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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파티 따위 하나도 좋지 않아!"




아카시는 머리를 쥐어 뜯는 하야마를 말릴 생각도 안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사실 말릴만한 일도 아니었다. 개강파티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으로 저렇게 화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야지씨이!!!' 아카시는 하야마의 입을 틀어막았다. 여기 국교과만 있는 거 아니니까 그 입 다물고 밥이나 쳐먹어. 아카시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학식을 먹더라도 사범대 식당을 온 게 잘못이었다. 하야마는 좋은 친구였지만 입이 방정이라 옆에 있으면 애를 먹었다. 특히 머릿속 말을 무의식적으로 말하는 버릇. 처음엔 지적하는게 재미있었지만 가면 갈수록 민폐였다.




"넌 개강파티 필참이라는게 어이없지않아?"


"별로"




마지막 남은 계란말이를 입 안에 넣었다. 문제는 개강파티를 하는 위치였다. 여기서 전철을 타고 가야하는 곳의 술집에서 한다고 했다. 그 말은 즉 아카시와 후리하타의 집에서 먼 곳에 있다는 얘기이다. 아카시야 그렇다쳐도 술을 꽤 좋아하는 후리하타는 막차 이후까지 마실게 뻔했다. 난 집에 일 있다하고 빠질거야. 미야지씨는 술냄새 안 좋아한다고. 아카시는 하야마의 얘기도 듣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을 가치가 없는 말이었다. 식사 후에 입가심 겸으로 카페에 들렀다. 언제나와 같은 메뉴에 언제나와 같은 자리였다.




"아메리카노 자체도 쓴데 거기에 샷 추가 하는 거 보면 진짜 신기해"


"난 고구마라떼에 시럽 넣는 네가 더 신기해"




하야마가 라떼를 한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맛있는데, 한모금 줄까? 아카시는 전에 한모금 마셨다가 경험한 온몸이 떨리는 단맛을 기억해내곤 고개를 저었다. 너나 많이 마셔. 오늘따라 쓴맛이 심한 아메리카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럽을 넣어볼까싶어 일어나려는데 두사람이 앉아있던 야외 카페 테라스의 난간에서 후리하타가 불쑥 나타난다.




"찾았다. 세이는 여기 자주 있네"


"어라? 후리, 이노우에는?"


"글쎄. 다른 강의여서 잘 모르겠어"




아카시는 후리하타를 흘긋 바라보았다. 2학기 들어서면서 후리하타와 이노우에가 같이 듣는 강의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의도했다기보다는 일부러 맞추지 않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아카시는 작게 미소지었다. 다시 한모금 마신 아메리카노에서는 시럽을 넣은양 단맛이 났다. 두사람 사이에 파고들 틈이 생긴 것 같다. 후리하타는 하야마와 개강파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징징거리는 하야마를 능숙하게 달랜다. 심지어는 빠질 방법에 대해 함께 궁리까지 해준다.




"그러고보니 왜 찾은거야?"


"아. 오늘 개강파티 멀리서 하잖아. 어떻게 할거야?"


"막차시간에 맞춰서 나오기 싫지?"


"응"




아카시가 숨을 길게 뱉는다. 고민해보자. 후리하타가 웃더니 시계를 본다. 강의 안 가? 하야마는 고개를 젓는다. 난 없어. 아카시는 핸드폰의 시간표를 확인하더니 몸을 일으킨다. 난 있어. 혹시 후쿠다 교수님? 아카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후리하타가 웃는다. 같은 강의네. 아카시는 조금 놀라워 눈을 크게 떴다. 이 강의까지 같으면 거의 반이상 같은 강의다. 이노우에 없이 반이상. 빨리 나와. 후리하타의 재촉에 아카시가 웃는다. 응.


여름방학 때 바캉스를 다녀온 이후로 두사람은 다시 가까워졌다. 후리하타가 생각을 정리한건지 미루어둔건지 어쨌든 고민을 그만둔 듯했다. 바캉스 이후로 같이 교토에 내려가기도 하고 영화도 보러다니면서 여느해와 다름없이 지냈다. 그런 관계에 아카시는 억지로 스킨십을 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틈이 생긴 것 같으니 거기를 공략할 셈이었다.




"가을엔 음주가무지"


"천고마비겠지"


"난 음주가무야"




후리하타가 웃는다. 아카시도 덩달아 웃으면서 후리하타의 얼굴을 한손으로 문지른다. 뭐야! 왜 왜! 웃는거 기분 나빠서.


