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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2, 2. 여섯명은 전부 자기 손에 들어있는 곱게 적힌 쪽지를 바라보았다. 개중에 몇몇은 퍽 긴장한 모양새였다. 한참 뜸들이고 있는 세사람을 바라보던 무라사키바라가 하품을 하더니 쪽지를 펼친다. '나 1이야' 세사람의 시선이 무라사키바라가 보여주는 쪽지로 향한다. 으악 나머지 1은 저여야함다! 저였으면 좋겠네요. 아니, 나다! 세사람이 동시에 쪽지를 펼친다.




"으아아아!"




키세가 기쁜듯 쪽지를 꽉 움켜쥔다. 아카시는 그런 키세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쪽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키세와 무라사키바라가 1이라면 당연히 나머지 넷은 2니까. 이제 네사람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정확히는 세사람. 아오미네와 아카시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녀석이랑은 같은 방이기 싫다.




"아카시랑은 절대 안돼"


"나도 바보는 질색이야"




아오미네가 발끈해 언성을 높인다. 누가 바보라는거냐. 이래뵈도 사범대생이거든! 그렇게 반응하는게 바보라는거야.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아오미네를 키세가 막는다. 아오미넷치, 진정하세요! 아오미네가 씩씩거리더니 자리에 앉는다. 얼른 방 정해, 얼른! 키세의 시선이 후리하타와 쿠로코에게 머문다. 쿠로코가 조금 생각하는듯 하더니 후리하타를 바라본다.




"전 상관없습니다만, 후리하타군은요?"


"난... 글쎄"


"역시 아카시군이 좋습니까?"




후리하타가 고개를 들어 맞은편의 아카시를 바라본다. 아카시는 별 관심 없다는듯이 심드렁하게 여기 관광단지의 팜플렛을 훑어보고 있었다. '료타, 오늘 밤에 야간 퍼레이드 한다는데' 쿠로코가 두사람의 분위기를 보더니 후리하타의 귓가에 입을 바짝 붙인다. 두사람 무슨 일 있었습니까? 사이가 별로 좋아보이지 않네요, 힘들면 저랑 같은방 하셔도 됩니다. 후리하타는 멋쩍게 웃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난 역시 세이랑 같은 방이 좋을 것 같아. 그제서야 아카시가 팜플렛을 접어 키세에게 넘긴다. 정해졌으면 흩어지지, 피곤해. 아카시가 몸을 일으켜 2인실 열쇠 하나를 집어든다. 후리하타도 일어나 짐을 챙긴다. 먼저 사라지는 두사람을 보면서 무라사키바라를 제외한 세사람이 한숨을 쉰다.




"분위기 왜 저러냐?"


"모르겠슴다. 무슨일이 있었나봄다"


"뭐든지간에 이번 바캉스에서 해결했으면 합니다"








키세가 예약을 잡은 곳은 일본식 여관이었다. 테마파크 안에 이벤트 컨셉으로 세워진 여관이라 온천도 있었다. 아카시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불을 꺼내 누웠다. 방을 둘러보던 후리하타가 유카타를 발견하고는 아카시에게 건넸다. 갈아입고 자. 아카시는 말없이 일어나서는 느릿하게 옷을 벗었다. 후리하타는 왜인지 모르게 그의 반나체가 민망해져 몸을 돌렸다. 저번에도 봤고 같은 남자인데 왜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옷을 다 갈아입었는지 이불의 사박거리는 소리가 난다. 후리하타는 자신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한숨을 쉬었다.


종일 운전한 아카시의 피로를 감안하여 여섯사람은 해가 지고 밤에 모였다. 아까 방을 정할 때 아카시가 말했던 야간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서였다. 키세가 미리 자리를 잡아둔 카페의 창가에 앉아 여섯사람은 퍼레이드를 구경했다. 특별히 퍼레이드가 잘 보이는 자리라 키세와 쿠로코는 창문에 바싹 붙어서 그 화려함에 눈을 뗄 줄을 몰랐다. 아오미네와 후리하타 또한 흥미로운듯 창 밖을 바라보았다. 무라사카바라와 아카시만이 아무런 흥미가 없어 보였다.




"아카칭 졸려?"


