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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최고기온 32도. 홈. 인터넷. 안녕 아침해입니다 운세. 사수자리. 8위. 마음의 업다운이 심해질 날입니다. 혼자있는게 좋을 것 같군요. 홈. 캘린더. 6월. 오늘 일정. 과제 - 문학작품 해석 발표 준비. 장소 미정. 도망갈까. 핸드폰을 식탁에 던지듯이 내려둔다. 식탁의 시선이 전부 아카시에게로 향한다.




"화난거 아니야"




몰려있던 시선이 다시 흩어진다. 아, 오늘 저 늦습니다. 새벽쯤에 올 것 같아요. 저는 지방촬염임다. 몇일 못 볼검다. 난 2호 건강검진 겸 집에 오늘 하루 자고 온다. 네 사람의 고개가 들린다. 아카시가 세사람을 훑어본다. 너네, 짜고 고스톱 치는건가? 전혀요. 하지만 저도 놀랐네요. 아카싯치 집 잘 부탁함다. 아, 그러고보니 아카시. 미도리마의 부름에 아카시가 고개를 돌린다. 오늘 사수자리 럭키아이템이라는 것이다. 미도리마가 성인남자의 손바닥만한 쵸파인형을 건넨다. 가방에 달 수 있는 커다란 인형. 아카시는 오늘 운세를 기억해냈다. 고마워. 아카시가 인형을 받아들자 키세가 괴상한 소리를 낸다. 으엑! 아카싯치 캐릭터 진짜 이상함다!!


아카시는 입고있는 pk셔츠의 목깃을 끌어당겼다. 최고온도 32도. 이제 한여름이다. 하야마가 아카시의 메신저백에 달린 인형을 유심히본다. 쵸파네. 응, 쵸파. 두사람 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널 알다가도 모르겠어.




"오늘 운세가 영 좋지 않아서. 럭키아이템이야"


"그런거 믿어?"


"믿어서 나쁠건 없으니까"




너가 이런걸 사러다닐거라 생각하니까 웃기다. 하야마가 인형을 꾹꾹 누른다. 하야마의 말에 아카시가 작게 웃는다. 따로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우와 집사같은거야? 아니 같이 사는 친구 중 하나. 기대에 가득 찼던 하야마의 얼굴이 급속도로 식는다. 재미없네. 재미있을건 또 뭔데. 꼬투리 잡지마. 하야마가 툴툴거리며 긴다리를 뻗어 앞으로 걸어간다. 아카시는 굳이 따라가지않는다. 곧 대화할 상대가 없다며 보폭을 맞춰올 것이 분명하기에.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심심해"




역시나. 금새 옆으로 와서는 조잘거린다. 아카시에게 미야지와의 사이를 들킨 후부터는 단둘이 있을 때 둘의 대화내용의 반은 미야지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도 하야마는 미야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미야지씨는 요리를 잘해. 그리고 머리도 좋아. 같은 학교 들어오려고 무지 고생했다니까. 아카시는 전혀 듣고있지 않았다. 하야마는 사범대 건물에 들어서서야 입을 다물었다. 강의실로 들어가자 이미 와있던 이노우에가 팔을 흔들어 인사한다.




"코우키는?"


"과실에 놔두고 온 거 있대서 가지러 갔어"




아카시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아 가방을 풀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이노우에가 아카시의 가방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이거 그 해적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지? 아카시는 인형을 만지려는듯 다가오는 그녀의 손이 기분 나빠 가방을 옆으로 치워버린다. 럭키아이템이라서 부정타면 안돼. 이노우에가 쓰게 웃느느다. 내가 만지면 부정타? '응. 마녀니까' 아카시는 굳이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성친구랑 상성이 좋지않다고 조심하래. 이노우에의 표정이 다시 밝아진다. 아카시, 그런 거 믿는 거 의외다.




"토니토니 쵸파"




머리 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아카시가 고개를 든다. 어느새 아카시의 뒷편에 온 후리하타가 아카시의 가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큰 건 처음본다. 가방에 달 수 있는 것도 신기해. 후리하타가 아카시와 이노우에 사이에 있는 자리에 앉더니 아카시의 인형을 만지작거린다. 아카시는 어렸을 적에 둘이 같이 만화를 보던 때를 떠올렸다. 아카시는 누가 좋아? 쵸파, 넌? 난 에이스. 생각에 잠겨있는 아카시를 깨우는듯  후리하타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 아직도 쵸파 좋아하는구나.