술집은 국어교육과 학생들의 무리로 시끄러웠다. 아카시는 술을 한모금 마시고 후리하타가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틈이 생겼다해도 후리하타와 이노우에는 여전히 연인관계였고 사이가 좋았다. 가식적인 계집. 아카시는 혀를 찼다. 아, 사실을 알고있는데도 저렇게 행동하는 후리하타가 훨씬 가식적일수도 있겠다. 아카시는 자기 앞에 엎드려있는 녀석의 빈잔에 술을 따랐다.




"미야지씨가아"


"어"


"오늘 일이 있다고오오"


"어"


"집에 안 들어온대애애애애"




미야지의 절규에도 아카시는 심드렁하게 과일안주를 집어먹었다. 아카시는 싸구려 술, 싸구려 안주를 무척 싫어했다. 그래서 이런 곳에 와서도 사비로 비싼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아카시가 앉아있는 테이블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현재 그 곳에 허락된 것은 하야마뿐이었다. 늘어져있던 하야마가 잔을 잡아 높이 들어올린다. 건배하자, 아카시!! 아카시는 건성으로 잔을 들었다. 하야마가 혼자 술잔을 부딪치더니 술을 원샷한다. 나도 오늘 집에 안 들어갈거야! 젠장, 마셔!!! 하야마가 빈 자신의 잔에도, 반만 마신 아카시의 잔에도 술을 채운다.




"오오- 하야마, 나도 건배"


"좋아좋아! 마시고 죽어버려"




어느새 다가온 후리하타라 아카시의 옆자리에 앉는다. 후리하타의 잔에서 술이 채워지고 셋이서 건배를 한다. 이미 취한 두사람은 겁도 없이 벌컥벌컥 원샷을 한다. 잔을 깨끗하게 비운 하야마가 한모금만 마시가 잔을 내려놓는 아카시의 팔을 잡는다. 안되지, 안돼. 너도 원샷이야. 뭐야, 세이 치사하다! 마셔! 결국 두 바보의 재촉에 아카시도 원샷을 한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적나라한 알콜향에 저절로 인상이 쓰인다. 이야! 원샤앗! 기분 좋게 웃으며 방방거리는 두사람을 보며 아카시가 한숨을 쉰다.


술자리는 자정이 넘어서까지 이어졌고 생각보다 취해버린 아카시는 막차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 때부터 후리하타는 아카시를 붙잡고 주구장창 술을 마셨고 완전히 뻗어버린 하야마는 어쩐일인지 미야지가 데리고 가버렸다. 술자리가 파하고 아카시는 겨우 정신을 차린 후에 인사불성인 후리하타를 부축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택시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아 아카시는 결국 주변에서 가장 깨끗해보이는 모텔로 들어갔다. 축 늘어진 후리하타를 침대에 내려놓고 땀에 젖은 옷을 벗었다. 여름이 지나갔다해도 아직은 더웠다. 아카시는 수건과 가운을 챙겨 욕실로 향했다. 대충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 후에 아직도 정신이 없는 후리하타를 깨웠다.




"코우키 씻어, 너 술냄새 나"


"으으... 진짜?"


"응. 얼른 씻어"




후리하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일으킨다. 휘청거리는 모습이 불안해 아카시가 다시 후리하타를 앉힌다. 와아, 세이 여기 분위기 엄청 좋다. 분위기는 무슨. 아카시가 혀를 차고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뚜껑을 딴다. 한모금 마시고 후리하타의 손에 생수를 쥐어준다. 이거 다 마시고 씻으러 가. 후리하타는 생수를 순식간에 다 마시더니 욕실로 들어간다. 아까보다 훨씬 안정적인 걸음에 아카시가 안심한다.




"세이- 수건 안 가져왔어어"




아카시가 한숨을 쉰다. 수건과 가운을 챙겨 후리하타에게 건네고 욕실 앞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옷을 정리한다. 테이블 한켠에 단정하게 개어진 옷을 두고 티비를 킨다. 티비 채널을 돌리는데 장소도 장소고, 시간도 밤인지라 죄다 야한 것 뿐이다. 볼 게 없어 티비를 끄려는데 어느새 샤워를 마친 후리하타가 리모컨을 빼앗아간다. 채널을 돌려보는데 역시 야한것만 있다. 아카시는 흥미를 잃고는 침대에 몸을 눕혔다. 계속 여자들의 꾸며낸 목소리가 들려 머리가 아파질쯤 이질적인 소리가 들린다. 후리하타도 그걸 눈치챘는지 더이상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 아카시가 몸을 일으켜 바라본 티비 화면에는 두남자가 침대 위에서 뒤엉키고 있었다.




"저기 남자역 하는 배우 너 닮은 거 같지 않아?"