"응"


"퍼레이드 반짝반짝거리는데"




그제서야 아카시가 무겁게 눈을 떠 창밖을 바라본다. 퍼레이드보다 그걸 보고있는 후리하타가 더 반짝거렸다. 넋을 놓고 후리하타를 보는데 고개 돌린 그와 눈이 마주친다. 후리하타가 당황한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카시는 들키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어느순간부터 후리하타는 아카시를 껄끄러워했다. 그래도 대화는 어느정도 나눴는데 바캉스에 같이 가자 권유했을 때부터는 아예 서먹해졌다. 혹시나 자신이 무슨 짓을 할까 불안해하는건가. 아카시는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아카시군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셔도 됩니다"


"어. 먼저 간다"




퍼레이드에 흥미도 없었고 더이상 후리하타의 곁에 있어봤자 마음만 아플것 같아 몸을 일으켰다. 내일 워터파크에 간다했으니 그를 위한 체력 보충도 필요했다. 카페를 나서는데 누군가가 옷자락을 잡아온다. 고개를 돌리니 후리하타다. 아카시가 조금은 당황해서 후리하타를 바라본다. '같이 들어가. 나도 퍼레이드 별로 관심 없었어' 거짓말. 아카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저 다시 뒤를 돌아 제 갈 길을 갔다. 약간 뒤쪽에서 후리하타가 따라온다. 내가 부담스러워? 그렇게 묻고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맞물려있는 그 입술 사이에서 '응'이라는 대답이 나올까봐.


두사람은 방에 들어와서도 아무말이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흘러 후리하타가 티비를 켜보지만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없다. 결국 별 시덥잖은 옛날 영화에 채널을 고정시킨다. 아카시는 방 한켠에 구비된 좌식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티비에서 나오는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였는데 남자와 여자 둘 다 서로 좋아하는데 엇갈리고 엇갈리다 결국 헤어지는 내용이었다. 특히나 마지막의 남자주인공이 기차를 타고 떠나려는 여자주인공을 붙잡기위해 역으로 가지만 결국 찾지못하고 헤어지게 되는 장면은 짜증이 날 정도로 안타까웠다. 이게 무슨 로맨스야. 후리하타는 허탈한 숨을 내뱉었다.




"영화 재밌어?"


"어? 아니"


"나도 그거 재미없더라"


"응..."




후리하타의 말을 끝으로 그 누구도 말이 없다. 후리하타는 괜한 긴장감에 손톱 끝 굳은살을 만지작거렸다. 한참 말이 없던 아카시가 책을 덮더니 몸을 일으킨다. '자자' 후리하타는 그 무미건조한 말이 외설적으로 들렸다. 아카시가 정리해뒀던 이불을 피다가 후리하타를 본다. 뻣뻣하게 굳은 모습이 아카시의 가슴을 짓눌러 온다. 내가 저녀석한테 못할 짓을 했던가. 아카시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코우키"


"으..응?"


"아무짓도 안해. 건들이지 않을테니까 걱정마"




슬프게 말하는 아카시를 보며 후리하타가 입술을 꾹 깨문다. 자기 때문에 또 아카시가 상처를 입었다. 사과의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고개를 드는데 아카시는 이미 이불 안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후리하타는 한숨을 쉬고 자신의 이불을 폈다. 미안해, 세이. 하지도 못 할 그 말을 입 안에서 굴리며 후리하타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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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얏! 받아라!


"악! 키세 이자식!!"




개장시간에 맞춰서 온 워터파크는 무척 한가했다. 사람없는 한적한 수영장에서 키세와 아오미네, 쿠로코는 물놀이를 했고 후리하타와 무라사키바라는 발만 담그고 음료를 마시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후리하탓치! 물놀이해여! 키세의 부름에 후리하타가 웃더니 잔을 내려놓는다. 코우칭 이거 내가 마셔도 돼? 후리하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쓰레기처리도 부탁해. 응.




"근데 아카시 녀석은?"


"모르겠어. 일어나니까 없던데"


"뭐 어떻슴까. 저희끼리 재밌게 놀면 됌다!"




그렇죠. 갑자기 나타난 쿠로코가 후리하타를 끌어당겨 물 속에 집어 넣는다. 물을 잔뜩 먹은 후리하타가 콜록이더니 개구지게 웃는다. 가만히 두지 않겠다! 이내 네사람이서 뒤엉켜 첨벙거린다.




"신났네"


"으응. 어디갔다온거야?"




무라사키바라가 고개를 들어 아카시를 바라보았다. 아카시는 턱을 쓸며 고민하는듯 하더니 무라사키바라의 옆에 앉는다. 여관 뒷편의 절. 어제 팜플렛에서 봤던게 생각나서. 소원을 이루어준대. 무라사키바라가 아카시를 지그시 바라본다. 아카칭, 그런거 믿어? 아카시는 작게 웃었다. 그런거라도 믿고싶네.