"응. 피규어도 있어"


"피규어? 그정도로 좋아할 줄 몰랐는데"


"나도"




후리하타가 웃는다. 너도 몰랐다니. 정신차려보니 결제했다 이런거야? 아카시도 웃는다. 정신차려보니 내 손이 택배를 받고 있던데. 그렇게 말하는데 강의실로 교수가 들어온다. 교수는 들어와서 출석을 부르더니 과제발표와 곧 있을 기말고사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그러고보니 우리 오늘 어디서 과제 해?"


"글쎄. 카페 가기엔 더 이상 돈이 없어"


"그럼 누군가의 집에 가야겠네"




이노우에와 후리하타가 아카시를 바라본다. 몇 정거장을 가야있는 이노우에의 집과 부모님이 함께 사는 후리하타의 집. 그리고 마침 오늘 빈 아카시의 집. 오늘의 운세. 혼자있는게 좋을 것 같군요. 아카시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집 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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牡丹含露眞珠顆  목단함로진주과
美人折得窓前過  미인절득창전과

含笑問檀郞  함소문단랑
花强妾貌强  화강첩모강

檀郞故相戱  단랑고상희
强道花枝好  강도화지호

美人妬花勝  미인투화승
踏破花枝道  답파화지도

花若勝於妾  화약승어첩
今宵花同宿  금소화동숙




"한자만 적혀있네"


"처음부터 한자만 적혀있었어. 그냥 제목에 꽃 들어가있길래 선택했는데"




아카시는 이노우에가 뽑은 시를 훑었다. 시를 선택했을 경우 나눠준 목록에서 총 세작품을 골라 발표해야한다. 각자 하나씩 골라오기로 했더니 이노우에는 기분 나쁜 시 하나를 가져왔다. 어려워서 기분 나쁜 게 아니라 내용이 기분 나빴다. 인상을 잔뜩 쓰고 시를 바라보고 있자 두사람이 아카시를 바라본다. 이 시 별로야? 어려워?




"아니 쉬워"


"무슨 내용인데?"




아카시가 후리하타를 바라본다. 신부가 신랑한테 꽃이 예뻐, 내가 에뻐라고 물어보는데 신랑이 꽃이 더 예쁘다고 장난쳐서 신부가 삐져서 꽃 뭉개고 오늘 밤은 꽃하고 자라고 화내는 내용. 후리하타의 눈이 깜빡인다. 이노우에가 시를 보더니 웃는다. 마음에 들어! 코우키는 꽃이 예쁜거 같아, 내가 예쁜거 같아? 후리하타가 부드럽게 웃는다. 당연히 마야지. 이노우에와 아카시의 눈이 마주친다. 아카시는 반사적으로 왼쪽 눈가를 만지작거렸다.




"나 잠깐 방에 다녀올께"


"아! 나도"




몸을 일으키던 아카시가 후리하타를 바라본다. 너가 왜? 아카시의 직설적인 질문에 후리하타가 멋쩍게 웃는다. 쵸파 피규어 보고싶어서. 아카시가 고개를 끄덕이고 거실을 나선다. 후리하타는 조금 뒤에서 아카시를 뒤따른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아카시가 후리하타를 잡아끌어 벽에 밀친다. 타는 갈증에 물을 찾는듯 후리하타의 입술을 찾아 혀를 얽는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왜 굳이 따라온거야?"


"...너 렌즈 끼러 온걸테니까"


"동정?"




후리하타가 입을 꾹 다문다. 아카시는 그런 그를 놓아주고 가방에서 렌즈를 찾는다. 자기도 왜 따라온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면서 대답은. 렌즈를 끼우고 뒤를 돌자 후리하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는건가? 문득 걱정이 되어 후리하타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뺨을 쥐고 고개를 들어올린다.




"울어?"


"아니"


"내가 이러는게 싫어?"


"세이. 세이는 정말 내가 좋아?"




마주쳐오는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카시는 모르는 척 그의 눈가에 입을 맞춘다.




"응. 정말로 네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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愁心化爲絲  수심화위사

曲曲還成結  곡곡환성결

欲解復欲解  욕해부욕해

不知端在處  부지단재처




후리하타가 뽑아온 시 또한 간단했다. 근심 걱정이 많다는 내용이었는데 아카시는 이 시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세이는 정말 내가 좋아?' 아닌척하지만 확실히 이노우에에 대한 상처가 컸을 터. 인상이 절로 쓰인다. 후리하타가 그런 기분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코우키가 이렇게 된 건 나 때문인걸까. 아카시는 지금 저가 후리하타에게 삐뚤어진 애정을 표출하고 있다는 걸 알고있었다. 혹 이게 상처가 될까. 아카시는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 때 화장실에서 아무런 동의없이 키스하고 난 후에 단 둘이 있을 기회만 생기면 입을 맞추었다. 후리하타는 그 어떤 때에도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만뒀을텐데. 아니다. 이건 구차한 변명이다. 거부했더라면 더 거칠게 할지도 몰랐다. 후리하타는 그걸 알고 싫은데 받아주는걸까. 자신과의 키스를 싫어할 후리하타를 떠올리니 소름이 돋았다. 자신을 싫어하고 혐오할 그를 떠올리자 온 몸이 떨렸다. 한 여름인데도 아카시는 추위를 느껴 몸을 더 웅크렸다. 빛을 잃는다면 어둠속에서 얼어죽을거야.


