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가버스 주의

약한폭력주의




*


짝하고 살끼리 부딫히는 소리가 들린다. 아문지 얼마안된 입가가 또 터진다. 정신을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놓을 때마다 물을 뿌려대는 통에 그럴수도 없었다.

"몸에서도 호르몬약 성분이 발견됐다고 했지않나"
"몰라"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다시 뺨을 맞는다. 가라앉은 도피의 목소리가 귓가를 찌른다. 다음에 올 땐 원하는 대답을 들었으면 좋겠군. 도피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제서야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

"로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뜬다. 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로우! 고개를 들자 작은 창문 사이로 베포가 보인다. 베포의 이름을 불러보려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겨우 몸을 움직여 철창 사이로 손을 빼낸다. 베포를 쓰다듬자 울먹이는 소리가 들린다.

"로우.. 나는...."
"...가"
"응?"
"도망가.. 베포"

목에 잔뜩 힘을 줘 말을 토해낸다. 베포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내가 꼭 구해줄께. 그렇게 말한 베포의 모습이 멀어진다. 다시 바닥에 주저앉는다. 벽에 등을 기대었다. 첫 히트사이클 이후 다음 히트사이클은 없었다. 그건 단지 3차 성징이 이루어지는 단계라서 그런것이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몸에서 나온 호르몬약 성분에 자신의 이름으로 들여오고 있던 약. 빼도박도 못할 상황에 로우는 할 수 있었던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어제부터 몸의 느낌이 이상했다. 히트사이클이 올 것이 분명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로우는 그저 눈을 감았다.




*


도피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꽤 친해졌고, 남들보다 각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았다. 처음에는 분노에 몸둘바를 몰랐다가 이제는 허무함마저 들었다. 겉과 달리 속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던건가. 로우의 속을 알수없어 답답했다. 아무런 변명없이 '모른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눈감고 넘어가주려해도 점점 드러나는 사실에 마음은 더 괴로워졌다. 로우에게 마지막으로 갔던 것이 이틀전이었다. 혹시나 오늘은 무언가를 말할까 싶은 기대로 지하감옥으로 발길을 옮겼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누워서 밭은 숨을 내뱉고 있는 로우가 보였다. 주위에 풍기는 향이 어떤 상황인지 적나라하게 표현해주고 있었다. 다시금 화가 난다.

"그렇게 숨기고 숨기더니 결국 내 앞에서 발정이 났군"

도피의 목소리를 듣고 로우가 고개를 든다. 짙은 알파의 향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시 돋친 도피의 말에 심장이 아프다.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입술을 꽉 깨문다.

"네가 그렇게 피하던 사람에게 죽기 직전까지 당하면 어떨까"

도피가 낮게 웃으며 로우의 바지를 벗긴다.

"안돼 도피... 제발.."
"닥치고 박히기나 해"

전희 따위는 생략해버리고 도피가 로우의 안으로 거칠게 침범한다. 찢어질듯한 비명이 지하를 울렸다.




*

온몸이 쑤셨다. 뒷쪽은 특히나 더 쑤셨다. 이런 상황이 되고나서도 한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쉴새없이 떨어진다. 울음소리가 튀어나오려해 손을 깨물어 참는다. 억눌린 소리가 차가운 공간을 매운다.

그 후에도 도피는 로우의 히트사이클 여부와는 관계없이 로우를 몰아붙였다. 그 횟수가 한자리 수를 넘어가게 되었을 때는 로우의 눈물도, 사고도 멈추었다. 공허한 눈동자로 철문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몸의 감각이 둔해져 자신이 지금 살아있는건지도 몰랐다. 그저 하루빨리 이 행위들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 끝이 죽음이라도 좋으니 어서 끝나기만을 바라고 바랐다. 무뎌진 감각들 사이에서도 미친듯이 아픈 제 심장때문에 더 죽고 싶어졌다. 언젠가 한번 관계중에 도피에게 물었다.

'도피, 날 사랑해?'

대답은 '아니'였다. 그 때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던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기억이 흐릿하다. 왜 그 상황에서 그런 질문을 한걸까. 자신의 미련함에 웃음이 나왔다. 다시 한번 도피가 없는 이 곳에서 묻는다.

"도피, 날 사랑해?"

난 당신을 사랑해.




*

도피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저히 로우의 속을 알수가 없었다. 대뜸 자신에게 '날 사랑해'라고 물어온 녀석의 의중을 모르겠다. 그 뒤에 덧붙인 말까지. 화가 나 탁자 위의 물건들을 죄다 쓸어버렸다. 다시한번 로우에게 가볼까 말까, 고민하던 중 노크소리가 들린다.

"왜"
"지하감옥에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도피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간다. 시종과 함께 지하감옥으로 향한다. 로우는? 현재 침입자와 함께 도주중이라고 합니다.

"당장 잡아"

도피는 방향을 틀어 항구로 향했다. 이 성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이자 자신들만이 이용하는 비밀항구. 항구에 도착하자 예상대로 한사람과 그 옆에 부축을 받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로우!!!!!"

배와 비슷한 것에 타려던 로우가 고개를 돌린다. 옆의 남자가 로우를 잡아끌었지만 로우는 걸음을 멈추고 도피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렇게 간다면 죽여버리겠다"

도피가 총을 꺼내어들었다. 로우와 도피의 눈이 마주친다. 로우의 옆에서 부축해주던 남자는 배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로우의 모습에 더욱 더 초조해진다.

"로우!!"

총을 장전했다. 로우도 그것을 봤을테지만 여전히 미동도 없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상태에서 긴장이 흐른다.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도피의 손에 땀이 차기 시작한다. 다시 바라본 로우의 표정은 웃고있었다, 그리고 울고있었다. 결국 배는 총의 사정거리를 벗어나 바다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도피는 손에 들고있던 총을 던져버렸다. 마지막으로 본 로우의 입모양에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Posted by DAJ :