 되어 있다.


'역시 익숙하지 않네'


그렇게 생각하며 아카시는 손을 들어 눈에서 렌즈를 빼낸다. 붉은색 컬러렌즈를 빼내자 선명한 노란빛의 눈동장가 드러난다. 충혈된 눈가를 꾹꾹 누르다가 이내 렌즈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