아카시는 문득 후리하타의 목소리가 듣고싶어졌다. 자신은 후리하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입장일까. 전화를 했다고 해도 이노우에와 통화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카시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만지작거렸다. 11시 08분. 아카시는 다시 시를 보았다.




愁心化爲絲  수심이 실이 되어

曲曲還成結  굽이 굽이 맺혀 있어

欲解復欲解  아무리 풀고자 하나

不知端在處  끝 간 데를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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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산에서 자란 매, 길들인 매, 송골매, 사냥매들도 다 쉬어 넘는 높은 장성령 고개

그 너머 님이 왔다고 하면 나는 한번도 쉬지 않고 넘어가리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카시가 뽑아온 시는 의미심장했다. 시를 뽑은 이유를 물었을 대는 '그냥'이라고 답했지만 후리하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응. 정말로 네가 좋아' 그 부드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에 가득 찬다. 후리하타는 자신이 아카시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있었다. 아카시를 위해서라면 아카시의 행동을 받아주면 안되었다. 하지만 후리하타는 아카시의 그 행위에 위로를 받고 있었다.


'마야가 좋아하는 그 아카시는 날 좋아해'


못된 심리였다. 어느새 후리하타는 마야에게 우월감을 느끼며 이때까지의 감정을 보상 받으려는 마냥 아카시 옆에 붙었다. 자기 만족의 도구로 아카시를 이용하고 있었다. 후리하타는 십년 넘게 지내온 친구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음에도 그만 둘 수 없는 자신을 원망했다. 아카시의 마음, 받아주지 않을거면서.


갑자기 울컥 눈물이 차오른다. 어렸을 적 아카시가 떠올랐다. 안 그래보여도 아카시는 곧 잘 울곤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아카시는 피를 보며 울었다. 여린 아이였다. 그럼에도 그는 성장하면서 자신을 감추고 후리하타를 지켰다. 어느순간부터 후리하타의 앞에는 아카시가 있었다. 후리하타에 관련된 일에 관해서는 그는 항상 완벽해졌다. 이해하는 속도가 느린 자신을 위해 아카시는 몇배나 공부했고, 크면서 낯가림이 심해진 자신에게 신뢰할만한 친구를 찾아 소개 시켜주었다. 고등학교, 대학교도 더 좋은 곳을 갈 수 있었는데 자신을 따라온 걸 알고있었다. 후리하타는 아카시가 없는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그것은 나무가 가득해 앞이 보이지않는 빼곡한 숲에서 길을 잃는 것 같았다.


갑자기 아카시가 보고싶어졌다. 12시 20분. 지금 아카시를 보러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후리하타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아이폰. 3학년이 되면서 함께 산 핸드폰이었다. 아카시는 검정색, 자신은 흰색. 후리하타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후리하타는 아카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런 자신이 아카시에게 전화할 자격이 있을까. 후리하타는 눈을 꾹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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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한참 농구를 하다가 아오미네가 손을 번쩍 든다. 아오미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후리하타가 서있었다. 아카시가 땀을 훔치고 후리하타에게 다가간다. 아카시가 농구코트 밖으로 나가자 다들 주저앉아 휴식을 취한다. 후리하타는 방금까지 도서관 정리를 했던듯 쿠로코와 함께였다.




"정리 끝났어?"


"응. 농구중이었네"


"너도 할래?"




후리하타가 고개를 젓는다. '마지바 가자!' 후리하타의 외침에 바닥에 널브러져있던 녀석들이 몸을 일으킨다. 후리하탓치가 사는검까? 카가미가 있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가 뭐? 일본의 햄버거는 너무 작다고. 어이 어이- 일본 타령 하지마. 그냥 너가 대식가라고. 맞습니다. 쿠로코 너까지! 역시 테츠! 난 햄버거보다 우마이봉이 더 좋아. 가방을 챙겨 마지마 방향으로 가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후리하타가 웃는다.




"뭐가 그렇게 좋아?"


"난 중학교 올라와서 친구 못 사귈 줄 알았어"


"그럴리가"


"...고마워 세이"




아카시 또한 기분 좋게 웃는다.




"빨리와! 두고 간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