한참 물놀이를 하다가 점심을 먹은 후에는 워터파크 옆의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쿠로코는 남자들끼리 놀이공원 가는 건 징그럽다고 말했지만 여섯명 중 가장 들 떠 있었다. 그리고 놀이공원에 입장하자마자 역시 같이 들떠있던 아오미네와 무라사키바라를 데리고 사라졌다. 키세 또한 여기서 만난 사람과 놀이공원에서 놀기로 했다며 사라졌다. 결국 단 둘이 남은 후리하타와 아카시는 놀이공원 지도 앞에 서있었다.




"옛날 생각나네"


"아, 중학교 때던가. 너가 떼 써서 놀이공원 갔었지"


"그거 너야"


"엑? 아냐 세이라고"




두사람이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한참 마주보더니 동시에 웃는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둘 다였던 것 같아. 응. 후리하타가 손가락으로 지도 한쪽을 가리킨다. 저거 타러가자. 그러더니 아카시의 팔을 잡고 끌어당긴다. 얼른. 익스트림 시리즈는 다 탈거야. 아카시가 기분 좋게 웃는다. 너 혼자 타.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오였을 때 키세는 모르는 남자 한명을 데려왔고 아카시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런 아카시의 모습을 본 아오미네는 큰소리로 그를 비웃었다. 키세와 함께 온 모르는 남자는 자신을 키세의 고등학교 선배라고 소개했다.




"여기 워터파크에서 선배를 만나게 될 줄 몰랐슴다. 안전요원 완전 멋있어요!"


"시끄러워!"




한참 선배라는 사람에게 얻어 맞던 키세는 그 선배와 식사를 따로 하기로 하고 나머지 다섯사람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에도 아오미네는 아카시를 끊임없이 놀렸다. 아카시는 속이 울렁거려 아오미네의 놀림에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그런 아오미네를 한심하게 지켜보던 무라사키바라가 결국 입을 뗀다.




"아카칭은 미네칭보다 놀이기구 잘 타"


"앙? 근데 왜저래?"


"코우칭이니까"




아오미네가 쿠로코를 바라본다. 아아, 그렇죠 저희중에 놀이공원의 후리하타군에게 어느정도 맞춰줄 수 있는 건 아카시군 뿐이에요. 이야기의 주인공인 후리하타는 아카시의 안색을 살피느라 그들의 얘기에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 후리하타가 듣고있지 않은 걸 눈치 챈 쿠로코가 아오미네쪽으로 몸을 숙였다. 




"후리하타군은 익스트림 시리즈밖에 안 탑니다"


"엉?"


"우리처럼 중간중간 쉬는 경우가 없어요. 무조건 롤러코스터, 자이로드롭, 바이킹 이런것만 탄다는 말입니다. 안색 하나 변하지도 않아요. 괴물입니다."


"다섯 여섯시간동안?"


"네"




이제 좀 진정이 됐는지 엎드려있던 아카시가 몸을 일으킨다. 후리하타가 건넨 물을 마시자 안색이 돌아온다. 아오미네는 1시간만에 진정이 된 아카시를 보며 경의를 느꼈다. 사랑의 힘은 대단하구나. 식사를 마치고 놀이공원 구석에 마련된 빛의 정원이라는 곳을 둘러보다가 다섯사람은 흩어졌다. 오늘은 티비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하는 알이었다. 티비를 틀자 이제 막 오프닝이 나온다.




"에이스 죽고 난 후에 원피스 볼 때마다 울었는데"


"아직도 에이스가 좋아?"


"음, 이젠 샹크스가 좋아"




왜? 아카시가 물었지만 후리하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일까. 빨간머리여서 그런가? 두사람은 이불을 깔고 누워서 티비를 봤다. 프로그램이 끝날쯤엔 피로 때문에 두사람 다 꾸벅거리면서 졸고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후리하타가 티비를 끄고 이불 속에 파고들었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까는 이불까지 붙어있었다. 갑작스럽게 후리하타는 한기가 느껴졌다. 춥다. 후리하타는 눈을 감고있는 아카시의 어깨를 흔들었다. '왜' 눈을 감은채로 잔뜩 가라 앉은 목소리가 들린다. 후리하타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추워"




그제서야 아카시가 눈을 떠 후리하타를 바라본다. 아카시는 에어컨의 온도를 조절할까 싶어 몸을 일으켰다가 후리하타와 마주친 눈에 그 생각을 지운다. 아카시는 짧게 숨을 뱉고는 팔을 벌렸다. 이리와, 안아줄께. 후리하타가 웃더니 아카시의 품에 안긴다. 아카시는 후리하타가 좀 더 이불 안쪽에 올 수 있도록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런 아카시의 의도를 알아챈듯 후리하타가 더욱 더 아카시의 품에 파고든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 두사람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잠에 빠졌다.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