"그런 비교는 제발 하지 말아줘"




후리하타가 익살스럽게 웃는다. 아카시는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 위에서 거칠게 움직이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전혀 닮은 구석이 없었다. 머리도 검정색이었고 덩치도 컸다. 아카시는 기분이 나빠졌다. 도대체 어디가 닮았다는건지.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이 나 몸을 일으켜 티비를 끈다. 이내 화면이 까맣게 물든다. 만족한 아카시가 다시 침대에 눕는다. 피곤해, 자자.




"세이쥬로"


"왜"


"너 자위 해?"


"당연하지. 나도 남잔데"


"내 생각하면서?"


"...응"


"그럼 나 보면서는?"




아카시가 일어나 후리하타를 본다. 그의 눈빛에는 한치의 거짓도, 장난도 없었다. 진심이야?라는 질문이 혀끝까지 튀어나왔다. 후리하타는 아카시의 손을 잡아 쥐었다. 뜨겁게 전해지는 온기가 너무 자극적이어서 아카시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나보면서 해도 돼. 하면서 키스해도 돼"




더이상 참을수가 없었다. 아카시는 후리하타를 끌어당겨 깊게 입을 맞추었다. 조용한 방안에 혀가 얽히면서 나는 소리가 너무나 외설적이었다. 절제할수 없는 흥분에 아카시는 자유로운 한손으로 자신의 것을 빼내어 움켜쥐었다. 키스 중간중간 입술을 뗄 때마다 들리는 후리하타의 신음소리가 아카시를 더 고조시켰다. 아카시는 입술을 옮겨 후리하타의 목덜미를 진득하게 핥아올린다.




"으응... 읏.."


"코우키, 코우키.. 하아... 코우키"


"응, 세이"




손끝으로 만져지는 부름에 답하여 들리는 청각에 아카시는 미칠듯한 쾌감을 느꼈다. 그를 깊이 안고 그의 귓바퀴를 축축해지도록 괴롭힌다. 후리하타 또한 흥분되는지 아카시의 팔을 꽉 움켜쥔다. 한참 후리하타의 귓바퀴를 잘근거리던 아카시가 후리하타의 빗장뼈에 자리를 잡더니 이를 세운다.




"세이 안되겠어.. 내것도... 읏"


"내가 코우키꺼 만져줄테니까, 코우키는 내꺼 만져줄래?"




후리하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카시의 것을 쥐고 손을 움직인다. 아카시는 아득한 기분에 이를 악 물었다. 타인의 손길이 이만큼이나 흥분을 불러일으킨 적은 처음이었다. 아카시도 후리하타의 것을 쓸어내린다. 후리하타가 달뜬 숨을 내뱉는다. 그러더니 저가 먼저 아카시의 입술을 찾는다.




"큿.. 코우키... 하아... 코우.. 읏, 키.."


"세이.. 아! 아흑... 흣.."




서로의 손길이 점점 빨라진다. 절정이 다가오자 후리하타가 아카시의 어깨에 이를 박는다. 그에 흥분한 아카시가 손을 더 빠르게 움직인다. '갈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듯 후리하타의 이가 더욱 더 깊게 살갗을 파고든다.




"코우키.. 아아"




한숨같은 아카시의 말과 함께 두사람이 거의 동시에 뜨거운 열기를 뱉어낸다. 행위가 끝나자 두사람 모두 가쁜 숨을 몰아쉰다. 아카시가 숨을 고르더니 후리하타를 끌고 욕실로 데려간다. 그리고 후리하타의 손에 묻은 끈적한 액체를 씻어낸다. 아무말없이 비누칠을 하고 후리하타의 손을 씻기던 아카시가 한숨을 쉰다.




"미안, 내가 절제해야 했는데"


"절제할거였으면 키스부터 하지 말았어야지"


"코우.."


"내가 권한거니까 괜찮아. 사과하지 않아도 돼"




후리하타가 깨끗해진 손을 빼내고 욕실을 먼저 나간다. 아카시는 후리하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욱신거리는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선명하게 남아있는 후리하타의 잇자국이 아카시에게 '전부 네 잘못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코우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걸까. 자신의 키스 때문에 모든 게 틀어졌다고. 아카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욕실을 나가자 후리하타는 이미 잠에 빠져있었다. 아카시는 마음이 복잡해 쉽게 잠에 들수가 없었다.


후리하타는 아카시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리자 눈을 떴다. 겨우 잠에 든듯 잔뜩 피곤해보이는 얼굴이었다. 후리하타는 한숨을 쉬었다. '우월감' 분명 아카시를 받아주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하지만 아까는 뭔가 달랐다. 우월감도, 하물며 동정이나 연민 조차도 없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도대체 뭘까. 후리하타는 정체를 알수없는 감정 때문에 심란했다. 술 때문에 충동적이었다해도 조금이라도 들었던 그 감정이 후리하타의 머리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내가 왜이러는걸까, 세이.




Posted by DA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